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복도 많고 강인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넷플릭스, 티빙: <찬실이는 복도 많지>

박다희 승인 2021.06.18 09:22 | 최종 수정 2022.04.25 15:15 의견 0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메인 포스터. 사진 네이버 영화


[OTT뉴스=박다희 OTT 1기 리뷰어] 이보다 더 황당한 일이 있을까.

영화의 무사(無事) 기원을 위한 고사를 마친 회식 자리.

배우, 스텝들이 함께 모여 술 게임을 하던 중 지 감독(서상원 역)이 심장을 부여잡으며 쓰러지고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린다.

지 감독과 오랜 기간 합을 맞춰왔던 영화 프로듀서 찬실(강말금 역)은 하루아침에 엎어진 영화 탓에 백수가 되어 버리고, 일이 끊긴 채로 용달차 한 대도 못 올라오는 어느 달동네 할머니(윤여정 역) 집으로 이사를 간다.

후배들의 도움을 받아 이사 가는 찬실. 사진 네이버 영화


당장 돈이 없어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한다던 찬실은 친한 배우 소피(윤승아 역) 집의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소피의 프랑스어 선생님이자 단편 영화감독인 영(배유람 역)을 만나 잠깐의 설렘도 느낀다.

그러나 현실의 고달픔을 핑크빛 로맨스로 잠시나마 달래볼까 했던 마음은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흐지부지 마무리된다.

실연의 상처로 아파하는 찬실 앞에 그녀의 눈에만 보이는 허상 장국영이 등장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라며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

이에 찬실은 멀고 거대한 꿈이나 목표 대신 자기 앞에 놓인 일상에 집중하기로 한다.

그녀는 집 주인 할머니의 한글 공부도 도와주고 함께 콩나물을 다듬기도 하며 그동안 올인해 왔던 영화에서 벗어나 '영화 프로듀서'가 아닌 '이찬실'로서의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집 주인 할머니의 한글 공부를 도와주는 찬실.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 찬실이 씩씩하게 현실을 극복해 나가고 나아가 삶의 방향을 재정비하는 과정을 잔잔하면서도 유쾌하게 그려냈다.

연애도 뜻대로 되지 않고 집은커녕 모아 놓은 돈도 없을뿐더러 일까지 끊긴 찬실이지만 영화 제목이 말해주고 있듯 결국 찬실이는 복이 많은 사람이었으며 그 복은 타인이나 외부적 상황이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그녀 본인이 스스로 만들어오던 것이었다.

평생 함께할 것만 같았던 감독의 죽음, 자신을 이성으로 보지 않는 후배 영, 찬실의 능력과 가치를 전혀 몰라주는 영화사 대표는 찬실이 어찌하지 못하는 영역일 것이다.

그러나 해맑은 얼굴로 자신에게 손 내밀어 주는 소피를 친구로 두거나, 집 주인 할머니에게 한글을 알려주며 정을 나누고, 나아가 이보다 더 따뜻할 수 없는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존재 장국영을 만들어낸 것은 모두 찬실 스스로가 이뤄낸 것들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만들어 온 복을 토대로 쉽게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매 순간을 충실하고 꿋꿋하게 마주하려는 찬실은 누구보다 주체적이고 강한 인물이었다.

자신이 만든 허상 장국영으로부터 위로받는 찬실. 사진 네이버 영화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이상과 불분명한 목표를 그리며 그것만을 향해 달려가고, 그것이 곧 내 전부라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아무리 멋진 이상과 목표라도 그것들은 내 전부가 될 수 없으며, 나를 행복하게 하거나 살아가는 재미를 만들어 주는 수단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사는 게 뭔지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라는 찬실의 묵직한 고백은 맹목적으로 영화만을 위해 제 자신을 쏟아부었던 지난날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방향성을 갖게 됐음을 의미한다.

자신이 삶이 소중해진 만큼 '궁금'해졌으며, 자신의 인생 '안'에 존재하는 영화에 대한 애정과 갈증을 담담히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생을 바친 영화 프로듀서로서의 커리어와 지향점을 잃어버렸다 생각한 순간, 찬실은 그보다 더 소중한 자기 자신을 긍정하게 되었으며 진정으로 본인이 원하는 삶의 모습과 방향에 대해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이것이 결코 완성이라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찬실은 아프고 비참했던 시간을 지나 조금 더 깊고 단단한 사람이 되었으며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인생은 충분히 아름답다.

그리고 그녀 앞에 펼쳐질 꽃길을 온 마음 다해 응원하게 된다.

장미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들꽃처럼 수수하고 풀꽃처럼 씩씩한 찬실의 이야기는 넷플릭스와 티빙에서 만나볼 수 있다.

◆ OTT 지수 (10점 만점)

1. 연기 (조연·주연 등 등장인물 연기력): 7
2. 스토리(서사의 재미·감동·몰입도 등): 7
3. 음악 (OST·음향효과 등 전반적 사운드): 5
4. 미술 (미장센·영상미·의상·배경·인테리어·색감 등): 6
5. 촬영 (카메라 구도·움직임 등): 6

→ 평점: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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