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방향을 놓친 게임, 길을 잃은 세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

이희영 승인 2021.09.23 08:52 | 최종 수정 2021.09.30 08:09 의견 0
<오징어 게임> 포스터. 사진 넷플릭스

[OTT뉴스=이희영 OTT 평론가]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오징어 게임'을 작중 프론트맨은 이렇게 설명한다.

'아이들의 놀이 가운데 가장 육체적이고 폭력적인 놀이'.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상금 456억 원을 두고 마지막으로 벌인 이 '오징어 게임'에서 기훈(이정재 분)과 상우(박해수 분)는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눈에 모래를 뿌리고 나이프로 서로를 베고 찌르다, 상우가 목에 스스로 나이프를 꽂아 자살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지난 9월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고액의 상금을 놓고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의 포맷에 한국의 골목 놀이를 접목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에서 술래가 돌아봤을 때 움직이면, 달고나 모양을 내지 못하면 총에 맞아 죽는다.

낭떠러지에서 벌인 줄다리기에 패배한 팀은 그대로 땅에 떨어져서 죽고, 두 개의 발판 중 강화유리 발판을 골라내지 못하면 역시 발판이 산산이 조각나며 추락해 죽는다.

프론트맨의 대사는 이 드라마의 정체성을 그대로 대변한다.

참가자들은 생존과 상금을 위해 사투를 벌이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잔혹한 폭력에 그대로 노출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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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다리기에서 져 추락하는 참가자들. 사진 넷플릭스 예고편 캡처

어린이의 골목 놀이라는 콘셉트를 살려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세트와 리코더를 사용한 배경음악은 기괴한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미리 공개된 이러한 분위기는 큰 기대를 낳았지만 정작 베일을 벗은 결과물은 그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이는 콘셉트와 세트가 깬 전형성을 서사는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바이벌 게임이 한국에서는 미지의 영역이라지만 시청자들에게까지 완전히 낯선 장르인 것은 아니다.

해외의 다양한 작품을 접해 왔을뿐더러, 극한 상황에 대응하는 인간 군상은 장르의 클리셰로까지 굳어졌을 정도다.

<오징어 게임>에는 이러한 인간상이 모두 등장하며 이들의 서사 역시 익숙한 공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난동을 부릴 거라 예상한 인물은 그대로 난동을 부리고, 파트너를 배신할 거라 예상한 인물은 그대로 배신한다.

게임의 흑막까지도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아픈 어머니를 두고 본인의 자존심만 내세우며, 바뀐 카드 비밀번호까지 맞혀 경마장에 가는 무능한 주인공은 덤이다.

그리고 이 인간상을 구성하는 방식 역시 지극히 전형적이고 구시대적이다. 이는 게임의 모순과도 맞물린다.

작중 프론트맨은 '참가자들은 바깥세상에서는 불평등과 차별에 시달렸기에 이 게임에서는 모두가 평등한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라고 말하며 게임 정보를 흘린 진행요원을 죽인다.

그러나 그러한 게임은 '스페셜 게임'을 운운하며 조직 폭력배가 다른 참가자들을 학살하는 것을 묵인했고, 줄다리기 등 완력이 중요한 종목을 채택해 여성과 노인 등이 민폐로 전락하게끔 했다.

오일남(오영수 분)의 기지로 주인공의 팀이 승리했다고는 하나 이는 그가 게임의 호스트였다는 설정으로 빛을 잃는다.

무력을 내세워 참가자들 위에 군림하려 한 조폭 장덕수(허성태 분)는 줄곧 권위적이고 폭력적이다.

그러한 인물에 기생하는 한미녀(김주령 분), 그리고 사장의 임금 체납에 시달리는 외국인 노동자 알리 압둘(트리파티 아누팜 분) 역시 약자의 전형성을 그대로 답습한다.

이들의 이름부터 말이다.

스크린에 새겨진 참가자들의 목록. 사진 넷플릭스 예고편 캡처

또한, 부자들의 재미를 위해 빈자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시스템을 그려냈다면 이 시스템에 대해 취하는 태도 역시 드러나야 한다.

시스템을 비판하려는 의도였다면 경찰 황준호(위하준 분)와 주인공 겸 우승자인 기훈 등이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전복하려는 시도를 보였어야 한다.

형을 찾으러 위험을 감수하고 섬에 잠입한 준호는 형에게 총을 맞고 절벽에서 떨어지며 그대로 퇴장했다.

그가 건물을 샅샅이 뒤지며 모은 정보들은 시청자들에게만 은밀히 전달될 뿐 작중에서는 아무런 효용도 내지 못했다.

기훈은 딸을 만나러 미국행 비행기를 타려다 다시 게임의 한복판으로 되돌아갔다.

'용서할 수 없다', '너희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라는 둥 비장한 대사가 던져졌긴 하지만, 이로부터 긍정적인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15년 우승자였던 황인호(이병헌 분)는 프론트맨이 되어 시스템으로 편입되지 않았는가.

왜 그는 우승했는데도 게임을 지속하는가. 동생과의 연락은 왜 끊었는가.

몇은 얼굴을 드러내기까지 한 진행요원들은 무슨 이유로 게임에 참가하게 되었는가. 양복남(공유 분)의 정체는 무엇인가.

똑똑한 상우와 신체 능력이 좋은 새벽(정호연 분)을 포함한 인물들을 더욱 입체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었는가.

참가 전에는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모습으로 일관했고, 참가 후에는 내내 타인의 도움과 행운에 기대 게임을 통과해 온 기훈이 왜 우승할 수밖에 없었는가.

우승 후 1년이 지나도록 왜 그는 새벽의 동생도, 상우의 어머니도 찾지 않았는가.

게임의 존재 가치가 납작해짐에 따라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온갖 설정들은 차례차례 미지의 상태로 남는다.

그리고 작품의 주제 의식은 불투명해진다.

이에 따라 시청자의 뇌리에 남는 건 계속해서 재생산되는 말초적인 자극뿐이다.

난무하는 온갖 '년' 호칭과 성행위를 묘사하는 저속한 손짓, '좀비' 탈락자 여성을 요원들이 돌아가며 강간했다는 대사, 머리가 터지고 몸이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피로 새빨갛게 물든 시체들만이 남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 내부 시설과 진행 요원들. 사진 넷플릭스 예고편 캡처

<오징어 게임>은 골목 놀이 '오징어 게임' 규칙을 설명하며 시작한다.

큰 시간을 할애해 복잡한 규칙을 자세히 늘어놓았으나, 실제로 기훈과 상우가 벌인 오징어 게임은 칼과 주먹과 모래가 난무하는 난투극이었다.

굳이 '오징어 게임'일 필요가 없었다는 점에서 작품은 이유를 갖추지 못했다.

참신한 소재, 그리고 한국에서 시도해본 적 없는 장르에의 도전이라는 말로 부진을 정당화할 수 있던 시기는 지난 지 오래다.

시즌 2의 여지를 남긴다고 많은 복선을 그대로 방치한 채 시리즈를 끝내는 것도 아쉽다.

눈과 귀를 사로잡는 세트와 배경음악을 만들어낸 자본, 그리고 2021년을 살아가는 대중의 기대에 걸맞은 이야기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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