[칼럼] 넷플릭스 <지옥>, 우리는 어떻게 디스토피아에 대응할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

이희영 승인 2021.12.03 09:50 | 최종 수정 2022.05.28 19:37 의견 0
<지옥> 포스터. 사진 넷플릭스

[OTT뉴스=이희영 OTT 평론가] 지난 11월 19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을 지배하는 감정은 공포다.

작중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개인의 힘으로 알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것들이었다.

어느 날 초현실적인 존재가 나타나 '지옥'에 가게 된다는 '고지'를 내린다.

이 고지를 받은 사람은 존재가 말한 그 날짜와 시간에 죽는다.

사자들로부터 아무리 도망쳐도 결국은 그들에게 붙들려 마구 몸이 찢긴 뒤 불태워지고 만다.

이러한 의미불명의 '지옥행(hellbound)' 고지가 장악한 사회의 모습은 정말 '지옥'과도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 중심에는 신흥 종교 '새진리회', 그리고 그들을 앞세운 폭력단체 '화살촉'이 있었다.

죄인에게만 고지가 내려진다는 새진리회의 주장은 화살촉이 고지를 받은 사람들에게 사적 제재를 가할 명분이 되었다.

그들은 고지를 받은 사람들, 그리고 새진리회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해킹해 인터넷 방송에서 공개했다.

정보가 유출된 이들은 어디서 해코지를 당할까 봐 얼굴을 내놓고 다니지도 못했다.

뉴스에서 인터뷰한 소설가나 변호사까지, 새진리회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찾아 납치했고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이러한 사회는 흔히 묘사하는 지옥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보인다.

길에서 스치는 행인도, 자신을 돕겠다는 이들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고지를 집행하는 사자들. 사진 넷플릭스 예고편 캡처

그러나 새진리회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고지는 신의 계시이고, 이 계시 덕분에 죄가 줄어들어 세상이 더욱 정의로워지리라는 주장은 모순에 불과했다.

새진리회가 주장한 '고지'를 받게 되는 죄의 기준은 모호했으며, 집단 폭행 및 사생활 침해 등 화살촉이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무엇보다 '죄인만이 고지를 받는다'라는 말이 사실이 아니었다.

배영재(박정민 분)와 송소현(원진아 분)의 아기가 고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애초 '고지'는 공형준 교수(임형국 분)가 말한 대로 어느 날 갑자기 삶을 침범한 재해로 읽는 것이 합당했다.

새진리회와 화살촉의 횡포는 혼란을 틈타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인하고 권력을 행사하고자 했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모든 행동의 근본적인 이유는 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지를 내리는 초자연적 존재도, 시공간을 뛰어넘어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자들도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누가 고지를 받게 되는지에 대한 규칙을 찾을 수도, 고지를 받았다면 '왜 하필 나인지'라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얻을 수도 없었다.

20년 전 고지를 받은 정진수(유아인 분) 역시 그 무지로부터의 공포에 시달렸다.

그리고 자신만 이런 공포를 느끼며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새진리회를 설립했다.

화살촉의 리더 이동욱(김도윤 분)도 바로 그 공포에 미쳐 소도 대원들을 죽이고 배영재와 송소현을 살해하려 들지 않았는가.

고지 시연을 앞둔 박정자의 집 앞에 몰린 시민들. 사진 넷플릭스 예고편 캡처

<지옥>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응할 수 있는지, 그리고 불가해한 세상이 만들어낸 공포를 견딜 수 있는지 묻는다.

작중 고지의 비밀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그 고지가 어떠한 원리로, 어떠한 사람들에게 내려지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러한 고지와 지옥행은 계속되리란 것이고, 제동을 시도하지 않는 한 폭력과 광기의 악순환 역시 끝나지 않으리란 것이다.

작품이 말미에 제시하는 그 제동법은 결국은 사람 간의 연대다.

부모의 희생으로 아기는 사자들로부터 살아남았다. 이를 목격한 시민들은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던 새진리회에 처음으로 반발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게 된 이들이 새진리회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시연을 숨겨 준 이들은 고지와 화살촉에 의해 가족을 잃은 자들이었다.

상실을 알기에 위험을 감수하고 무력감과 싸우며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자들이었다.

정진수가 불신하고 화살촉이 부정한 법 역시, 최선을 위한 다수의 합의에 따라 긴 시간 동안 꾸준히 변화해 온 결과물이었다.

고지는 완전한 허구이지만 그러한 고지가 나타나는 작중의 사회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터넷 방송을 앞세운 선동과 마녀사냥도, 무언가를 향한 공포와 이에 따른 집단적 행동도 전혀 낯선 풍경이 아니다.

고지가 내려지는 유일한 기준인 '운' 역시 현실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로 그려지며 수많은 논의를 낳고 있다.

<지옥>은 비현실이라는 거울에 현실의 우리를 비춰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금 묻는다.

당장이라도 내가 당사자가 될 수 있는, 누구도 자유롭지 않은 이러한 '무지'의 상황은 그저 디스토피아에 불과할지.

이에 우리가 뭉쳐서 대응할 방법을 어떻게 찾아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지옥>은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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