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윤정원 OTT 1기 리뷰어] '어린이'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순수함, 깨끗함, 맑음.
세상의 고민과 걱정을 덜어버린 존재를 우리는 어린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편견이다.
어른의 잔혹함, 사고의 피해자로서의 어린이는 순수할 수 없다.
외려 성숙하고 날카롭다.
우리의 편견은 이들을 더욱 예리하게 세공할 뿐이다.
본고에서는 가정의 달을 맞아 상처입은 어린이를 위한 영화, 그리고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영화 <폭풍수면! 꿈꾸는 세계 대돌격>을 소개하려 한다.
<폭풍수면! 꿈꾸는 세계 대돌격>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짱구네 가족을 포함해 행복한 꿈을 즐기고 있던 떡잎마을 사람들, 그러던 중 꿈이 거대한 물고기에 의해 먹히게 된다.
꿈 에너지가 부족한 어른들은 계속해서 악몽을 꾸게 되고 떡잎유치원에는 새로운 전학생 유보라가 등장하는데...
이 극장판은 기존의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 극장판(이하 짱구 극장판)과는 결이 다르다.
짱구 극장판의 서사는 주로 주체인 짱구가 무엇을 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짱구라는 캐릭터성을 전면에 내세운 일종의 원맨쇼라고도 볼 수 있는데, <어른제국의 역습>에서는 미래를 향한 어린이들의 소망을 짱구가 대표했고 <영광의 불고기로드> 역시 소원을 들어주는 장치를 얻은 짱구가 순수한 소원을 빌자 비로소 사건이 종결된다.
이렇듯, 순수한 아이로서의 짱구는 짱구 극장판을 이끄는 핵심이자, 감동을 만드는 특수한 장치가 된다.
그렇다면 이번 극장판, <폭풍수면! 꿈꾸는 세계 대돌격>에서는 어떨까?
여전히 짱구는 영화의 서사를 이어가는 큰 축으로서 행동한다.
전학생 유보라와 악몽의 관계를 밝히고, 거대한 악령과 전면전을 벌인다.
그러나 이번 극장판에서는 짱구 이외에도 주목해야 할 인물이 있었으니,
그 주인공은 바로 짱구 엄마 '봉미선'과 떡잎마을 방범대 홍일점 '한유리'다.
그리고 두 여성 캐릭터의 활약으로 <폭풍수면! 꿈꾸는 세계 대돌격>의 서사는 또 다른 궤도에 올라선다.
<짱구는 못말려>는 깊은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일종의 시트콤이다.
그렇기 때문에 2시간이라는 시간의 제약 속에서 캐릭터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렵다.
캐릭터성의 변화를 납득시키기에는 2시간은 짧고, 진행할 이야기는 새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철없는 짱구, 잘난척하는 철수가 지속적으로 극장판에서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한유리와 봉미선 역시 각각 '소꿉놀이를 좋아하되, 폭력적인 면모를 가진 여자 아이'와 '꽃미남을 좋아하지만, 가정에도 충실한 어머니와 아내'라는 고정적 이미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폭풍수면! 꿈꾸는 세계 대돌격> 제작진은 영리한 방법으로 한유리와 봉미선의 캐릭터성을 변주하는 데 성공했다.
두 사람을 각각 사건 전개와 갈등 해소의 단계의 핵심 인물로 위치시키는 방법을 통해서다.
전학생 유보라가 악몽으로 인해 친구를 사귀지 못하자, 한유리는 떡잎 마을 방위대에 유보라를 추천한다.
유보라는 자신으로 인해 악몽사건이 발생한다는 것을 깨닫고 타인에게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못하는데, 한유리는 이런 보라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너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라며 약속을 한다.
이 약속으로 보라와 떡잎 마을 방위대 사이의 유대감이 발생하게 되고, 보라는 자신을 악몽으로부터 구원하려는 친구들로부터 참된 우정의 가치를 터득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 한유리 캐릭터는 떡잎 마을 방위대에서 소꿉놀이를 좋아하지만, 때로는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로 이훈이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감초에 불과했다.
유보라 캐릭터가 상처로 인해 낯을 가리고 마음의 문을 닫은 여자 아이이기 때문에 같은 여자 아이인 한유리 캐릭터를 이용해 유보라와 떡잎 마을 방위대를 연결한 제작진의 아이디어는 짱구를 매개체로 해 억지로 연결되어 왔던 기존의 극장판 서사보다 더욱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나아가 고정적으로 소비되던 한유리라는 인물에 생동감 역시 느껴지는 1석 2조의 효과를 거뒀다.
한편, 한유리 못지 않게 봉미선 캐릭터 역시 활기를 되찾았다.
이는 떡잎마을 사람들이 악몽을 꾸게 된 이유 그리고 보라의 사연과도 연관성이 있다.
보라의 부모님은 꿈과 수면에 관해 연구하는 학자로, 보라의 어머니는 실험실에서 위기에 처한 보라를 구하던 중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어린 보라에게 이 일은 트라우마로 남았고, 꿈 속에서 보라의 어머니는 악령처럼 보라를 옭아맨다.
보라의 아버지는 타인의 꿈 에너지를 모아 보라를 악몽으로부터 구원하려 하고, 꿈 에너지가 바닥난 마을을 종종 떠나오면서 보라는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지도,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도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보라의 악몽에는 하나의 의문점이 존재한다.
'자식을 위해 희생한 부모는 자식을 원망할까?'
5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이인 보라가 내놓을 수 있는 답은 하나 뿐이다.
"엄마는 날 원망할 것이다"
부모의 맹목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실감할 수 없는 나이이기 때문에,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어린이이기에 보라는 어머니가 자신을 원망할 것이라는 답에 갇혀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것이다.
영리한 제작진은 보라의 트라우마를 구원할 인물로 짱구 엄마, 봉미선을 선택한다.
삼겹살 배 아줌마라 놀림받고, 짱구 가족에게 꿀밤과 주먹 돌리기를 일삼는 아줌마의 모습 대신 자식을 사랑하고 맹목적인 모성애를 중심으로 캐릭터를 재편한 것이다.
악령처럼 변한 보라의 꿈 속 어머니를 소멸시킬 하나의 열쇠가 또 다른 어머니임이 드러난 순간,
갈등의 절정과 더불어 사람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과연 유보라는 꿈 속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까?
본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어린아이 역시 언제든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보라의 모습을 '예의없는 꼬마'로 평가할 수는 없다.
둘째, 트라우마 극복은 피상적 수단이 아닌 본질적 대화를 통해 이뤄진다.
보라의 아버지는 아내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보라의 근원적 고통에 무심했다.
결국 보라의 아버지의 행동은 보라를 트라우마의 창살 속에 더 가둬두는 꼴이 돼 버린 것이다.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이 반성하고, 또 새롭게 시작해야 할 지점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증상이 아닌, 증상이 일어난 원인이라는 점을 우리는 또 명심해야 한다.
보라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떡잎마을 사람들은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가정의 달 5월을 을 맞아 어른과 아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영화 한 편 감상하는 것은 어떨까?
한편,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폭풍수면! 꿈꾸는 세계 대돌격>은 넷플릭스에서 더빙판으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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