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더 지니어스'를 바랐더니 '명수는 12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

김현하 승인 2021.09.22 08:20 | 최종 수정 2021.12.05 17:36 의견 0
참가 프로필을 찍는 성기훈(이정재 분). 사진 imdb.com

[OTT뉴스=김현하 OTT 1기 리뷰어]

*본 리뷰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방영 전부터 '오겜월드'를 비롯한 이태원 역에서의 대대적인 홍보.

한국 제작 작품에서 보기 드문 잔인성과 선정성 평가를 받았다는 소문.

주연 이정재ㆍ박해수ㆍ정호연, 특별출연 공유와 같은 스타캐스팅 등 <오징어 게임>은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다.

나 역시 그러한 많은 대중들 중 하나였다.

<오징어 게임>과 같은 서바이벌 게임 장르는 일본,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한 번 성행했던 장르이지만, 한국에서는 대자본을 들인 프로젝트로는 거의 최초의 시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장르물 특유의 클리셰를 거의 그대로 답습하더라도 좀비물 <부산행>처럼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중간만 가도 말이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본 <오징어 게임>은, 그 중간을 가지 못한 작품이었다.

영화와 드라마의 장르. 이 장르에 따라 시청자들이 해당 작품에 기대하는 재미는 달라질 것이다.

액션 블록버스터 장르에서 시청자들은 단순한 플롯과 화려한 볼 거리, 자연스러운 CG와 시원시원한 액션씬을 기다릴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는 연애 주체들의 섬세한 감정 묘사, 부드럽고 밝은 분위기, 통통 뛰는 음악 등을 기다릴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서바이벌 게임 장르에서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 참신한 게임과 게임의 룰을 이용하는 플레이어들의 계략, 배신, 필승법과 같은 두뇌 플레이.

혹은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 때 나타나는 다양한 유형의 인간군상과 이에 대한 입체적인 묘사.

하다못해 플레이어들을 수용하는 게임의 비쥬얼적 독창성, 탈락자들을 처리하는 방식의 참신함, 이런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오징어 게임>에서는 이 중 어떠한 것도 찾기 힘들었다.

〈함께 보면 좋을 색다른 오징어게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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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 진행을 하는 참가자들. 사진 다음 영화

▶ '오징어 게임' 없는 <오징어 게임>

이러한 서바이벌 게임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게임의 설계이다.

게임이 어떻게 설계되냐에 따라 등장인물들이 이를 돌파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긴장감과 캐릭터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머리를 활용할 것이고, 누군가는 몸을 사용할 것이고, 누군가는 누구도 예상 못한 게임의 허점을 이용할 수도 있다.

난이도가 높은 게임의 경우, 이를 해결할 때의 대리 쾌감도 크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은 어릴 때의 전통 놀이에서 따온 게임들을 그 어떠한 가공도 없이 그대로 참가자들에게 내보인다.

게임의 주최자들은 입으로는 허울뿐인 평등을 외치면서 한 개인의 피지컬과 운으로 좌우되는 게임에 이를 보정할 만한 어떠한 제약도 걸지 않는다.

참가자들은 각각 사회에서 사기꾼, 의사, 도박중독자, 탈북자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 파훼법은 단순한 한 가지 방법으로 수렴한다.

'유리다리 건너기 게임'의 경우에는 주인공이 맨 끝 번호에 배정되는 순간, 주인공은 그냥 목숨이 보장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게임이 유발하는 긴장감과 카타르시스가 줄어든다.

이 문제들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은 이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한 '오징어 게임' 파트이다.

'오징어 게임'은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한데다가 진행요원들도 오징어 게임을 형상화한 복장을 착용하고 작품의 첫 장면부터 언급되는 등, 작품의 대표가 되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작진들은 본디 다인원이 필요한 게임에 1:1 대립 구도를 형성하면서 게임의 특성을 살리지도 못하였고, 오징어 게임이 이루어지는 배경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과 비교할 수 없게 단촐하다.

게임을 하는 참가자들은 작품 1화와 9화에 언급된 오징어 게임 내에서의 '암행어사' 룰을 활용도 없이 그저 막싸움으로 서로의 목숨을 뺏어 우승자가 되려 한다.

그러면서 '오징어 게임'의 존재감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친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오징어 게임' 진행요원, <종이의 집>, <오징어 게임> 공식 포스터, <신이 말하는 대로> 스틸컷. 사진 Youtube 캡처, 다음 영화

▶ 오리지널리티는 어딨는가?

<오징어 게임>은 방영 전 예고편 공개 때부터, 붉은 계열의 후드와 동물탈을 쓴 진행요원들과 게임을 진행하는 인형의 비쥬얼로 <종이의 집>과 <신이 말하는 대로>과의 예술의 유사성을 지적당하고 있었다.

<신이 말하는 대로>의 경우에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 파트 뿐만 아니라 목숨을 거는 데스 게임의 소재가 전통 놀이가 된다는 작품 전체의 콘셉트까지 겹친다.

이에 대해 황동혁 감독은 자신의 극본이 구상한 것이 해당 영화보다 선행하였기 때문에 표절이 아니라 밝혔다.

하지만 드라마가 공개되면서 추가적인 표절에 대한 의견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게임에 참여하기까지와의 계기와 유리다리 건너기 게임의 경우 <도박묵시록 카이지>와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작품의 흑막의 경우, 해당 인물의 사연을 듣는 순간 <쏘우> 흑막의 정체가 떠오르면서 1화부터 이를 의심하였고 결말에서 역시 의심은 빗나가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장르에는 장르마다의 클리셰가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오징어 게임>은 다른 작품을, 그것도 핵심 콘셉트를 연상케 하는 설정의 등장이 너무나도 많다.

표절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해당 장르의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바로 다른 작품을 연상하여 전개를 예측할 수 있는 정도이다.

다른 작품을 연상시키는 부분을 빼면 남는 것은 2화의 참가자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플롯과 내부에 잡입한 경찰 준호(위하준 분)의 플롯이다.

전자의 경우는 신선한 시도 혹은 참가자의 거부 의사가 묵살되던 장르 특성을 꼬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그저 시즌2를 의식한 떡밥용 플롯으로, 작품 내에서 아예 사라져도 되는 플롯이었다.

▶ 공감할 수 없는 감정

게임과 다른 작품의 영향을 모두 제거하고 난 후, 남은 것은 신파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식 신파를 모두 절대악으로 규정하고는 싶지 않다.

장르의 대표격인 <배틀로얄>에서도 결국 인간미와 인류애를 중요하게 여겼고, 다른 작품에서도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는 인물들에 대한 인간찬가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에서 주인공 성기훈(이정재 분)의 감정과 결말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기보다는 시청자의 슬픔을 유도하려는 장치로 보인다.
바로 작품에서 묘사된 인간성이 너무 납작하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장르 클리셰를 따르는 인물들이다.

악역으로 설정된 육체파 두목, 이에 기생하는 여자, 희생용 캐릭터, 비극의 연인들 등등...

게다가 이에 대한 추가적인 묘사 없이 전형적인 악인의 모습을 한 참가자들은 끝까지 악하고 주인공의 일행들은 이유도 없이 선한 행보를 걷는 등 납작한 인간성의 묘사를 보여준다.

특히 주인공의 경우, 상황마다 행보와 발언의 일관성에 대해 괴리가 느껴질 정도이다.

주인공이 직전 게임에서 치매노인의 상황파악력을 이용하여 그에게 사기를 치고 난 후, 다음 게임에서 자신 앞의 사람을 밀어죽인 친구를 나무라는 모습은 그야말로 '내로남불'로 보인다.

투표를 통한 게임 중단을 요구하는 조상우(박해수 분). 출처 imdb.com

해당 장르의 팬으로서, <오징어 게임>을 기대한 사람으로서 <오징어 게임>은 분명 실망스럽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의 의의는 여전히 존재한다.
<오징어 게임>은 확실히 많은 수의 해당 장르의 비향유자들에게도 소비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의 낮은 밀도의 플롯과 캐릭터 빌딩은 입문자들에게는 오히려 낮은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다.

또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바는 작품의 메세지이다.

탈북자ㆍ외국인 노동자ㆍ노조원ㆍ노인 등, <오징어 게임>에서 주인공의 일행-선인들은 이 사회의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와 연관해서 생각하면 게임 주최자들이 반복해서 외치면서 전혀 고려하지 않는 '평등'은 현실사회의 기계적 평등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는가?

그러면 <오징어 게임>은 갑자기 사회가 자신들은 평등하다 외치면서 '기회의 평등'만 강조하면서 결국 약자들을 낙오시킨다는 극-사실주의 현실반영 작품이 된다.

제작진이 이를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시즌2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때까지는 마지막 비난을 보류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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