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두리틀> 포스터. 사진 네이버 영화
[OTT뉴스=장혜연 OTT 1기 평론가] 익숙치 않은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면접장에 들어간다.
쓰린 속으로 출근길 지옥철에 몸을 맡긴다.
늦은 저녁 4캔에 만 원하는 맥주를 사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한다.
내가 어릴 적 꿈꿨던 어른은 이런 모습은 아니었는데, 어쩐지 슬퍼진다.
가끔은 내가 그냥 어른인 척하는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아직도 내가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이고, '당신의 하트를 픽업!하는 슈가슈가룬의 쇼콜라'인 것만 같다.
둘리보다 고길동의 마음이 이해가 되고 짱구네 아빠의 재력에 감탄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내 속엔 둘리와 짱구가 있다는 것.
피터팬 증후군인 걸까?
*피터팬 증후군 : 몸은 어른이지만, 어른들의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어른아이' 같은 성인이 나타내는 심리적 현상.
뭐든 간에 내 속의 어린이가 나를 떠나지 않으면 좋겠다.
그 애마저 떠났다가는 '나'라는 존재가 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속으로 영영 사라질 것만 같다.
나와 같이 생각하는 당신을 위해 '당신 안의 어린이를 위한 영화' 시리즈를 시작해 본다.
첫 영화는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연의 <닥터 두리틀>이다.
동물의 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의사 닥터 두리틀이 여왕의 건강을 구하기 위해 동물들과 떠나는 여정을 담았다.
영국 작가인 휴 로프팅의 <두리틀 선생의 바다 여행>을 원작으로 한다.
어릴 적 좋아했던 책인데, 지금도 가끔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집중해서 읽게 되는 소설이라 영화를 보기 전의 기대감도 컸던 듯하다.
▶ "선탠하는 북극곰이 어디 있냐?"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는 당연히 귀여운 동물들이다.
추위 타는 북극곰, 쉽게 흥분하는 타조, 겁쟁이 고릴라, 수술 도구와 셀러리를 혼동하는 오리까지, 사랑스러운 캐릭터 한가득.
매일 똑같은 사람들이랑 지지고 볶고 사는 데에 질린 참이라면, 의외의 하자가 있는 이 친구들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목소리 듣는 재미도 있다.
이름만 대면 아는 배우들, 예를 들면 톰 홀랜드, 라미 말렉, 랄프 파인즈, 셀레나 고메즈 등이 더빙에 참여했다.
글쎄, 캐릭터의 이미지와 배우들의 이미지가 100%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친근한 목소리들이 연기를 해주니, 재미가 더 극대화된다.
<닥터 두리틀>의 동물 캐릭터. 사진 네이버 영화 스틸컷
▶ "무서워해도 돼, 치치"
닥터 두리틀이 고릴라 치치에게 건네는 "무서워해도 돼, 치치"라는 대사가 이 영화 내내 나를 위로했다.
치치는 덩치는 산만 하지만 싸움은 싫고 담요를 안고 자야 하는 마음 여린 고릴라다.
치치의 모습이 꼭 지금의 내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키는 자랐지만, 아직 어른의 옷은 어색한 느낌이라, 세상을 헤쳐나가는 방법을 몰라 어른으로 사는 게 무서운 것이다.
그런 나에게 닥터 두리틀의 괜찮다는 말 한마디는 따뜻한 토닥거림과 같았다.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던 치치가 호랑이와 싸워 이기는 모습에 어쩐지 눈물이 난다.
▶ "앞으론 채소를 많이 먹고 갑옷은 덜 먹도록 해"
오랜만에 순한 맛 영화를 보니 속이 편안해졌다.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의 장점이 바로 이것이지 않나 싶다.
<D.P>나 <오징어게임>, 분명히 재미는 있다.
하지만 보고 나서 미소를 띠고 잠자리에 들긴 어렵다.
<닥터 두리틀>의 스토리가 재미있냐, 또는 캐릭터가 입체적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긴 어렵다.
하지만 기승전결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또 악당도 악당답지 않기 때문에 속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엄청난 CG나 톡톡 튀는 상상력, 스릴 넘치는 모험을 기대한다면 다른 영화를 보시길.
위의 제목에 달아둔 것처럼 채소 같은 영화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엄마가 해준 감자채볶음 정도가 어울릴 것 같다.
<닥터 두리틀>의 주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사진 네이버 영화 스틸컷
아무래도 영화를 보기 전 가장 기대되는 것이자 걱정되는 것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였다.
로다주가 연기를 잘하는 건 알지만, 대충 아이언맨이 허름한 배를 타고 항해하는 영화 같은 느낌일까 봐 우려되었던 것이다.
보고 나서 내린 결론은, 아이언맨은 생각도 안 난다는 것.
콜럼버스가 되고 싶었던 당신에게 가장 먼저 추천한다.
세상에 믿을 만한 사람 하나 없는 것 같은 사람에게도, 복슬복슬 동물 친구들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이 세상이 아직 무서운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넷플릭스 <닥터 두리틀> ▶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