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행복은 가까이에, 해방은 어딘가에 '나의 해방일지'

티빙ㆍ넷플릭스: '나의 해방일지'

정수임 승인 2022.05.10 11:05 의견 0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포스터(사진=드라마 공식 SNS). ⓒOTT뉴스

[OTT뉴스=정수임 OTT 평론가] "경기도에 사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매일 경기도에서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직장 동료 A씨의 눈물겨운 한 마디였다.

오늘 아침 열차 고장으로 상행선 운행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힘겨운 오전을 시작한 그는 출근과 동시에 직장인 주거 대출을 알아보겠다고 선언했다.

평소엔 잔잔히 가라앉아 있던 독립에 대한 의지가 이따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불꽃처럼 타오른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도 경기도에 사는 주인공들의 인생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드라마를 한 줄로 소개하자면 '견딜 수 없이 촌스런 삼남매의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운 행복소생기'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 직장인의 삶을 빗댄다.

제목 한켠에 놓아져 있는 단어 '해방'의 정확한 뜻은 아래와 같다.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함. 반의어로는 구속과 속박 등이 있음

해방된다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무언가 후련하고 개운한 기분을 안긴다.

물론 그 전제에는 갑갑하고 답답한 벗어나고 싶은 상황이 있다.

우리는 상사나 부모님의 잔소리, 미적지근한 연인 관계, 혹은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해방되고 싶어 한다.

또 학창 시절엔 성적의 부담에서, 직장인이 된 후에는 성과의 압박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도 우리네의 일상생활과 비슷하다.

일상에 해방이 필요한 염씨네 삼남매(사진=공식 홈페이지). ⓒOTT뉴스

기정(이엘 분), 창희(이민기 분), 미정(김지원 분). 염씨네 삼남매는 경기도 남부 끝에 위치한 마을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매일 경기도와 서울 사이 먼 거리를 출퇴근하는 것이 일과의 가장 큰 일이다.

기정은 배려 없이 소개팅 장소를 정하는 상대에게 뿔이 났고, 창희는 먼 거리 데이트에 염증을 느낀 여자친구와 헤어졌으며, 미정은 흔한 회식 한번 마음 놓고 한 적이 없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막차 시간에 맞춰 일어나야 하고, 함께 늦는 날이면 시간 맞춰 나란히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것이 이들의 자연스러운 일상.

이들은 이런 미지근하고 특별한 것 없는 일상에서 제각기 해방되고 싶어 한다.

'나의 해방일지'에는 유독 밥을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극 중 염씨네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는 아마 '밥'일 것이다.

"밥은?", "법은 먹었구?", "얼른 씻고 밥부터 먹어.", "상 있을 때 어여 밥 먹어."

때마다 밥을 먹었는지 묻고, 끼니를 챙기는 것이 한국인의 정이요, 부모의 사랑.

하지만 별일 없이 무탈한 상태일 때도 때론 밥을 거르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인데, 이들은 부모의 주도하에 싫으나 좋으나 삼시세끼를 챙긴다.

고대하던 주말이 왔다고 해서 특별히 다른 점도 없다.

아침부터 서울 외출에 나선 기정을 제외하고 창희와 미정은 부모의 밭일을 돕는다.

염씨네 가족과 일꾼 구씨(손석구 분)는 말없이 둘러앉아 새참을 먹는데, 다 먹기가 무섭게 아버지는 다시 일어나 노동을 시작한다.

이들에게 있어 지금의 해방이란 주말에 집 밖으로 외출하는 것 정도다.

고된 평일 끝에 맞은 주말은 좀 편히 쉬고 싶은데, 나이 많은 아버지도 고생하신다는 어머니의 한마디에 방바닥에 맘 편히 엉덩이를 붙이고 있을 깜냥 따윈 없다.

남매는 차를 살 계획도 부모의 허락을 먼저 구하고, 무턱대고 서울 독립을 선언하지도 않는다.

지극히 평범하고 낮은 삶의 온도에는 제목처럼 '해방'이 필요하다는 표현이 딱이다.

자유나 방임, 도전과 같은 단어와 유사하지만 미묘하게 뉘앙스가 다른 '해방'은 서서히 천천하게 달라져가는 인생의 변화와 변곡점을 상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조금씩 거리를 좁혀가는 미정과 구씨(사진=공식 홈페이지). ⓒOTT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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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닮은 듯 다른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나의 해방일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고향을 생각나게 한다.

어린 시절 필자는 조그만 동네에서 자랐다.

아이의 시선에서 초등학교는 멀었고 중학교는 거의 산 아래 있었으며 고등학교도 썩 가깝지는 않았다.

기억 속 우리 동네는 그런 곳이었다. 제법 큰 도시에 있었지만 A구와 B구 사이에 살짝 들어와 잠시 쉬어가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발 닿는 곳곳에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이 깔리고 대단지 아파트가 솟아나는 개발의 격동기 속에서도 동네와 골목은 꿋꿋이 정체성을 지켰다.

우리는 가끔 농담처럼 그곳을 도심 속의 오지라고 부르곤 했다.

서울로 독립하고 나서야 필자는 아주 많은 것들을 주거지 근방에서 누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새벽 야근을 하고 오거나 친구들과 놀다 막차를 타고 왔을 때, 집에 돌아온 나의 늦은 귀가나 끼니를 걱정하는 이는 없었다.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 또 어쩌면 간섭에서 '해방'된 필자는 한참 어른이 된 후에야 이런 기분을 실감하게 됐다.

그것은 두렵고 걱정했던 것만큼 아주 별것은 아니었다.

가지 않은 곳을 가보거나, 혹은 늘 가는 곳을 가지 않거나. 또는 혼자가 되거나, 여럿이 되거나.

해방이란 다른 의미로 변화의 연장선이다.

행복이 가까이에 있다면, 해방은 멀지 않은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소박하고 특별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담은 '나의 해방일지'는 티빙과 넷플릭스에서 만날 수 있다.

◆ OTT 지수

1. 연기 (조연·주연 등 등장인물 연기력): 7
2. 스토리(서사의 재미·감동·몰입도 등): 6
3. 음악 (OST·음향효과 등 전반적 사운드): 5
4. 미술 (미장센·영상미·의상·배경·인테리어·색감 등): 7
5. 촬영 (카메라 구도·움직임 등): 6

→ 평점: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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