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은 11일 28일 기준 '대한민국 콘텐츠 1위'를 차지했다. 사진 넷플릭스
[OTT뉴스=손민지 OTT 평론가] <부산행>ㆍ<반도>ㆍ<사이비>ㆍ<돼지의 왕> 등으로 자신만의 유니버스를 확립한 연상호 감독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으로 또 한 번 세상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드러냈다.
<지옥>은 공개 하루 만에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부문 전 세계 1위에 오르고,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100%를 기록하며 <오징어 게임>을 뛰어넘는 거물급 콘텐츠의 탄생을 예고했다.
지옥보다 더한 지옥, 바로 지금 여기.
<지옥>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이 말이 제격이 아닐까.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 마지막 대사, "이곳은 차가운 아스팔트와 그보다 더 차가운 육신이 뒤엉켜있는 바로, 세상이다"라는 말은 <지옥>의 세계관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이 작품은 지옥의 사자가 현실에 직접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카오스, 붕괴의 현장을 여러 인물을 통해 다채롭고 밀도 있게 그려낸다.
드라마 <도깨비>에선 저승사자가 잘생긴 남자로 표현되지만, <지옥>에서는 그런 존재 따윈 없다.
<지옥>은 지옥의 사자가 현실에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혼돈을 밀도 있게 그려냈다. 사진 넷플릭스
어느 날 오후의 한적한 카페에 앉아있던 남자는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가고, 난입한 괴생명체가 삽시간에 남자를 잔인하게 구타하고 잿더미로 만들어버린다.
새진리회는 천사로부터 지옥행 선고를 받는 것을 '고지', 사자들에게 구타당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시연'이라 정의한다.
이것이 신의 의도라는 명분으로 그들은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하고 사람들을 죄인으로 치부하며 온갖 폭력과 멸시를 가한다.
지옥행 티켓을 예약한 사람은 천인 공노할 짓을 저질렀다는 추궁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빚어지는 사람들의 광기와 증오에서 진짜 무서운 건 지옥의 사자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연상호 감독은 만물을 지배하는 초자연적인 힘이 실재할 때 인간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에 관해 이야기한다.
극의 주요 갈등은 지옥의 존재가 증명되면서 힘을 가진 새진리회 교주 정진수(유아인 분)와 그의 폭주를 막고자 하는 여러 인물의 다툼이다.
정진수는 한 종교의 리더임에도 차분하게 모든 상황을 설명한다.
묘한 위화감 속 얼핏 보이는 무언가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극의 분위기를 단단하게 한다.
화살촉 리더 이동욱(김도윤 분)은 <지옥>에서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데, 화려한 복장으로 음울한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사진 넷플릭스
박정민은 무너진 세상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려 애쓰는 배영재를, 원진아는 배영재의 아내 송소현을 연기했다.
정진수가 생각한 큰 그림의 균열을 발견하는 진경훈(양익준 분), 새진리회와 대립하는 변호사 민혜진(김현주 분)도 정신줄을 잡으며 정진수의 대립점에 선다.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무력한 세상에서 시청자의 지지를 받는 인물은 민혜진일 것이다.
그녀는 좌절과 후회, 각성을 통해 성장하는 인간적인 캐릭터다.
화살촉 리더 역의 김도윤은 자신의 신념에 너무 빠진 인물로 광기 가득한 모습을 보이지만, 작품에 몇 안 되는 개그를 빚어낸다.
<반도>, <방법>에 이어 연상호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춘 김도윤은 세상을 휩쓴 혼란이 신이 내린 메시지라고 설파하는 새진리회를 맹렬히 추종한다.
인터넷 방송을 하며 새진리회의 확성기 역할을 자처하던 그는 급기야 지옥행 고지를 받은 이들의 신상을 파헤쳐 무작위로 죄를 폭로하고, 직접 단죄한다.
"김도윤의 연기에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는 연상호 감독에 보답하듯 개성 강한 캐릭터를 완성한 그의 연기가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방법>에서 무당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김신록은 세상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는 인물 박정자로 분해 감정의 격랑을 선보인다.
어린 자녀들 앞에서 갑작스레 지옥행 선고를 받은 그녀는 새진리회의 권유로 지옥행 시연 생중계를 하게 되고, 이를 목격하게 된 사람들은 큰 혼란에 휩싸인다.
<지옥>에는 세상에 대한 연상호 감독의 염세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 사진 넷플릭스
이외에도 드라마 <자백>, <이태원 클라쓰>, 영화 <인질> 등에 출연한 류경수는 새진리회의 행동대장 격인 유지사제 역을, <반도>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살아남은 아이 역으로 카리스마를 발산한 이레는 진경훈 형사의 딸 진희정으로 분했다.
소재가 무겁지만 시청자로 하여금 '내가 저세상에 있다면 어떤 행동과 선택을 할까'를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시사점을 던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연상호 감독의 염세적이고 비판적인 시선도 엿볼 수 있다.
초반에는 신선한 소재와 잔혹한 장면으로 긴장감이 팽팽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누군가는 지루하게 느낄 수 있다.
신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중심이 되는 것은 신을 받아들이는 인간이다. 인간은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 그리고 이 끔찍한 세상보다 더 끔찍한 현실에 상처받은 사람들까지.
수많은 인간 군상을 통해 우리에게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건넬 <지옥>은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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