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체조계를 뒤흔든 증언,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이희영 승인 2021.07.21 07:00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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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Athlete A) 포스터. 사진 넷플릭스


[OTT뉴스=이희영 OTT 평론가] 올림픽 개막이 눈앞이다.

코로나19가 낳은 불안 속에서도 선수들은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모든 선수에게 올림픽은 인생의 목표다.

4년에 한 번 있는 대회에 가기 위해, 그리고 메달을 따기 위해 그들은 사활을 건다.

올림픽은 국가적인 명예와 자존심을 드높일 기회이기도 하다.

국가 역시 협회를 조직해, 명예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선수들을 육성하고 관리한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에게 큰 상처를 입힌 사건이 2016년 8월, '인디스타'의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29년 동안 전미 체조 협회 여자팀의 주치의로 일한 래리 내서가 선수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다.

그리고 전미 체육 협회는 이 사건을 철저히 은폐했다.

다큐멘터리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Athlete A)는 이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2015년, 래리 내서의 성폭행 사실을 협회에 고발한 체조선수 매기 니콜스는 협회와 미국 올림픽 위원회, 그리고 미시간 주립대로부터 이름을 삭제당한 채 '선수 A'로 기록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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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하는 체조선수의 뒷모습. 사진 넷플릭스 예고편 캡처


주치의의 성폭력과 협회의 사건 은폐는 체조계의 내부 환경과 긴밀히 관계돼 있다.

미국 체조 대표팀의 훈련 책임자는 마르타 카롤리와 벨라 카롤리 부부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10점 만점을 받은 나디아 코마네치의 코치였던 그들은 아동학대에 가까운 가혹한 훈련법을 고수했다.

최고를 꿈꿨던 미국은 루마니아로부터 망명한 이 부부를 데려왔고, 우승을 위해 그들의 훈련법을 채택했다.

그들은 '카롤리 목장'에 선수들을 데려가 전지훈련을 진행했다.

심한 언어폭력과 협박도 서슴지 않는 가혹한 훈련이었다.

대부분 10대 초중반인 선수들이 그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친절하고 유쾌한 의사 래리 내서뿐이었다.

음식을 몰래 주는 등 선수들의 신뢰를 얻은 그는 치료를 가장한 성폭행을 자행했다.

당시 선수들은 자신들이 당한 것이 범죄인지도 몰랐다. 그들은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범죄자의 배후에는 전미 체조 협회가 있었다.

2015년 6월, 국가대표를 지망하던 체조선수 매기 니콜스가 래리 내서의 성 학대 사실을 신고했다.

법률상 아동의 보호를 위해 곧바로 경찰이나 아동 보호국에 이를 신고해야 했지만, 협회의 누구도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침묵으로 일관하며 피해자 측을 억압했다.

리우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매기는 충분한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예비 선수로 선발되지 못했다.

선수들의 부모를 으레 쫓는 카메라와 마이크도, 지정 좌석조차도 매기의 부모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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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스타의 전미 체조 협회 성범죄 은폐 보도. 사진 넷플릭스 예고편 캡처


최초로 사건을 보도한 'USA 투데이 네트워크' 소속 언론 '인디스타'의 시작은 래리 내서가 아니었다.

체조 코치들의 성적 불법 행위에 관해 여러 차례 항의받았음에도 사건을 은폐한 전미 체조 협회의 의혹을 보도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 기사를 읽은, 은퇴한 체조선수들이 래리 내서의 범죄를 제보했다.

무려 199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최초로 그를 고발한 레이철 덴홀랜더를 비롯한 생존자들은 당시의 괴로운 기억, 그리고 2차 가해와 싸우며 진실을 증언하고자 분투했다.

래리 내서는 2017년 2월 기소되었고, 이듬해 1월 생존자들의 증언이 진행됐다.

올림픽 출전 경험이 있는 선수들을 비롯한 수많은 생존자가 재판에 출석해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2016 리우 올림픽 4관왕인 시몬 바일스 역시 그의 피해자임을 고백하였다.

그는 성 학대 혐의로 기소된 재판 두 건에서 징역 40∼125년, 40∼175년형을 선고받았다.

카롤리 부부의 목장은 영구 폐쇄되었다. 스티브 페니 전미 체조 협회장 역시 체포되었다.

지난 15일에는 미 FBI가 당시 내서의 성폭행 사건을 알고도 방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범인을 체포하기까지 70명 이상이 추가로 피해를 입었다. 그는 330명이 넘는 여성에게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매기 니콜스는 대학 대표 선수로 활동했고, 그는 2018년과 2019년 전미 대학 체육 협회 종합 챔피언에 올랐다.

스포츠를 사랑하고 즐기는 그와 다른 여성들을 좌절시킨 것은 래리 내서와 전미 체육 협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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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하는 안젤라 포빌라이티스 검사와 레이철 덴홀랜더. 사진 넷플릭스 예고편 캡처


체육계에서의 이러한 폭력 및 성폭력 사건이 낯설지 않다는 것은 통탄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여럿 보고된 바 있다.

미처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한 일들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메달보다, 국가의 명예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선수들은 성적을 거두기 위한 자들이 아닌 인간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에 균열을 내는 사건이 더는 일어나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생존자 카일 스티븐스는 "당신(래리 내서)도 이제 알게 됐겠지만 어린 소녀는 영원히 그 상태로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자라나 당신의 세계를 파괴할 만큼 강한 여성이 됐다"라고 증언했다.

용기 있는 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다.

성범죄 피해 내용이 자세하게 묘사되므로 주의해서 시청해야 할 것이다.

◇ 참고 기사

▷ 임병선, ""거짓말쟁이" 성추행 의사 나사르에게 쏟아진 피해자들 증언", <서울신문>(2018.01.17)

▷ 황준범, "'피해자 330명' 미 체조계 성폭력 사건, FBI 부실 대응이 피해 키웠다", <한겨레>(202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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