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최초'의 프로파일러,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실화 기반 웨이브 오리지널 작품

정수임 승인 2022.02.04 16:15 | 최종 수정 2022.02.14 11:30 의견 0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포스터. 사진 공식 홈페이지


[OTT뉴스=정수임 OTT 평론가] '최초의 의사, 최초의 발명가, 최초의 항해사'

어느 한 분야의 최초라는 타이틀은 사전적 정의를 넘어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있다.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 '최초'의 업적을 인정하고 상징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 그 길을 개척하며 겪는 외롭고 힘든 싸움에 대해서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대개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대한민국을 공포에 빠뜨린 동기 없는 살인이 급증하던 시절, 악의 정점에 선 이들의 마음 속을 치열하게 들여봐야만 했던 최초의 프로파일러 이야기다.

'한국 최초 프로파일러'라는 존재가 첫발을 내디딘 출발점과 이를 정착화 시키는 험난한 과정을 보여준다.

3화에 등장한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은 외로운 법이잖여, 그 얼마나 외롭겠어"라는 형사과장 백준식(이대연 분)의 한 마디는 바로 이런 시선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대목이다.

드라마 1~4화의 시대적 배경인 90년대 중후반에는 같은 경찰들에게, 그리고 시민들에게 있어 경찰의 대표 임무란 범인을 잡는 것이었다.

그것이 대한민국 경찰의 의무이자 눈에 보이는 뚜렷한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 조직을 설득하기 위해 애쓰는 국영수. 사진 웨이브 캡처


하지만 감식계장 국영수(진선규 분)는 범인을 잡는 것만큼이나, 과거의 범죄를 통해 미래의 범죄를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홀로 외친다.

그는 과학수사와 범죄심리 분석, 이른바 프로파일링에 대한 필요성을 주장하는 인물이다.

갈수록 더 교묘하고 지능적인 동기 없는 흉악 범죄들이 늘어날 텐데, 프로파일링이 이런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영수는 이미 감식반에서 알아주는 실력자지만 절대 자신의 영역에 안주하지 않는다.

들은 체도 않는 윗선을 설득하며 외로운 항변을 이어가는 와중에 이 일에 걸맞은 적임자까지 제대로 찾아낸다.

그는 범죄자의 행동을 분석하는 일에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감수성이 왜 필요하냐는 물음에 한마디로 답한다.

"사람의 마음을 분석하는 일이니까"

살인사건 진범을 잡는데 성공한 송하영. 사진 웨이브 캡처


그리고 또 다른 인물. 다소 냉정한 눈빛과 무심한 표정, 강력계 형사 송하영(김남길 분).

얼핏 남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로 감정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못할 뿐 사실 누구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작품은 송하영이 피해자의 죽음을 연민하고 유가족을 걱정하는 장면을 결코 직접적으로 강조하지 않는다.

1, 2화에서 연인 살해 혐의로 체포된 방기훈(오경주 분)은 송하영과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경찰서에서 서로 마주쳤을 때, 방기훈은 그를 알아보고 결백을 주장하지만, 송하영은 어떤 반응도 하지 않는다.

그런 송하영을 보며 시청자들은 자연스레 이런 생각을 한다.

'일면식 없는 그저 동창인가보다', '모른 척 지나치는 걸 보면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게 아닐까' 또는 '살인사건 용의자인데 친구가 무슨 소용이겠어' 같은.

하지만 송하영은 또 다른 성범죄자인 양용철(고건한 분)을 몇 차례 면담하면서, 묵묵히 범인의 심리를 파악하고 행동을 분석하는 데 집중해 결국 진범을 잡는다.

방기훈은 자신의 포장마차를 찾아온 송하영에게 "너 옛날에도 그랬어, 사람한테 관심 없는 척, 그러면서 뒤에서 마음 써줬던 거"라며 고마움을 전한다.

송하영은 딱 그런 사람이다.

진범을 꼭 찾아달라는 유가족의 부탁에도 그는 "저희가 잡겠습니다. 걱정 마세요"라는 식의 위로를 하진 않는다.

몰래 발끝의 이불을 덮어주거나, 건네지 못한 손수건을 두고 오는 행동은 그런 성향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아마 용의자가 동창이 아니었어도, 피해자의 부모가 자책하지 않았더라도 그의 행보는 동일했을 것이다.

정체성 입증을 위해 노력하는 범죄행동분석팀. 사진 웨이브 캡처


이 첫 번째 사건은 기존의 수사 방식을 넘어, 범죄행동분석팀을 출범시키는 시발점이 된다.

물론 아직 출범이라는 표현이 조금 거창하게 들릴 수 있다.

범죄행동분석팀 창설은 강압 수사로 경찰을 향한 비난이 쏟아지자, 여론을 잠재우려는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3, 4화에서는 이들이 팀을 꾸리고 첫 투입된 아동 살인 사건을 다룬다.

나름 형사과 직속임에도, 범죄행동분석팀은 사건을 맡은 기동수사대에 의해 번번이 사건 현장에서 배제되고 무시당한다.

팀을 만드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는데, 본격적인 수사 역시 험난한 길을 예약한 수준이다.

몰래 사건 자료를 공유받고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는데, 시간은 점점 흐르고 용의자를 특정 짓기도 쉽지 않다.

송하영과 국영수는 나름의 수사를 바탕으로 용의자 프로파일링 결과를 보고하지만 '무슨 근거냐, 너무 막연하다, 차라리 혈액형 분석이 낫겠다'는 소리를 듣는다.

기수대 팀장 윤태구(김소진 분)는 송하영에게 "그쪽 팀에게는 이 사건이 단지 관심일지 모르겠지만, 우리 팀한테는 의무거든요!"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특히 '관심'과 '의무'라는 단어에 힘주어 말하는데, 이는 후에 사건 해결에 키포인트 역할을 한 송하영의 "우리도 관심이 아닌 의무감으로 움직인다는 걸 보여줘야 하니까요"라는 말과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비록 세상은 범인 검거가 끝이라 생각할지라도, 이들은 그 후를 생각해 움직인다.

그리고 범인과 심도 깊은 대화를 통해 심리를 분석, 기록하고 데이터화한다.

이처럼 범죄행동분석팀이 자신들의 존재와 팀의 정체성, 프로파일링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달리는 과정은 고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무척 흥미진진하다.

윤태구를 비롯해 경찰 조직을 조금씩 이해시키는 것처럼, 시청자들도 하나둘 설득시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최초는 늘 그렇다. 기존의 선입견을 깨부수려면 두 배 세 배의 노력으로 기반을 다져야 한다. 그리고 증명해야 한다.

나는 신입생 시절 'develop'과 'cultivate'의 차이를 설명하라는 교수님의 말에 머뭇거렸다.

남들이 가던 길을 이어 발전시키는 것과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의 차이를, 이제는 조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웨이브 오리지널인 SBS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웨이브에서 독점 공개된다.

웨이브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 바로가기

저작권자 ⓒ OTT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ott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