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서보원 OTT 2기 리뷰어] 아스널 클럽 역사상 최초이자 최고의 감독으로 뽑히는 아르센 벵거는 이런 말을 했다.
"제게 축구는 삶의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가끔 두려울 때도 있어요. 어느 한 곳에 인생을 전부 바치는 건 꽤 겁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분명 제 인생을 전부 바쳤습니다"
무언가에 모든 것을 바쳤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무패 우승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세우며 아스널의 황금기를 이끈 아르센 벵거.
축구 선수로 시작해 감독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승패와 성패를 모두 겪은 벵거의 삶은 어떨까.
벵거의 우울하고 행복했던 모든 순간을 담은 다큐멘터리 <아르센 벵거: 무패의 전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 작은 마을의 소년에서 축구계의 한 축이 되기까지
프랑스의 듀틀렌하임, 도시가 아니라 마을이라고 불러야 하는 조그마한 시골에서 아르센 벵거 감독은 나고, 자라고, 생활했다.
프로선수로서 활약하지 못한 그는 대학 석사 학위와 지도자 교육을 동시에 받으며 감독으로 성장했고, 프랑스 리그 낭시와 AS 모나코를 거쳐 감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프랑스 리그 앙의 승부 조작 논란으로 인해 축구계에 신물이 난 아르센 벵거는 잠깐 축구를 멀리하다가 일본 J리그로 깜짝 복귀하며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그렇게 컴백한 클럽은 잉글랜드의 아스널.
아스널은 창단 첫 외국인 감독으로 벵거를 택했다.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이자 감독인 요한 크루이프가 올 것이라 기대했던 아스널 팬들은 "아르센 누구(Arsène who)?"라며 벵거를 농락했다.
축구와 거리가 먼 듯한 왜소한 체형과 멀끔한 패션은 학자나 교수에 더 적합한 이미지를 심어줬고, 그 이미지에 갇힌 벵거에 대한 초기 여론은 대개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선수단 버스 안이 담배 연기로 가득할 만큼 담배를 뻑뻑 피우며 소위 '거친 맛'으로 불리던 잉글랜드 축구가 벵거를 만나면서 완전히 뒤바뀌었다.
아르센 벵거의 지시 하에 담배부터 음주까지 모두 금지당했으니 벵거는 어떤 경우로든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스널과 벵거의 역사적인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그 치열함을 추억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감독 알렉스 퍼거슨은 잉글랜드와 맨유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퍼거슨 감독이 이끈 맨유는 사실상 프리미어리그 내에서 가장 강력한 포식자였다. 프리미어리그를 독주하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막아선 존재가 등장했다.
바로 또 다른 '레드' 계열의 팀, 벵거 감독의 아스널이었다.
벵거 감독이 부임하기 전, 아스널은 사실상 콩가루 집안이었다.
체계가 잡혀있지 않았고 선수들과 감독 간의 신경전 때문에 선수단 장악에 실패한 감독들은 농락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섬세하고 세심한 방법으로 선수단을 케어한 벵거 감독은 곧바로 성적으로써 본인을 증명한다.
벵거가 이끈 아스널은 98-99 시즌, FA컵과 리그 우승을 동시에 일궈내면서 구단 역사상 두 번째 더블을 기록했다.
이로써 맨유의 독주를 막아낸 벵거와 퍼거슨 사이에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다.
실제로 경기 도중 퍼거슨 감독이 벵거 감독의 멱살을 잡을 정도로 감정적인 날을 세우기도 했다.
엎치락뒤치락, 맨유와 아스널은 우승 트로피를 가지고 경쟁하는 팀이 됐다.
하지만 벵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퍼거슨의 맨유도 이뤄내지 못하는 업적을 달성한다.
◆ 무패 우승, 그리고 최고의 위치에서 내려오기까지
02-03 시즌과 리그 우승을 일궈낸 다음 시즌, 벵거 감독은 뜬금없는 말을 한다.
"올 시즌에는 패하지 않겠다"
현실성 없는 말에 영국 내에서는 '정신 나간 소리'라며 벵거 감독을 공격했다.
무엇보다 해당 시즌에는 무려 6번이나 패하며 리그 준우승에 그쳤다.
그러나 03-04 시즌에는 퍼거슨의 맨유까지 버텨낸 아스널은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초 무패 우승을 일궈낸다.
이는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 무적(Invincible)이라 칭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업적이다.
그러나 벵거 감독은 퍼거슨과 달리 정상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열악했던 하이버리 스타디움 대신 새 경기장인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완성하는 프로젝트를 두고서 벵거를 아스널로 데려온 데이비드 딘 부회장이 마찰을 빚으며 사임을 표했다.
데이비드 딘 부회장이 팀을 떠나며 벵거 역시 아스널을 떠나려고 했으나 팀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이적 대신 재계약을 택했다.
그러나 이는 애증 어린 사랑의 서막이었다.
"하이버리 스타디움은 제 영혼이었고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은 제 상처였습니다"
경기장 신축으로 인해 재정적 제한이 있었던 아스널은 기존의 핵심 선수들을 헐값에 매각해야 했다.
무패 우승의 주역이었던 선수들이 줄줄이 아스널을 이탈했고, 그 사이에서 혼자 남은 벵거 감독은 어렵사리 팀을 이끌어 나가야만 했다.
주요 선수들이 팀을 나간 만큼 성적은 이전만큼 좋을 수 없었다. 그에게 존경을 표했던 구너(Gooners, 아스널을 응원하는 팬들을 지칭하는 말)들은 "벵거 아웃"을 외치기 시작했다.
홀로 버티던 벵거 감독은 22년 만에 결국 아스널을 떠났다.
"저의 결정적인 단점은 지금 있는 곳을 너무 사랑한다는 거였어요. 당시에 있던 곳 말이에요. 하지만 사랑 이야기의 결말은 항상 슬픈 법이죠."
사랑해서 떠나는 게 있다면 그게 바로 아스널의 벵거 감독이 아닐까.
'무패 전설'이라는 엄청난 위업에도 불구하고 이 다큐멘터리는 벵거의 영웅적인 모습만을 담지 않는다.
그가 겪은 고통과 슬픔도 함께 담아 희로애락을 보여준다.
아스널 팬이거나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감정적인 동요 없이 보기 힘들 것이다.
<아르센 벵거: 무패의 전설>은 왓챠 익스클루시브로 왓챠에서만 볼 수 있다.
저작권자 ⓒ OTT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ott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