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이수미 OTT 평론가] 일본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드라이브 마이 카'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의 옴니버스 영화 '우연과 상상'이 왓챠에 공개됐다.
‘우연과 상상’은 우연이 만들어내는, 조용히 아주 크게 움직이는 인생의 순간들에 대한 단편 3개로 구성되어 있다.
35분, 45분, 40분 정도의 러닝 타임으로 세 가지 에피소드 모두 1시간을 넘지 않기 때문에 집에서도 부담스럽지 않게 재생 버튼을 누를만 하다.
이 영화는 오묘한 분위기로 사람을 잡아끄는 첫 번째 에피소드, 가운데 존재해야 할 구성상의 이유가 있는 두 번째 에피소드, 마지막에 존재함으로써 그 감정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세 번째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이야기라고 한두 개만 보거나 끊어서 시청하기보다는 한 번에 세 가지 에피소드 모두를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면 지금부터 '우연과 상상'의 에피소드들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 제1화 마법 (보다 더 불확실한 것)
우연이란 생각보다 절묘하고, 인연이란 생각보다 질기다.
영화는 초반 10분 가까이 차 안에서 대화하는 두 여자의 모습을 비춘다.
대화의 내용은 늘 남과 거리를 두던 츠구미(현리)가 새로 만난 남자와 마법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
화면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츠구미와 그 이야기를 듣는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 그리고 그 둘의 모습만을 비추기 때문에 마치 친구의 연애담을 같이 들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츠구미는 차에서 먼저 내리고, 메이코는 츠구미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 미묘한 표정으로 왔던 길을 돌아간다.
메이코가 찾아간 곳은 츠구미가 마법 같은 시간을 보냈다던 남자의 오피스텔, 바로 메이코의 전 남자친구 카즈아키(나카지마 아유무)의 오피스텔이었다.
절친의 썸남이 알고 보니 내 전 남자친구였던 막장과도 같은 우연.
이 최악의 우연은, 그날의 마법은 이 세 사람에게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 제2화 문은 열어둔 채로
나오(모리 카츠키)는 일찍 결혼해 딸까지 있지만, 늦은 나이에 노력해서 대학에 왔다.
하지만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동기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학교에서는 그녀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둘만 있는 곳에서 육체적 관계만을 원하는 사사키(카이 쇼마)는 그녀가 따돌림 당하는 이유가 그녀에게 있다고 말한다.
누가 말을 걸어도 삐딱하게 굴고, 그녀 스스로 벽을 만든다는 것.
그녀에게 모진 말을 서슴없이 뱉는 사사키지만, 나오는 그런 사사키를 쉽게 내치지 못한다.
사사키는 그런 나오에게 세가와(시부카와 키요히코) 교수가 자신을 유급시켜 자기 미래를 망친 것처럼, 미인계를 써서 교수의 미래도 망쳐달라고 부탁한다.
나오는 말도 안 되는 부탁이란걸 알면서도 사사키가 자신을 떠나는 것이 두려워 부탁에 응하고 만다.
이 에피소드의 경우, 세가와와 나오의 대화가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대생이 복수를 위해 중년의 교수를 유혹한다'는 소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이 에피소드의 본질은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라 둘이 나누는 대화에 있다.
세가와를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유혹을 시도하던 나오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게 되고, 의도치 않게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눈다.
삶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지는 순간도, 삶이 순식간에 망가지는 순간도 의외로 별것 아닌 순간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 제3화 다시 한번
20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회에 간 나츠코(우라베 후사코)는 솔직히 말해서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것이 힘들다.
오랜만이기도 하고, 다들 결혼해 성도 바뀌었기 때문.
어색하고 낯선 동창회가 끝나고 나츠코는 역 앞 에스컬레이터라는 의외의 장소에서 정말 보고 싶었던 친구를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에스컬레이터 가운데서 서로를 한눈에 알아본 둘은 동창회 이야기부터 결혼 생활, 피아노 이야기까지 일상적인 대화들을 이어 나간다.
여기까지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 둘의 대화인 줄 알았지만, 아야(카와이 아오바)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다.
대화하다 보면 떠오를 줄 알았는데 지금 대화하고 있는 친구의 이름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우리 둘이 친구가 맞았던가?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자신의 친구로 착각했음을 깨닫게 된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은 영화와도 같은 우연.
그들은 이런 우연이 아니었다면 절대 할 수 없었을 대화와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 나간다.
'우연과 상상'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드라이브 마이 카'를 찍기 전, 원작자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작권 이용 허락을 기다리는 동안 찍은 영화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과도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연과 상상'의 작은 요소들이 '드라이브 마이 카'에 속속들이 녹아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인상 깊게 본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서 숨은 연장선과도 같은 요소를 발견하는 재미를, 아직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지 않은 관객이라면 '우연과 상상'으로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의 매력을 맛보고 '드라이브 마이 카'의 깊은 맛을 느껴보기를 바란다.
◆ OTT 지수 (10점 만점)
1. 연기 (조연·주연 등 등장인물 연기력): 8
2. 스토리(서사의 재미·감동·몰입도 등): 9
3. 음악 (OST·음향효과 등 전반적 사운드): 7
4. 미술 (미장센·영상미·의상·배경·인테리어·색감 등): 7
5. 촬영 (카메라 구도·움직임 등): 9
→ 평점: 8
*평점 코멘트: 특별한 기교 없이 정해진 공간과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맵고 쓰고 단 세 종류 맛의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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