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투어리스트 공식 타이틀. 사진 NETFLIX 유튜브 캡처


[OTT뉴스=장혜연 OTT 1기 리뷰어] 지금처럼 여행이 고팠던 적이 없다.

커다란 프로젝트가 끝나면 배낭 가볍게 매고 훌쩍 떠나곤 했는데, 유럽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는 동안 관광객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소도시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마지막 여행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하다.

여행지에서 사와 하얀 벽에 붙여둔 엽서들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며 한숨만 푹푹 내쉰다.

나, 도대체 언제쯤 여행 갈 수 있을까?

이렇다 보니, 오만 여행 콘텐츠를 다 본다. 대리만족이라도 해야 마음이 좀 풀리겠다.

'세계테마기행'은 진작 섭렵했고, '1박2일'이 일주일의 낙이며, 허영만 아저씨가 밥 먹으러 돌아다니는 '백반기행'까지 보는 지경이다.

조금 색다른 여행지는 없나 하는 찰나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다크 투어리스트: 어둠을 찾아가는 사람들>가 나타났다.

다크 투어리즘' 여행지에 방문한 데이비드 패리어. 사진 NETFLIX 유튜브 캡처


인생의 기묘한 측면에 늘 흥미를 가졌던 뉴질랜드의 기자 데이비드 패리어가 평범함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유행하는 여행, 다크 투어리즘을 취재한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은 일반적으로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해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을 말한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9.11 테러의 현장, 또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방문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된다.

이 호기심 넘치는 기자는 전쟁 현장과 재해 현장으로 향할 뿐만 아니라, 연쇄 살인범과 마약왕의 흔적을 따라가기도 하고, 패기 넘치게 악령 들린 사람과 유령의 집을 일부러 찾아간다.

광란과 섬뜩함, 죽음에 초점을 맞춰 전 세계의 극단적인 투어리즘을 소개한다.

제 2차 세계대전을 재연하는 다크 투어에 참여 중인 데이비드 패리어. 사진 NETFLIX 유튜브 캡처


그의 첫 번째 여행지는 남아메리카의 콜롬비아. '코카인 왕'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만나는 나르코 판타지 투어를 한다.

마약왕을 닮은 택시 기사의 차에서 내려 왕의 어두운 과거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사는 바리오 파블로 에스코바르(콜롬비아 메데인의 산동네)를 돌아보고, 파블로의 충직한 심복이었던 청부사 파파이가 안내하는 라 카테드랄(파블로의 호화판 감옥)에서 파블로의 구 왕국을 내려다 본다.

두 번째 여행지는 멕시코의 멕시코 시티다. '산타 무에르테'라는 악마를 섬긴다는 신종 종교를 살펴보러 갔다가, 엑소시스트 신부님을 만나 악령 쫓는 의식을 구경하기도 하고 죽음의 성녀를 숭배하는 빈자들의 거리도 걸어본다.

중남미의 마지막 투어는 '불법 이민 밀입국 체험'으로 마무리한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하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국경을 넘는 이민자가 되어 보는 투어로, 강도를 만나 두드려 맞고 가방을 뺏기는 경험에 50달러를 지불한다.

"돈과 시간을 다 대줘도 절대 안 할 여행" 이게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첫 번째로 든 생각이었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침대에 널브러져 있고, 노천카페에 죽치고 앉아 있고, 밤새도록 칵테일을 홀짝거리는 게 여행의 묘미 아니란 말인가.

뭐 하러 그렇게까지 멀리 놀러 가면서, 저 돈을 주고 이 고생을 하고, '아름답지도 않은' 광경을 본단 말인가.

하지만, "총에는 무슨 힘이 있는 줄 알아? 인간을 평등하게 해주지." 하는 청부사 파파이의 말.

"세상을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다면 가장 좋겠죠. 그냥 행복하게 산다면요. 죽고 나면 일상을 누릴 시간이 없어요."라는 악마의 종교 지도자.

"얼마나 살기 힘들면 목숨을 걸고 이렇게 국경을 넘겠어요?" 하는 밀입국 투어의 여행자의 말.

이 말을 듣고 생각이 바뀐다.

"죽음"과 범죄, 전쟁만큼 인생의 의미를 명확하게 또 강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불법 밀입국 체험 중인 데이비드 패리어. NETFLIX 유튜브 캡처.


나의 지루한 일상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서야 삶의 목적과 '살아있음'에서 오는 행복감과 고통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8할이 죽음으로 이루어진 여행을 관찰하면서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강력한 힘과 욕망은 무엇인지, 또 본질적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래서 '다크 투어리스트'가 되나 보다.

데이비드 패리어의 여행은 미국, 후쿠시마, 투르크메니스탄, 런던, 캄보디아로 이어진다.

죽음을 직시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새로운 '사서 고생'은 어떨지 너무나도 궁금해진다.

돈도 없고, 백신 여권도 없고, 여유도 없지만, 항공권 할인 정보를 뒤적거리는 당신에게 가장 먼저 추천한다.

엉뚱함이라면 다 좋은 사람에게도, 먹방 여행 콘텐츠가 이제는 지겨워진 사람에게도, '배틀 그라운드'의 주인공이 되어보고 싶던 사람에게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