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시티팝과 유튜브 알고리즘이 재조명시킨 '역주행' 드라마

김새빛 승인 2021.10.16 08:00 | 최종 수정 2022.05.28 13:03 의견 1
<롱 베케이션>은 기무라 타쿠야라는 대배우를 탄생시킨 드라마이기도 하다. 사진 왓챠

[OTT뉴스=김새빛 기자] 요즘 MZ세대들 사이에서 '시티팝'이 열풍이다.

시티팝은 1980년대의 일본의 최고 번영기였던 버블 시대에 발매된 음악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신디사이저의 사용과 퓨전 재즈 형식 등이 그 특징이다.

레트로 열풍 중의 하나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시티팝의 유행은 전 세계적이다.

정작 일본인들은 '시티팝'이라는 단어를 모른다지만, 유튜브를 중심으로 40년도 더 전의 곡들이 '시티팝(CityPop)'이라는 단어로 퍼지며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유튜브 뮤직 서비스로 음악을 듣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새로운 '역주행' 현상이다.

유튜브를 통해 글로벌 '역주행'중인 마리야 타케우치의 'Plastic Love'와 백예린의 'La la la love song'. 사진 유튜브 캡처

'유튜브 시티팝 열풍'을 유행시킨 선두주자는 단연 마리야 타케우치의 'Plastic Love'로, 조회수가 4500만회에 육박한다.

또한 백예린이 시티팝 풍으로 커버해서 유명해진 'La la la love song'이 있다.

이 'La la la love song'은 원래 쿠보타 토시노부와 나오미 캠벨이 듀엣으로 부른 것으로, 1996년 일본 후지TV에서 방영한 드라마 <롱 베케이션>의 OST이다.

노래가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대히트를 치면서 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도 급증했고, 급기야 왓챠는 지난 7월 <롱 베케이션>을 수입 및 서비스하기에 이르렀다.

'La la la love song'이 울려 퍼지는 <롱 베케이션>의 오프닝. 사진 나무위키

◆ 인생의 긴 휴가, <롱 베케이션>

<롱 베케이션>은 결혼식 당일, 신랑이 다른 여자와 도망가면서 오갈 데 없어진 여자가 신랑의 구 룸메이트와 함께 살게 되는 이야기다.

주인공 미나미(야마구치 토모코 분)는 31살의 3류 모델이다.

나이가 많은 탓에 점점 후배 모델들에게 밀리고, 돌아오는 일거리라고는 고작 마트 전단지 모델 뿐.

그 와중에 결혼식 당일, 신랑에게 바람까지 맞았다.

그리고 세나(기무라 타쿠야 분)는 피아니스트를 꿈꾸지만, 현실은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을 하는 소심한 성격의 남자다.

번번이 콩쿠르에 떨어지는가 하면, '기교는 좋은데 선율에 감정이 담겨있지 않다'며 대학원까지 떨어지고 만다.

이들은 서로에게 자신이 '미스재팬 출신 잡지 모델', '일류 피아니스트'라며 속인다.

처음엔 싸우고 다투기만 하지만, 서서히 서로에게 솔직해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알아가기도 한다.

"저기...이런 식으로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긴 휴가'라고. 뭘 해도 잘 안 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뭐랄까... 신이 주신 휴식이라고 생각해요."

인생에서 아무것도 할 일 없는 시기인 '롱 베케이션'을 맞으며 둘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장한다.

미나미는 서서히 상처와 자존감을 회복하고, 세나는 미나미를 생각하며 감정이 담긴 연주를 해 콩쿠르에서 우승한다.

조연들도 한 몫 한다.

엄마의 과보호와 자신 내면의 목소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중학생 타카코(히로스에 료코 분), 꿈을 포기한 후 가족과도 연을 끊고 '노매드 라이프'를 사는 신지(타케노우치 유타카 분) 등, <롱 베케이션>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자신만의 아픔과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 청춘들의 고민은 지금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롱 베케이션>은 당시에도 평균 시청률 29.6%를 기록하며 대히트를 쳤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기무라 타쿠야ㆍ히로스에 료코 등 일본의 톱배우들을 낳았다.

물론 '피아니스트'라는 꿈을 찾아가는 세나의 서사에 비해 여자 캐릭터들의 서사는 남자를 만나고 헤어지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거나, 31살의 주인공이 '나이 많은 여자'라며 조롱받는 장면이 여러번 등장하는 등 아쉬운 지점도 많다.

드라마 전반에 걸쳐 강조되는 간판의 문구는 드라마의 주제를 나타내기도 한다. 사진 왓챠

◆ 시티팝 유행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

40년도 더 지난 노래들이 갑자기 지금 10대~20대들에게 다시 인기를 얻는 이유가 뭘까.

시티팝은 당시 일본의 풍족했던 사회적 분위기에 맞게 '도회적이며 세련되고 쿨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이 앨범 커버나 노래 가사 등에 남아있다.

주로 바다, 밤거리, 춤과 유흥 등을 노래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시티팝은 노래의 장르보다는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다.

<롱 베케이션>은 영상 전반에 걸쳐 '시티팝 분위기'가 물씬 난다.

미나미와 세나가 사는 맨션 옥상의 해변가가 그려진 큰 간판이라던가, 키치하면서도 멋스러운 주인공들의 선글라스와 패션, 칵테일을 비추는 드라마의 오프닝 타이틀 등.

그것 외에도 미나미와 세나의 첫키스 장면, 농구 장면 등은 유튜브나 커뮤니티 상에서 '레전드 신'로 꼽히며 회자되고 있다.

시티팝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시대의 분위기를 동경한다.

고민도 없고 걱정도 없는, 내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을 막연히 그려보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 시기의 청춘들도 그들만의 사정과 치열한 서사가 있었다.

미나미와 세나가 그랬던 것처럼.

시티팝이 재조명한 드라마지만, 어쩌면 지금 고군분투하는 청춘들에게도 용기를 던져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하지 않는다, 초조해하지 않는다, 너무 분발하지 않는다, 흐름에 몸을 맡긴다'

극 중 세나의 대사처럼, 일이 좀 안 풀릴 땐 내게 찾아온 '롱 베케이션'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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