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워너 브라더스 디스커버리 CEO 데이비드 자슬라브(David Zaslav)는 실적 발표에서 자신이 "(넷플릭스에 비해) 훨씬 더 균형 잡히고 경쟁력 있는 회사를 이끌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마따나 OTT 시장에 비교적 '늦게' 뛰어든 넷플릭스의 경쟁 업체들은 여전히 성장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구독자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업계 관계자들은 콘텐츠 시장의 '거품'이 터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넷플릭스 내부에서 바라보는 하락세의 원인은 무엇일까?
몇몇 넷플릭스 제작자들은 이런 넷플릭스의 위기가 2020년 신디 홀랜드(Cindy Holland)의 이탈과 함께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신디 홀랜드는 넷플릭스에서 '오렌지 이즈 뉴 블랙', '기묘한 이야기'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한 콘텐츠들에 많은 돈을 들여 훌륭하게 제작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다.
더불어 회사 내부에서 '재능 있는 사람들과 형성한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제작자들이 열정적인 프로젝트를 추구할 때 안전함과 지지를 느끼게끔 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과거 넷플릭스와 일한 경험이 있거나 혹은 현재 일하고 있는 관계자들 또한 모두 "당시 최고 콘텐츠 책임자(CCO)였던 테드 사란도스(Ted Sarandos)보다 홀랜드가 더 중요한 결정권을 갖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홀랜드의 위상을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당시 넷플릭스 콘텐츠는 홀랜드의 취향에 따라 만들어졌고, 사란도스는 선택자가 아닌 단순한 '팬'의 위치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이미 그 시기의 넷플릭스는 업계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제작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양을 늘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형 프렌차이즈 드라마 '프렌즈'나 '더 오피스'와 같이 인기 있는 프로그램들이 그들만의 OTT 플랫폼을 찾아가게 되면서, 넷플릭스에서 더 이상 서비스하지 못할 시기를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 한동안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대하면서 구독자 기반을 성장시켜왔다.
하지만 이런 사란도스의 '물량공세' 전략이 서비스 제공의 문화와 품질 면에서 악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홀랜드의 '비싼' 접근 방식의 지속 가능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넷플릭스가 '덜' 선별되고, '덜' 매력적인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양산하면서 초기 자본의 상당 부분을 소비했다는 것이다.
CBS 및 유니버설 텔레비전(Universal Television)의 전 경영자인 벨라 바자리아(Bela Bajaria)가 2016년 넷플릭스 국제 콘텐츠 책임자로 취임한 것이 거대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취임 이후 바자리아가 60개의 콘텐츠를 감독하는 동안, 홀랜드는 80개의 콘텐츠를 감독하며 넷플릭스는 그 해 140여 개의 콘텐츠를 제작했다.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콘텐츠의 양에 대한 수요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이에 미국 주요 스튜디오의 콘텐츠 허가 책임을 갖고 있던 바자리아는 빠르게 홀랜드가 주도하고 있던 TV 분야로 발을 넓혔다.
2017년이 되자 바자리아는 과거 다른 텔레비전 방송사에서 거부된 적 있는 드라마 '채울 수 없는(Insatiable)' 제작을 강행했다.
방영 전부터 청소년 비만과 식사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준다는 비판을 받은 넷플릭스 코미디 드라마 '채울 수 없는'은 공개 이후에도 미성년자 음주, 마약 등 유해 요소가 빈번하게 등장한다며 혹평받았다.
관련 제작자는 "('채울 수 없는' 제작은) 여러 사람에게 사기 저하와 혼란을 야기했다"며 "사란도스가 다른 플랫폼이 반려한 콘텐츠를 승인하자 모두가 끔찍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드라마는 로튼 토마토 11%를 기록하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두 번째 시즌이 제작될 정도로 충분히 좋은 성적을 거두며 콘텐츠의 양을 '엄청나게' 늘리고 싶어한 사란도스의 입맛도 충족시켰다.
한 넷플릭스 관계자는 이 상황에 대해 "벨라 바자리아는 다양한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안목이 뛰어난 경영자다. 그의 리더십 아래에서 우리는 국제적으로 콘텐츠 다양성의 폭을 확장시켰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일부 경영진은 급증하는 프로그램 수에 대해 걱정을 감추지 못했으며, 특히 홀랜드는 품질 관리의 부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는 계속해서 '고급' 콘텐츠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홀랜드와 함께 일을 했던 제작자는 "스태프들은 항상 누구를 찾아가야 할지 몰랐다. 사란도스는 그 사이에서 '성공으로 가는 길은 여러가지다'와 같은 구절을 내세우며 중재하지 않았다"며 바자리아와 홀랜드 사이의 미묘한 경쟁 관계를 짚어냈다.
홀랜드가 넷플릭스에서 마지막으로 제작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는 '퀸스갬빗'이었는데, 바자리아와 일부 직원들은 '퀸스 갬빗'을 제작한 팀에 대해 "홀랜드의 어리석은 결정"이라며 조롱하고 무시했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져 나가기도 했다.
홀랜드는 바자리아의 전략에 대해 지속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는데, 회사에서는 "10개의 콘텐츠 중 하나라도 성공한다면 성공한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견해 차이가 바로 홀랜드와 사란도르 사이를 멀어지게 한 원인이 됐다.
2020년 7월, 사란도스는 넷플릭스의 공동 CEO로 승진했고 두 달 뒤 홀랜드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 자신이 바자리아를 지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바자리아와 넷플릭스 영화 책임자인 스콧 스투버(Scott Stuber)의 기존 연봉을 1,600만 달러에서 1,800만 달러 사이로 인상했다.
물론 넷플릭스가 경영진에게 후한 보수를 주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이기 때문에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 홀랜드는 연간 1,000만 달러 미만을 벌고 있었다.
한 넷플릭스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넷플릭스는 '직감'이 주도하는 모험적인 문화였지만 이제는 더욱 신중해졌다"며 "홀랜드의 이탈로 넷플릭스의 문화 변화가 이루어진 것은 맞다. 하지만 홀랜드가 제작을 주도했을 시기에는 비용적인 부분에서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로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라고 언급했다.
홀랜드가 떠난 지금, 회사 차원에서 구독자 급감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내세울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넷플릭스의 CEO 헤이스팅스는 과연 회사를 매각할 것인가? 아니면 구독에 광고를 도입할 것인가?
일단 한 가지는 명확하다.
이제 넷플릭스의 '독재 체제'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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