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지 못한 청년들의 초상(肖像), 넷플릭스 〈D.P.〉

넷플릭스 오리지널 : 〈D.P.〉

서보원 승인 2022.01.14 08:58 | 최종 수정 2022.01.14 10:31 의견 0
입대식 날, 준호의 첫 충성. 사진 넷플릭스


[OTT뉴스=서보원 OTT 2기 리뷰어] 군대에서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딱 두 가지다.

내가 싫어하는 선임들의 모습이 나에게서 보일 때랑 내가 후임들에게 잘했는지, 못했는지 헷갈릴 때였다.

문제 되지 않은 군 생활을 보냈다고 자부했지만 막상 전역할 때 가장 눈에 밟혔던 건 후자였다.

후임들은 정작 전역하는 나를 보고 속이 후련해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는 왜 후임이었을 때를 기억하지 못하고 선임처럼 굴었는가.

전역하는 날까지 나는 나를 잘 알지 못한 채 20대 초반을 장식했다.

그런 대한민국의 '나'를 찾는 드라마가 등장했다.

바로 한준희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 (2021)>다.

헌병대로 자대 배치 받은 준호. 사진 넷플릭스


<D.P.>는 대체적으로 준호(정해인 분)의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입대 전부터 훈련병, 자대 배치를 받은 이병 시절까지가 시즌 1의 내용이다.

탈영병을 추격하는 'D.P.조'로 발령 난 이후로는 한호열(구교환 분)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드라마 곳곳에 캐릭터에 대한 사전 배경이 살금살금 흩뿌려져 있지만 자세하지 않아 추측하면서 캐릭터를 이해해야만 한다.

캐릭터를 시청자가 스스로 추측하고 이해해야 하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D.P.>는 최고의 몰입감을 뽐내는 수작이다.

가히 올해 최고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뼈저린 군 생활을 신랄하게 드러낸다.

시스템과 사람 사이의 갈등, 그 시스템 속에 있는 사람과 사람 간의 갈등은 드라마를 꿰뚫는 핵심 내용이며 답이 없는 물음이기도 하다.

나를 '위한' 시스템에서 살던 20대의 어린 청년들은 어느덧 나를 '해하는' 또 다른 시스템 속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게 맞는지를 고민하고 또 행동한다.

어리숙한 생각들은 어긋나기 쉬운데 장수(신승호 분)와 그의 후임, 조석봉(조현철 분) 일병은 그에 어울리는 초상 (肖像)이다.

전학을 가면 내가 새로운 학교에서 어떤 식으로 보일지 아무도 모른다.

소위 '일진' 무리에 섞이게 될지, 그들의 피해자로 살게 될지, 아니면 이들을 지켜보는 방관자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어떤 무리에 소속되면 소속감 때문에 쉽게 다른 무리로 전환하기가 어려운데 그나마 다행인 건 학교에서는 선생님, 부모님을 비롯한 절대적 권위자가 있고 또 학교만 끝나면 다른 일상에선 다르게 살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군대는 다르다.

어떤 무리에 한번 속하면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잠을 자는 그 순간까지, 그 무리 속에 속해있다.

마치 장수가 '준호의 얼굴만 봐도 화가 난다'라고 말하듯이 이유 없이 싫어질 수도, 좋아해야 할 수도 있다.

가장 괴로운 건 자고 일어나도 똑같고, 변함없는 하루의 연속이라는 점이다.

내가 아무리 달라지려고 노력해도 누군가가 -특히 상급자가- 낙인을 찍어버리는 순간, 그 낙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아무리 그 상급자가 전역을 하더라도, 그의 세력이 잔존한다면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탈영을 하는 것이다.

탈영병 준목(가운데)을 잡은 호열과 준호 (왼쪽과 오른쪽). 사진 넷플릭스


잠을 편하게 자기 위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할머니를 지키기 위해, 군 생활이 엿 같아서 등 정말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탈영병들은 군대의 현실이 싫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당연하게 극단적인 결정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돌아가야 하니까. 벗어나려 해도 이 시스템 속에 있어야 하니까.

그럴 바에 나를 잃는 걸 선택하는 것이다.

'나를 잃는다'라는 표현은 군대 내 상담병을 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표현이다.

1년 넘게 상담병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접했는데 나와 상담을 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였다.

대화가 필요한 사람과 나를 잃고 있는 사람.

"나는 이러지 않았는데 여기선 이렇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나 자신을 잃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른 동기나 상급 간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뿐이었는데 이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 자신을 잃는 사람들이 결국 스스로를 포기하는 걸 막기 어려웠다.

가장 자부심 넘쳤던 본인을 잃게 되는 순간, 목숨을 끊는 건 그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군대라는 시스템은 '나를 잃기' 좋은 시스템이다.

그래서 종종 추천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념이 확실하지 않고, 힘든 상황을 견딜 긍정적인 마음이 조금이라도 준비되지 않았다면 군대를 늦추라고.

빨리 다녀올수록 좋다는 사회의 통념과 달리 내가 생각한 군대는 빨리 가면 더 힘든 곳이었다.

하지만 군대에 들어오는 대부분은 준비가 되지 않은 청년들이었고,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남들을 깎아내렸고 잡아먹었다.

피해자들은 살아남지 못한 게 아니고 남들보다 더 순수했을 뿐이다.

나만큼의 착함이 모두에게도 있을 거라는 그런 '순수'.

훈련병 시절의 사진들은 어리바리 그 자체다.

'여긴 어디, 난 누구? 근데 부모님께 걱정은 끼치기 싫으니 활짝 웃자'가 느껴지는 표정들이다.

이 어리석은 청년들의 초상화는 때로 '초상'(初喪, 사람이 죽는 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네 잘못이 아니다. 사람이 잘못한 게 아니라 시스템이 잘못한 거다"라고 말하지만 개개인의 잘못이 모여 그 시스템을 만들었으니 개인을 탓하는 것이다.

아, 물론 시스템도 문제가 있다.

준호는 말한다.

"입대하지 않았으면 안 죽지 않았을까요?"

안타깝게도 답은 곧바로 나온다, "지금 그게 중요하냐?"

입대식 날, 준호의 첫 충성. 사진 넷플릭스


지금 군대는 이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그들은 <D.P.>가 픽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어린 청년들의 초상화가 초상(初喪)에 걸리고 있다.

가혹행위의 가해자, 그리고 피해자들은 사회에 잔류해 또 다른 죄악을 낳고 또 다른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D.P.>를 보며 이 잔혹한 현실에 부정하는 사람들보다 공감하는 이들이 더 많다는 게 현 문제에 대한 반증이다.

입대식을 할 때 하는 법도 모르는데 부모님께 충성을 하라고 한다.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뭐가 올라가서 하긴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이 시작은 끝이 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땅의 청년들이 그 끝을 내 삶의 끝이라고 외치지 않길 바라며, 심심한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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