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일상적 도구가 폭력의 온상으로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넷플릭스 :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서보원OTT평론가 승인 2022.06.27 09:41 의견 0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N번방 사건의 주범인 박사 조주빈과 갓갓 문형욱을 잡는 과정을 담아냈다. 박사 조주빈의 모습(사진=넷플릭스 캡처). ⓒOTT뉴스

[OTT뉴스= 서보원 OTT 평론가] 우리에겐 범죄자와 피해자를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정의가 있다지만 유독 성범죄에 대해선 피해자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이상한 편이다.

이를테면 "행실이 이러니 그런 꼴이 면하지 못하지"라는 식의 말들.

N번방 사건에서도 이런 말은 똑같이 나왔지만 우리는 어떤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N번방 사건은 누구나 다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는 그 사실을.

일상적인 하루, 지그재그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다가 모르는 사람의 트위터 DM을 받는다.

본인의 사진이 유출되었으니까 확인해 보라는 말.

반신반의하지만 링크를 눌러보니 정말이었다.

누가 올렸는지 물어보니 대뜸 내 개인 정보를 말하며 협박한다.

텔레그램에 들어오지 않으면 내 은밀한 사진들을 가족, 지인에게 풀겠다고 말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접속한 텔레그램에서 내가 받는 취급은 ‘노예’다.

그렇다, 나는 클릭 한 번에 성 노예가 되었다.

◆ N번방은 어떻게 꼬리가 잡혔는가?

'갓갓' 문형욱이 사용한 피싱 수법. 그는 이런 식으로 피해자들을 N번방으로 유도했다(사진=넷플릭스 캡처). ⓒOTT뉴스

한겨레의 김완 기자가 제보를 받고 특보를 쓴 것이 시작이었다.

'텔레그램 성 착취'에 대한 기사는 본연의 내용보다 김완 기자의 신상이 더 먼저, 더 빨리 퍼졌고 N번방의 사람들이 김완 기자의 신상을 유포하면서 그들의 조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증명했다.

그러자 김완 기자는 오연서 기자와 함께 팀을 꾸려 N번방을 취재하기 시작하는데 '조커'라고 불리는 한 남자가 박사가 가장 악질이라며 제보한다.

박사를 찾는 과정에서 학생 취재팀, '추적단 불꽃'을 만나게 되었고 불꽃은 N번방의 시초가 갓갓이며 파생된 방 중 가장 악질적인 것이 박사방이라고 말한다.

불꽃은 성 착취물을 조직적으로 만드는 N번방을 경찰에 제보하고 파생방을 운영하던 '래빗'을 검거하는데 크게 일조한다.

'래빗'이 검거되면서 N번방에 대한 기사가 더 많이 퍼졌지만 의외로 냉담한 반응에 모두가 좌절한다.

게다가 박사는 새로운 피해자를 두고 '한겨레 희생자'라고 칭하며 "언론에서 보도가 될수록 피해자의 사진을 더 많이 유출하겠다"라고 협박한다.

모두가 의욕을 잃었지만 그로부터 2개월 뒤, JTBC 스포트라이트와 SBS 궁금한 이야기 제작진이 다시 한번 N번방을 집중 취재·보도하면서 박사와 갓갓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높아졌다.

수많은 피해자를 양성한 '박사' 조주빈은 평화롭게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체포된다(사진=넷플릭스 캡처). ⓒOTT뉴스

제작진과 직접 연락하기도 한 박사는 보도 후, "피해자 중 한 명을 SBS 사옥에 자살시키겠다"라고 협박하지만, 경찰이 먼저 찾아내 구제에 성공한다.

이후 제작진과 경찰은 범죄 수익을 수령하는 과정에 집중했고 보이스피싱 사범이 자주 사용하는 '던지기 방식'을 통해 박사가 현금을 인출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박사의 연관 범죄로 추정되는 사기꾼 김 씨와 이 씨, 그리고 또 다른 N번방의 운영자였던 '부따'의 증언을 통해 공통으로 돈을 수령하는 장소를 발견했고 흔적을 찾아 박사라는 사람의 신상을 특정한다.

텔레그램이 살아 있어야만 증거가 남기 때문에 경찰은 신중하게 움직였고, 끝내 박사 조주빈을 잡아냈다.

또 다른 N번방 운영자, 갓갓은 익명의 해킹 그룹 레드팀의 제보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갓갓이 사용한 피싱 수법을 똑같이 사용해 갓갓이 사용하는 IP를 추적할 수 있었고 그가 사용한 와이파이 위치를 찾아내 피의자를 특정한다.

피의자는 아버지의 고물상에서 버려진 핸드폰들을 통해 범죄에 사용했는데 성 착취물 배포 후 파기하는 등 증거 인멸에 집중했지만, 포렌식을 통해 피의자가 갓갓임을 확인한다.

그렇게 N번방의 주범 두 명을 모두 검거하는데 성공한다.

◆ 희생적인 노력과 헌신, 두 범죄자를 잡아내다

'박사' 조주빈은 본인이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맹신이 있었다. 그러나 범죄는 잡히기 마련이다.(사진=넷플릭스 캡처). ⓒOTT뉴스

문형욱과 조주빈은 공통적으로 경찰에게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맹신이 있었다.

이는 해외에 서버가 있는 SNS, 텔레그램이 주 유통 채널이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을 텔레그램에 오게만 한다면, 또 범죄가 추적되기 전에 텔레그램 방을 폐쇄한다면 증거가 남지 않기에 그들은 검거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 때문에 문형욱과 조주빈, 두 사람 모두 악랄한 범죄자였음에도 언론과의 접촉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또한 피해자들이 본인의 성범죄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일상이 망가지고, 신상에 위협을 당하더라도 사회적 인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피해자들은 섣불리 도움을 청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피해자들의 희생적인 제보와 언론·경찰의 끈질긴 추적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박사 조주빈은 42년 형이 확정되었고 갓갓 문형욱은 34년 형이 확정되었다.

◆ 박사, 갓갓은 잡혔지만, N번방은 사라지지 않았다

주범자는 잡혔지만 성 착취는 여전했다.

N번방 사건으로 인해 텔레그램 관련 범죄 수사가 집중되자 '제2의 박사'들은 텔레그램 대신 디스코드를 택하기 시작했다.

박사방에서 돌던 자료들마저도 디스코드에서 재판매 되고 있으니 사실상 N번방은 사라지지 않았다.

박사와 갓갓의 입건으로 한숨 돌렸던 피해자들은 이중, 삼중으로 고통받게 된 것이다.

피해자들을 손가락질할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N번방 사건을 포함한 사이버 성범죄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천재지변과도 같은 일이니 말이다.

회복될 수 없는 범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N번방이 끝난 지금에도 우리는 제2의 박사, 제2의 갓갓에 대한 경각심을 늦춰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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