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 서보원 OTT 평론가] 한국판 디스토피아라고 하면 이제는 연상호 감독이 자연스럽게 생각난다.
영화 '부산행'을 시작으로 이름을 알린 연상호 감독은 그간 프리퀄 '서울행', 속작 '반도'로 K-좀비의 위력을 보여주더니 이제는 시나리오 작가로 거듭나 드라마 '방법', '지옥', '돼지의 왕' 그리고 '괴이'까지 만들어냈다.
'괴이'는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에 초청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에 비해 다소 아쉬운, 할 말은 많으나 애써 말을 간추린 듯한 스릴러 드라마가 탄생했다.
◆ 괴불과 진양군, 연상호식 디스토피아의 또 다른 확장판
드라마의 배경은 진양군이고 소재는 괴이한 불상, 즉 괴불이다.
좀비, 종교 등 여러 장르물에서 두각을 드러낸 연상호 감독이 선택한 또 다른 오컬트 소재는 바로 '불상에 홀린 사람들'이다.
앞서 '방법'에서 귀불을 등장시킨 바 있는 연상호 감독은 '괴이'를 통해 귀불을 100% 활용해 보기로 한다.
드라마 '괴이'는 관광상품인 줄 알았던 불상을 통해 각자 마음 속에 있던 지옥도를 보고 폭주하는 진양군 사람들과 이들을 막기 위해 힘을 합친 고고학자 기훈(구교환 분)과 문양 해독자 수진(신현빈 분)의 이야기다.
귀불에 의해 진양군은 순식간에 유혈이 낭자한 생지옥으로 변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진양이 거주지인 수진, 석희(김지영 분), 용주(곽동연 분), 도경(남다름 분)이 이 재앙의 중심에서 허덕인다.
사이가 안 좋은 석희와 도경의 모자 관계, 딸 하영(박소이 분)을 잃고서 단절된 기훈과 수진의 부부 관계, 소원해진 도경과 용주의 친구 관계가 고난 속 또 다른 마찰을 불러 일으킨다.
사실 '괴이'의 배경인 진양군은 '부산행'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처음 발생한 장소인데, '부산행'과는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괴이'에서 연상호식 디스토피아로 또 한 번 모습을 드러냈다.
※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설정은 방대한데 내용은 너무 짧은, 설득력이 부족한 이야기들
'괴이'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바로 '시청자에게 불친절한 드라마'다.
검은 비가 쏟아지고 사람들이 미쳐 날뛰는 와중에 부적을 쓰는 기훈은 마치 전지전능한 신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어떻게', '왜' 이런 대응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또 괴불의 영향을 일시적으로 약화시키기 위해 어떤 불경을 외우는 이유나 기훈이 본 지옥도에 왜 거미가 등장하는지도 설명되지 않는다.
드라마는 액자식 구성처럼 어떤 순간에 등장인물들이 주춤거리면 해당 사건으로 돌아가 상황을 재현하며 이해를 돕지만, 지나치게 단편적인 설명이라 등장인물의 감정에 완벽하게 이입하기 힘들다.
6부작 구성과 한 편 당 40분이 넘지 않는 분량, 다양한 등장 인물들 때문에 전체적으로 설정은 방대하나 설득력이 부족한 이야기의 연속인 것이다.
더불어 주연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훈과 수진의 이야기만큼 조연의 이야기가 상당히 많다는 점도 역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됐다.
드라마의 흐름상 예상하기 쉬운 결말이라는 점에서도 '클리셰 범벅'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즌 2를 위한 복선을 남기긴 했지만 기대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선 현재의 '괴이'와는 사뭇 다른, 또 다른 방향성의 디스토피아가 필요하겠다.
◆ 아쉬움의 IF, 기훈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괴이'의 제작발표회에서 연상호 감독은 "부부애가 담긴 멜로물을 써보고자 했으나 심심해서 오컬트 요소를 넣게 됐고, 결국 전에 하던 것과 똑같아졌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맥락과 결말만 보면 부부애가 담긴 작품이 맞긴 하다.
그러나 오컬트를 포함해 다소 불필요한 부분들이 지나치게 많이 추가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일단 모성애와 부부애, 우애를 표현하기 위해 등장인물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는데 깔끔하게 정돈되지 않은 이 과정은 시청자들에게 혼란스러움을 안긴다.
많은 사람들을 다루려고 하니 주연인 기훈의 이야기는 과하게 요약돼 조금이라도 집중하지 못하면 기훈의 사정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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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훈의 곁을 떠나 진양군에서 별거 중인 수진 역시 마찬가지다.
수진을 패닉으로 몰아넣는 택배기사의 등장과 현혹 도중 잠깐 정신을 차린 그가 "죽여줘"라고 외치는 장면들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근거 없는 추측'만 난무하게 만든다.
'떡밥'은 많은데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어려운, '중구난방' 드라마가 된 것이다.
만약 '부부애'에만 집중해 기훈과 수진의 에피소드에만 집중적으로 풀어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의 'IF'를 떠올려 본다.
그랬다면 표현하고자 했던 부모의 사랑와 우애는 더 디테일하고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 OTT 지수 (10점 만점)
1. 연기 (조연·주연 등 등장인물 연기력): 9
2. 스토리 (서사의 재미·감동·몰입도 등): 3
3. 음악 (OST·음향효과 등 전반적 사운드): 3
4. 미술 (미장센·영상미·의상·배경·인테리어·색감 등): 5
5. 촬영 (카메라 구도·움직임 등): 5
→ 평점: 5
공놀이로만 글을 쓰다가 감성을 담고 싶어 독립한 아틀리에 (Atelier), '보고싶어요'는 주구장창 누르면서 정작 땡길 때만 재생 버튼을 누르는 프리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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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원OTT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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