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넷플릭스 <마이 네임>으로 보는 여성 주연극의 새로운 분기점

이희영 승인 2021.10.25 06:00 | 최종 수정 2022.05.28 13:12 의견 0
<마이 네임> 공식 포스터. 사진 넷플릭스

[OTT뉴스=이희영 OTT 평론가] 지난 1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이 네임>의 인기가 뜨겁다.

글로벌 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마이 네임>은 20일 기준 넷플릭스 TV프로그램 부문 스트리밍 세계 3위에 집계됐다.

전 세계를 휩쓴 <오징어 게임>을 이어 좋은 성적을 거두며, 'K-콘텐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고 있다.

<마이 네임>은 주인공의 첩보 활동을 다루는 '언더커버' 작품이다.

주인공 지우(한소희 분)는 아버지를 죽인 자에게 복수하고자 신분을 숨기고 경찰에 잠입한다.

자신이 무진(박희순 분)이 이끄는 '동천파'에 몸담은 조직원이라는 사실은 철저히 비밀에 부친 채.

이후 자신을 둘러싼 두 단체에 대한 모종의 비밀이 드러나며 주인공이 갈등에 휩싸이는 것은 이 '언더커버물'의 공식이다.

이 과정에서 배신감을 느끼고 복수를 감행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순서다.

<마이 네임> 역시 이러한 장르적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그런데도 이 작품이 마냥 진부하지 않은 것은, 그 복수의 주인공을 여성으로 설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동천파 소속을 숨긴 채 경찰로 잠입한 지우. 사진 넷플릭스 유튜브 캡처

경찰과 조직의 사이에 존재하는 여성이 흔히 볼 수 있던 모습은 아니다.

남성보다 신체적 조건이 불리하다는 이유로 여성은 주로 '험한 일'을 하던 경찰이나 조직원의 애인 혹은 조력자로 등장했다.

지우가 직면하는 이러한 낯섦은 아버지의 죽음에 더해 그에게 또 다른 시련으로 주어졌다.

무진이 데려간 조직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던 그는 조직원 남성들의 텃세를 넘어선 억압에 시달렸다.

'년' 소리를 들으며 매일같이 성적으로 희롱당했고 이에 저항하면 심하게 얻어맞았다.

심지어는 강재(장률 분)가 탄 '물뽕' 때문에 성폭행을 당할 뻔하기도 했다.

이러한 억압에 대해 작품은 정면 돌파를 택했다.

지우가 급소를 노려 공격하고, 경찰봉이나 단도 등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상황을 타개해 나가도록 연출했다.

자신을 농락한 조직원들을 차례차례 제압하는 그의 모습은 시원시원한 액션과 더불어 큰 쾌감과 통쾌함을 자아낸다.

<마이 네임>은 제목 그대로 지우가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아 나가는 이야기이다.

'윤지우'와 '오혜진'을 거쳐 이윽고 '송지우'로 거듭나는 그의 이야기는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사이에 엉킨 실마리를 풀어내는 과정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여정이다.

아버지의 조력자 기호(김상호 분)를 만나 진실을 목도하고, 인간을 향한 애정과 안정을 알려 준 필도(안보현 분)를 잃으며 그는 각성한다.

더욱 향상된 실력과 강한 목표 의식으로 적들을 차례로 쓸어 나가며 이윽고 자신의 원수이자 스승인 무진을 죽임으로써 과거의 늪에서 벗어난다.

그를 죽이는 것이 본인만의 의지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이는 더욱더 유의미하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 쌓인 빚을 모두 청산한 지우의 표정은 허탈한 듯하지만 그만큼 후련해 보인다.

피 칠갑을 한 채로 총을 겨누는 지우. 사진 넷플릭스 유튜브 캡처

이러한 측면에서 <마이 네임>은 분명히 큰 성과를 거뒀다.

금녀의 공간으로 여겨지던 조직에서의 선례를 세웠으니, 이 작품을 시작으로 더욱 다양한 여성 주연극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풀어나가야 할 과제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여성 대상 폭력을 그리는 방식이다.

작품 초반에 지우가 당하는 온갖 폭력은 상당히 직접적이고 또 노골적이다.

앞서 언급한 성희롱에 더해 '따먹는다'는 말이 틈만 나면 나오고, 심지어는 약물을 동원한 강간 미수 장면까지 등장한다.

이러한 장면들이 지우가 필사적으로 생존해야 했던 '험한 환경'을 보여주는 장치로 쓰인 것은 이제는 새롭지 않으며 그만큼 고민이 부족했던 선택이다.

현실에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여성 대상 범죄를 미디어상에서 불필요하게 재생산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강재를 비롯한 남성 조직원들의 이미지 역시 지극히 납작하고 또 전형적으로 연출된 것이 또 다른 아쉬운 점이다.

지우가 주위의 조직원들에 비해 자신의 근력이 쉽게 늘지 않는 것에 절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욱 혹독하게 훈련하는 장면을 넣었다면 '극기'의 의미가 더 강해졌을 것이다.

강재가 지우를 조롱하고 괴롭힌 이유가 그가 '계집애여서'가 아니라 오히려 '동경하는 무진의 총애를 받아서'나 '자신을 이긴 강자여서'였다면 그의 캐릭터 역시 더욱 입체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를 제작하고 또 소비하며 함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과제는, 열심히 달리다 한계를 직면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라 일컬어지던 것들을 재고하고 또 재편하는 것이다.

진정한 한계는 그것이 한계라 믿는 우리의 굳어진 사고방식이다.

여성이 사회에 진출할 수 없다는 생각도, 작품의 주인공을 맡을 수 없다는 생각도, 나아가 액션을 소화할 수 없다는 생각도 시간이 흐르며 모두 보기 좋게 타파되었다.

다음으로 우리가 깰 한계를 찾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마이 네임>이 건네는 메시지이다.

그 모든 시련을 딛고 결국 목표를 달성해 낸 지우의 모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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