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공들여 만든, 한 편의 예술품같은 드라마 '안나'

쿠팡플레이 : '안나'

정수임OTT평론가 승인 2022.07.19 10:21 의견 0
드라마 '안나' 포스터(사진=쿠팡플레이).

[OTT뉴스=정수임 OTT 평론가] "여기 사람들이 날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면 해"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자신의 인생을 거짓으로 감싼 한 서양인 여성의 외침이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안나'에서, 사실상 이유미(배수지 분)의 인생과 그 마인드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라 볼 수 있다.

피아노와 영어 단어, 포커페이스를 배우며 그녀와 꽤 많은 시간을 보낸 어린 유미가 그 말을 전부 알아들었을 리 만무하지만, 왠지 그녀의 삶과 유미의 인생은 비슷한 색채를 띠고 있다.

이유미는 양복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농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시선에서 본 유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은, 하지만 알아서 잘할 아이.

자존심 강하고 영특한 모범생으로 자랐지만, 같은 학교 교사와의 만남(연애를 가장한)은 불행의 시작이 됐다.

강제 전학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 야반도주하는 그녀는 차 안에서 엉엉 울어야만 했다.

'안나' 이유미의 힘겨운 삶의 무게 (사진=쿠팡플레이 캡처). ⓒOTT뉴스

입시에 실패한 수험생, 삼수생 유미를 구원한 건 다름 아닌 '거짓말'이었다.

대학 합격과 좋은 가정 환경, 미국 유학 등 A에서 시작된 거짓은 걷잡을 수 없는 불씨처럼 Z까지 퍼진다.

가짜 대학생 노릇이 가져다준 소속감과 사람들의 친절과 관심, 점점 거짓말은 멈출 수 없고 어느새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기까지 한다.

진실을 미처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유미를 각성하게 만드는 계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또다시 바닥에서 시작된 인생을 벗어나기로 결심한 매개가 되기도 한다.

부잣집 외동딸이자 '마레 컬렉션'의 이사로 풍족한 생활을 하며 사는 이현주(정은채 분).

가난한 고졸 출신 유미가 누리지 못한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그녀는 당연하게 누리고 있다.

유미가 현주의 집을 둘러보는 장면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자신의 낡고 낮은 단화에서 내려와, 현주의 고급 실내화·하이힐에 조심스레 올라가 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꾹꾹 눌러졌던 유미의 욕망이 수면 위로 떠 오름을 예고하며, 돈과 신분을 훔쳐 떠나는 스토리와 곧장 연결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안나' 이안나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그녀 (사진=쿠팡플레이 캡처). ⓒOTT뉴스

고졸 직원에서 예일대 졸업생이 된 제2의 이안나(배수지 분)의 인생은 화려하고 교양이 넘친다.

물론 이 모든 걸 가만히 앉아 얻은 건 아니다. 입시 강사에서 교수, 정치인의 아내가 되기까지, 그녀는 이안나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스스로도 믿어버릴 만큼 완벽하게 탈바꿈한다.

자연스러운 행동과 뛰어난 능력에 사람들은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완벽해보이는 그녀의 삶을 긴장하게 만드는 건 진짜 안나인 이현주의 등장이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현주에게 정체가 탄로 난 이후로는 행여 주차장에서 마주치지 않을까, 집에 돌아오는 길이 늘 불안의 연속이다.

현주 앞에서 유미는 단 한 번도 당당하지 못했다.

직원이었던 시절, 그녀의 비위를 맞추며 비서 노릇을 하기 바빴고, 재회하고 난 후에는 늘 전전긍긍했다.

엘리베이터 대신 비상구 고층 계단을 홀로 오르는 행동은 현주의 시야에서 벗어나 자신을 숨기기 위한 방편으로 볼 수 있다.

유미는 폭로를 빌미로 30억을 요구하는 현주가 내심 사라졌으면 하고 바란다.

30대 여성의 신변 비관 뉴스를 보고 혹시 현주가 아닐까 일말의 기대를 해보고, 차로 그녀를 치는 상상도 해보지만, 눈앞에서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

거짓과 위조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도, 사람을 죽일 정도의 깜냥 따위는 없음을 증명한다.

때문에 그런 유미가 남편 최지훈(김준한 분)을 죽이는 엔딩 장면은 더욱 극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지켜온 지위와 삶인데, 한낱 정신병원에 갇히려고 이렇게 살아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얻고 긴장이 풀어진, 혹은 방심한 지훈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유미를 자극한다.

그리고 마침내, 반드시 찾아온 기회를 그녀는 놓치지 않는다.

'안나' 유미와 안나의 변화 (사진=쿠팡플레이 캡처). ⓒOTT뉴스

이유미는 마레 컬렉션에서 일할 때, 사장에게 하루 휴가를 받으려다 온갖 무시를 당하고, 후에 최지훈이 수행기사를 모욕하며 갑질하는 것을 지켜보고 경악한다.

하지만 가사 도우미가 하루 휴가를 요청하자, '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냐'며 화를 내는 유미의 모습은 마레 컬렉션 사장의 행동과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결국 자신도 높은 위치에 올라서니 그들과 똑같아지는 것을 깨닫고 환멸을 느끼는 시점이다.

이런 유미를 그 두 사람과 다르게 비추는 건 비서 조유미(박수연 분)의 존재다.

둘은 넉넉지 않은 형편과 이름이 같다는 공통점이 있다.

조비서는 유미가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면서, 끝까지 진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유미는 조비서를 처음 봤을 때, 남편과의 관계를 의심하고 스파이로 확신하지만, 결국 제 편으로 만들고는 마지막까지 안전을 챙긴다.

다만 스토리상으로는 완벽한 안나의 편이라 하기에도, 스파이라 하기에도 약간은 애매하고 불완전한 포지션으로 보인다는 점이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안나'는 5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제작에 공들인 만큼, 구도는 섬세하고, 음악은 과감하며, 미술은 뚜렷하다.

한편의 잘 만든 예술품 같은 드라마다.

임팩트 있는 엔딩씬을 오프닝 전면에 배치해 승부를 던졌고, 진짜 엔딩에서는 타는 장작불과 연결한 연출로 깔끔한 여운을 느끼게 해준다.

'안나'를 보기로 결심한 건 우연히 어딘가에서 오프닝 장면을 본 이후였다.

이마에 흐르는 피와 스카프, 명품백에 붙인 불, 불타는 자동차, 무엇보다 유미·안나를 연기한 배수지의 공허하고 후련함, 괴로움이 억눌린 눈빛과 표정은 무척 강렬해 보였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안나'는 총 6회로 쿠팡플레이에서 만날 수 있다.

◆ OTT 지수(10점 만점)

1. 연기 (조연·주연 등 등장인물 연기력): 7
2. 스토리(서사의 재미·감동·몰입도 등): 6
3. 음악 (OST·음향효과 등 전반적 사운드): 7
4. 미술 (미장센·영상미·의상·배경·인테리어·색감 등): 7
5. 촬영 (카메라 구도·움직임 등): 7

→ 평점 :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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