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진보화 OTT 2기 리뷰어]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은 '부산행', '지옥' 등 디스토피아적인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형성하는 연상호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인간과 함께 살며 언제나 사랑받는 '개' 와 핍박받으며 죽음으로 자기 몸을 내어 줄 때만 인정받는 '돼지'에 사람을 비유하며 넘어설 수 없는 인간관계 안의 계급구조를 풍자해 당시 다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주목받은 바 있다.
필자도 과거 애니메이션을 보며 찝찝한 기분에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원작 애니메이션이 개봉한 지 10년이 지난 현재, 90분이 조금 넘는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12부작 드라마로 확장했을지 기대하며 TV 앞에 앉았다.
◆ 적절한 각색, 강해진 흡입력
드라마는 한 여인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녀 옆에 흩어진 증거는 남편을 범인으로 가리키고, 시신 옆에는 붉은색 문구가 적혀있다.
드라마는 원작에 자극적인 연쇄살인 사건 즉, '사적 복수'를 더해 시청자들을 매료시킨다.
복수를 행하는 주체는 바로 주인공 경민(김동욱 분)이다.
10년 전 학교 폭력을 당한 피해자인 경민은 우연히 목격한 과거의 흔적으로 인해 중학교 시절 우상으로 삼았던 철(최현진 분)의 환영을 목격하게 되고, 철이가 하지 못한 복수를 이어 나간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10년 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가해자들에게 고통을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경민의 복수 방식은 1차원적이면서도 잔인하기 때문에 징그럽거나 폭력적인 장면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마냥 편하게 볼 수 있는 쉬운 작품은 아니다.
더불어 드라마는 원작과 다르게 10년 전 학교 폭력 가해자의 모습을 다양하게 그려낸다.
반성하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사는 가해자도 있는 반면,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경민과의 기억이 그저 '어린 시절의 장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듯 잊고 아주 잘 살아간다.
뿐만 아니라 경민과 종석(김성규 분), 두 주인공의 사회적 위치도 변화했다.
원작에서 경민은 부도난 회사의 사장이었고, 종석은 가난한 작가였다.
드라마에서는 두 주인공을 각각 중소기업 사장과 경찰대 출신의 간부로 변화시켰다.
유년 시절 아빠와 친구들의 폭력, 그 그림자에서 끝까지 벗어날 수 없었던 경민은 자신을 괴롭히는 괴로움을 떨쳐내기 위해 '복수'와 '저주'라는 답을 택한다.
종석은 살아남기 위해 말이 되지 않는 논리로 자신을 세뇌시키며 죄책감 따위 느끼지 않는 괴물이 돼버렸다.
원작에서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수직적 계급사회를 처절하게 보여줬다면, 드라마에서는 각색을 통해 계급은 달라졌으나 끊을 수 없는 폭력의 굴레를 효과적으로 강조했다.
드라마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제작자들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진정한 '악인'도, '선인'도 없는 드라마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경민의 모습을 보고, 시청자들이 마냥 통쾌함만을 느끼지는 않는다.
경민이 택한 복수의 방법이 옳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의 돈을 이용해 사회의 권력층으로 자리잡은 경민은 자신이 구해준 범죄자들을 복수의 조력자로 가담시킨다.
범죄자들 중 누구도 경민을 멈춰세울 수 없었다.
유일하게 그를 저지하려고 했던 사람은 '동반자살'이라는 충격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범죄자들을 돈으로 구원해 다시 범죄자가 되게 하는 일을 옳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폭력에 대응하는 또 다른 폭력은 결국 자신을 찌르는 칼날이 되어 돌아올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경민의 모습을 보며 드라마를 보는 내내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 현실보다 더 노골적인 드라마
드라마에서도 원작처럼 이들의 과거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황사가 낀 듯한 브라운 톤의 과거 장면은 아이들의 학창 시절을 꽤 노골적으로 그려낸다.
학교에서 모두가 한 번쯤은 경험해 본 서열 다툼과 그 이후 묘하게 형성되는 주종관계을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가해자들은 폭력을 권력삼아 군림하고, 피해자들은 그 관계를 끊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친다.
그리고 방관자들은 애써 이 모든 것들을 모르는 척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들이 뒤엉켜 한 교실에 존재하고 서로에게 당연하고도 익숙해 보이는 이들의 행동은 현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아니, 현실보다 더 현실같다.
특히 실제 중학생들의 주먹 다툼을 보는 듯한 아역 배우들의 액션과 성인 연기자 못지않은 표정, 감정 연기는 극의 몰입감을 높였다.
아직 어린 연기자들의 심리 상태가 걱정될 정도였는데, 다행히 현장에서 심리치료를 동반하며 촬영했다고 한다.
이후 성인이 된 경민과 종석은 갑자기 되살아나는 트라우마에 정신장애를 겪으며 감정이 널을 뛰듯 변한다.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편집 속에서 성인 캐릭터의 감정 변화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아역 연기자들의 설득력 있는 연기 때문이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웠던 '강진아' 캐릭터
드라마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바로 드라마에서 새롭게 창작된 인물인 강진아(채정안 분)의 역할이었다.
진아의 캐릭터는 경민과 종석이 가지는 캐릭터의 깊이에 미치지 못했고, 해당 캐릭터만이 가지고 있는 신념 또한 크게 와닿지 않았다.
시청자는 진아가 별 이유 없이 팀에서 신뢰를 잃고 미움받는 모습이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상한 농담거리가 되는 상황을 납득하지 못한다.
물론 진아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사건의 해결을 위해 의욕적으로 종석과 경민의 과거를 파헤치며 증거를 찾아 해결자로 등장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진아의 행동이 매우 지혜롭거나 형사로서의 예리함이 돋보이도록 연출되지 않았다.
어색한 액션과 항상 한 발 늦는 모습에 사건의 '해결자'라기 보다 '관찰자'와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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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사건들과 이를 다루는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요즘.
질릴 법도 하고 식상할 법도 하지만 매번 접할 때마다 아이들의 잔인함에 놀랍고 피해자들의 고통에 마음이 아프다.
경민이 영웅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지만 사적 복수의 마음을 품는 사람들의 마음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드라마를 보는 내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드라마 '돼지의 왕'이 다루고 있는 것은 고민과 반성이 필요한 주제인 만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자.
본래 티빙에서 볼 수 있었던 '돼지의 왕'은 이번 연휴동안만 1~4회가 무료로 제공된다.
◆ OTT 지수 (10점 만점)
1. 연기 (조연·주연 등 등장인물 연기력): 8
2. 스토리(서사의 재미·감동·몰입도 등): 7
3. 음악 (OST·음향효과 등 전반적 사운드): 6
4. 미술 (미장센·영상미·의상·배경·인테리어·색감 등): 6
5. 촬영 (카메라 구도·움직임 등): 6
→ 평점: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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