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웅인데 영웅이 아닌 기묘한 영화, 왓챠 '그린 나이트'

왓챠 단독 공개: '그린 나이트'

박정현 승인 2022.05.09 11:22 의견 0
영화 '그린 나이트' 포스터(사진=다음영화). ⓒOTT뉴스

[OTT뉴스=박정현 OTT 평론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필자는 이 영화 '그린 나이트'를 낚여서 봤다.

왓챠에서만 볼 수 있는 독점 콘텐츠 '왓챠 익스클루시브'인 '그린 나이트'는 소개글만 보면 영락없는 히어로물이다.

영화는 아서왕(숀 헤리스 분)의 조카이자 별 볼 일 없이 노닥거리며 살아가던 가웨인(데브 파텔 분)이 기이한 '크리스마스 게임'에 뛰어들면서 시작된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바위에 박힌 검 '엑스칼리버'를 뽑아낸 전설로 유명한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무용담을 나누려던 자리에 불쑥 나타난 녹색의 기사(랄프 이네슨 분)가 "가장 용맹한 기사를 앞에 나서게 해 명예롭게 나를 향해 칼을 내리치게 하라"라고 사람들을 도발한 것이다.

이 게임에 선뜻 응한 이가 바로 가웨인으로, 왕과 기사들 앞에서 내세울 만한 영웅담 하나 없는 그로서는 '스타 기사'가 될 기회를 놓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기묘하게도 나무의 형상을 한 기사는 자신에게 칼을 내리친 대가로 영예와 재물을 갖게 될 것이나, 이날 자신에게 행한 그대로 1년 뒤 돌려받아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덧붙인다.

여기서 핵심은 꼭 죽여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기사가 "뺨이 긁히든 목이 잘리든 받은 그대로 돌려줄지니"라고 구태여 설명한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였다.

녹색의 기사가 떠난 자리에 서 있는 가웨인(사진=다음영화). ⓒOTT뉴스

허나 가웨인은 그의 목을 일격에 쳐버린다.

애초에 녹색의 기사가 자신의 무기인 도끼를 바닥에 내려놓고 가웨인 앞에 무릎 꿇고 있었으니 공정한 대결도 아니었다.

'무언가'를 해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목을 쳐버린 대가로 가웨인은 '영웅담'을 얻게 되나, 1년 뒤 녹색 예배당으로 찾아가 똑같이 목을 베어져야만 하는 저주에 묶여버리게 된다.

기사의 얼굴이 바닥에 떨어지며 피가 흩뿌려지고 목 잃은 기사가 태연하게 일어나서 잘린 목을 들었을 때, 또 그가 "지금부터 1년이다"라는 말을 덧붙이며 웃으며 사라졌을 때 필자는 직감했다.

이 영화, 가웨인이 죽음을 피하려고 애쓰지만 끝내 예정된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서사로 이뤄지겠구나.

◆ 지극히 인간적인 '영웅', 가웨인

죽음을 향한 여정을 떠나는 가웨인(사진=다음 영화). ⓒOTT뉴스

여기까지 봤을 때 여러분 역시 필자가 이 영화의 스토리를 처음 왓챠에서 접했을 때와 비슷한 기대를 하게 될 테다.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하며 액션 위주의 장면들로 구성된,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 흐르는 모험과 영웅의 일대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이쯤에서 찬물을 끼얹자면 가웨인은 무예가 출중하지도, 쟁쟁한 수하를 거느릴 만큼의 카리스마가 있지도 않다.

그저 겁이 많으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캐릭터일 뿐이다.

마지막까지 보아도 가슴 뛰는 히어로물의 '전형적' 서사와 장면은 이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처음에 필자가 이 영화를 '낚여서 봤다'라고 표현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은 낚임'이었다.

이 영화 '그린 나이트'는 다 본 뒤로도 리뷰 쓰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포일러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과연 내가 이 복잡하면서도 매혹적인 영화를 제대로 평할 수 있을까 고뇌한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끝에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릴 것 같은 이 영화 소개에 있어서는 최대한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주인공 가웨인은 어떻게 보면 참... 한심해보인다.

'머리를 참한 자'라는 별칭이 생긴 이후에도 대비 없이 1년을 보낸 데다 녹색의 기사를 만나기 위해 떠나는 여정에서도, 녹색의 기사를 만나게 되는 순간에도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액션은 없다.

대신 끝없이 나타나는 기묘한 사건과 상징적인 대사들 속에서 가웨인은 죽음의 선택지 바깥으로 도망치길 원할 뿐이다.

◆ 매력적인 사운드와 눈을 사로잡는 미장셴

자신의 잘린 목을 들고 있는 녹색의 기사(사진=다음영화). ⓒOTT뉴스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은 "주인공이 정말 목이 잘려 죽고 말 것인가"라는 강력한 질문 하나지만, 느릿하고 지루한 무드로 반복되는 장면 속에서 필자가 단 한 번도 졸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매력도 있어서였다.

덧붙이자면 필자는 특히 '반복되는 장면'에 취약한데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경우에도 영화관에서 보다가 사막이 너무 계속돼 잠든 바 있고, 스토리의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린 나이트'는 달랐다.

보지 않고 설명만 들어서는 결코 짐작할 수 없는 영화 '그린 나이트'만의 힘은 바로 탁월한 사운드와 미학적인 장면 구성이다.

상상을 돕기 위해 잠깐 설명하자면, 이 영화는 도입부터 시선을 잡아끈다.

"태초 이후 이보다 경이로운 세상이 있으랴. 바위에서 검을 뽑은 소년 그보다 명망 높은 왕은 없으리. 허나 이것은 그 왕의 이야기도 그 왕의 노래도 아닐지니"라는 나레이션과 함께 왕좌에 홀로 앉은 남자가 보인다.

화면상 처음에는 멀리 있던 남자가 서서히 가까워지다가 이목구비가 보여려는 순간, 그 얼굴이 화르륵 불타고 속삭이던 내레이션의 톤에도 변화가 생긴다.

왓챠 영화 소개에 적힌 것 외에는 사전 정보 없이 이 영화를 보기 시작한 필자는 그의 얼굴이 불타는 순간 탄성을 외치며 영화에 확 집중할 수 있었다.

불타던 얼굴이 서서히 가까워지는 동안에도 내레이션이 이어지는데, 바로 "그 대신 새로운 이야기를 내 들은 그대로 전할 것이라. 용맹하고 담대한 모험 이 역사는 고스란히 남아 위대한 고대 신화처럼 비석에, 또 가슴에 영원히 시작되리라"라는 내용이다.

아서왕의 이야기가 아닌, 담대한 모험의 역사가 무엇일까.

처음에는 '모험'에 집중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 도입으로 돌아가자 불타고 있는 남자의 얼굴에 더 집중하게 됐다.

얼굴이 불타고 있다는 건 그 왕좌에 앉아서는 안 됐다는 의미가 되기도 할 터.

가웨인은 '만들어진 영웅'이었고,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닌 '영웅'이라는 왕관을 쓴 대가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야 했으며, 그 여정에서 자신이 '진짜 영웅'이라는 걸 증명할 만한 모험도 하질 않는다.

대신 그 여정은 죽음을 의연히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과 죽음을 거부하고픈 마음이 계속 충돌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영화는 그 속에서 매혹적인 장면과 기묘한 사운드, 일회성이지만 독특한 캐릭터들을 지속적으로 등장시켜 "이상하다, 왜 자꾸만 보게 되지?"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마력'을 발휘한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다면 여기서 '뒤로가기'를 눌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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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서왕 원전을 비튼 영화 '그린 나이트', 색깔로 훑어보기

영화 '그린 나이트'에는 매혹적인 장면이 다수 등장하나 설명이 부족하다.

다 보고 난 뒤에야 낱낱이 흩어져 있던 장면들이 하나씩 연결되며 "아, 그런 이야기였구나!" 탄성하게 만듦과 동시에 해석의 여지가 다양해 여러 사람들의 토론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상징적이고 복잡한 영화이니만큼 취향을 타기 마련이라 좋게 보는 사람은 "미쳤다!"라고 외칠 것이고, 취향이 아니라면 "대체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야!"라고 하게 될 수 있을 테다.

필자에겐 '극호'까진 아니었지만, 명백한 '호'였다.

지하철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무엇보다도 사운드가 탁월해 그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 빨려 들어가 몰입할 수 있었다.

이처럼 사운드와 미학적인 장면 구성을 잘 해내는 영화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필자의 개인적인 욕심을 덧붙이자면 취향이 아닐 것 같아도 한 번쯤은 왓챠에서 클릭해보길 권한다.

도중에 화면을 끄게 되더라도 '아... 이렇게도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면 영화 감상의 폭이 한 뼘은 더 넓어질 테니까.

◆ OTT 지수 (10점 만점)

1. 연기 (조연·주연 등 등장인물 연기력): 6
2. 스토리(서사의 재미·감동·몰입도 등): 6
3. 음악 (OST·음향효과 등 전반적 사운드): 9
4. 미술 (미장센·영상미·의상·배경·인테리어·색감 등): 8
5. 촬영 (카메라 구도·움직임 등): 8

→ 평점: 7.4

* 평점 코멘트: 캐릭터를 잘 반영한 연기력은 좋았으나 탁월하다고 하기엔 애매하다. 스토리는 호불호가 많이 갈릴 듯 해 중간정도 점수로 책정했다. 하지만 음악과 미술은 다소 느슨하고 지루한 스토리를 상쇄할 만큼 매력적이었고, 카메라 구도나 움직임 역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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