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 <이터널스>

디즈니플러스: <이터널스>

이희영 승인 2022.01.19 09:00 의견 0
<이터널스> 포스터. 사진 네이버 영화

[OTT뉴스=이희영 OTT 평론가] 지난해 11월 3일 국내 개봉한 <이터널스>가 1월 12일 디즈니플러스에 공개됐다.

<노매드랜드>의 중국계 감독 클로이 자오가 연출을 맡았고, 배우 마동석이 캐스팅돼 화제를 낳았다.

그가 맡은 배역 '길가메시'는 '이터널스'의 일원이다.

'이터널스'란 7천 년 전 지구로 날아온 외계의 존재들로, 포식자 '데비안츠'로부터 인류를 지키며 문명 발전을 지켜봐 왔다.

총 10명인 이터널스는 각기 다른 성별과 인종, 성향을 지닌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의 다양성에는 이들이 이렇게 구성'돼야만 한다'는 사명감까지 녹아 있다.

에이잭(셀마 헤이엑 분)과 스프라이트(리아 맥휴 분), 그리고 마카리(로런 리들로프 분)는 영화로 각색되며 성별이 여성으로 바뀌었다.

그중 마카리는 MCU 최초의 농인 히어로로, 수어를 이용해 동료들과 소통한다.

파스토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분)는 흑인이자 동성애자로 남편과 함께 아들을 키운다.

고정된 성 역할을 뒤집고자 한 시도 역시 드러나 있다.

2대 연속으로 여성인 에이잭, 세르시(젬마 찬 분)이 이터널스의 리더를 맡는다.

과잉 기억이 유발한 정신건강 이상에 시달리는 자는 테나(안젤리나 졸리 분)로, 그를 보살피며 동료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등 '돌봄'을 행하는 자는 길가메시로 나타난다.

이러한 모습에는 인류 문화의 기원이 된 그들의 다양성이 지극히 당연하며 또 그래야만 한다는 의지가 읽혔다.

지구에 도착한 이터널스 10인. 사진 네이버 영화

이러한 캐릭터 구성과는 달리 <이터널스>는 국내 개봉 후 한 차례 논란에 휩싸인 적 있다.

원자폭탄 공격을 당한 일본 히로시마의 모습이 삽입돼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기술을 전수해 준 파스토스가 그 기술의 발달이 낳은 참극에 괴로워하는 장면이었다.

해당 장면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으로서의 일본의 책임을 지운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특히 우리나라 관객들의 반발이 컸다.

일본계 각본가들이 '이 문제에 대해 전 세계 관객이 생각해보게 하려고 (해당) 장면을 넣었다'라는 발언을 해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그 장면이 등장한 맥락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나, 이 논란의 핵심은 '굳이 그것이어야만 했는가'에 있다.

히로시마가 반전(反戰)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것은 원자폭탄으로 쑥대밭이 된 그곳의 직관적 이미지 때문이다.

그 이미지에 충격을 받는 동안 자국민과 타국민 모두를 겨눈 일제의 만행은 자연히 잊힌다.

서방에서도 나치를 제외하더라도 식민지 등을 세워 사람들을 착취한 역사는 얼마든지 있다.

이는 이터널스가 직접 영향을 미친 인류 문명의 장면으로도 이어진다.

내보내기로 '선택'된 메소포타미아, 굽타, 아즈텍 등은 널리 알려졌으나 인류 역사 중 극히 일부다.

방대한 역사 속에는 소수자들이 꾸려낸 문화도,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참혹한 기록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소수자 영웅들을 적극적으로 보여준 만큼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더욱 적극적으로 발굴해 드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들이 온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로 말이다.

동료들을 다시 모으러 나선 현재 시점의 이터널스. 사진 네이버 영화

이렇듯 <이터널스>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이 질문은 선택의 책임을 수반한다.

사소해 보이는 설정 하나더라도 이를 선택한 맥락에는 사회적인 인식과 이에 내재된 권력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삶을 스크린 안에 옮겨내기 위해 얼마나 크고 섬세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이 작품에서 읽어낼 수 있다.

그래서 <이터널스>는 그 자체로 현재에 걸맞는 영화다.

완벽한 존재들인 것만 같던 이터널스는 우주의 사명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 프로그래밍 된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들은 운명을 거역하고 지구와 인류를 지켜내기를 택했다.

인류를 가까이에서 지켜봐 오며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게 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 중 스프라이트는 영생을 내려놓고 인간이 된다.

이는 <이터널스>의 메시지와 상통한다.

합리적으로 짜인 듯하지만, 그 사이 은밀히 모든 구성원의 온전한 삶을 방해하고 있는 규칙들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절대적인 진리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닌, 그러니 깨트려야만 하는 규칙들.

개인이 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떠한 불행도 겪지 않는 사회는 <이터널스>에 등장하는 모두의 꿈일 것이다.

운명에 거역한 그들의 앞에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우리의 길가메시는 앞으로도 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전작들과 전혀 다른 결을 보여준 <이터널스>의 다음 작품은 무엇이 될 것인가.

페이즈 4를 새롭게 꾸려 나갈 MCU의 다음 걸음을 기대한다.

<이터널스> ▶ 바로가기(디즈니플러스)

저작권자 ⓒ OTT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ott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