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김지수 OTT 평론가]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었을 당시,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필자는 뉴스로 전쟁의 참상을 접하고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여기는 이렇게 조용한데 지구 반대편에선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아파트 베란다에서 평온한 한국의 저녁 하늘을 아빠와 함께 바라보다 문득 궁금해졌던 모양이다.
그 당시의 필자는 전쟁의 비극과 아픔을 충분히 알지도, 헤아리지도 못했었다.
그저 평화로운 한국이 세계의 전부였던 평범한 초등학생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이제 성인이 된 필자는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의 파이널 시즌을 보고 있다.
◆ 진짜 적은 누구인가
10년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진격의 거인'은 초반 허를 찌르는 반전 스토리와 빠른 진행감으로 많은 팬을 유입시켰다.
초중반 시즌은 캐릭터와 세계관에 대한 정보를 주로 풀어냈기에 전쟁의 비극이 크게 강조되지 않았다.
그보다 식인 거인을 물리치는 캐릭터들의 화려한 액션과 전략, 그리고 그들의 끈끈한 우정을 주로 다뤘다.
마치 그저 해맑기만 했던 초등학생 시절의 필자와 같이 단순하면서도 하루하루 성장하기에 바쁜, 그야말로 성장물 스토리였을 뿐이다.
하지만 중후반 시즌에 베일에 싸여있던 거인의 비밀이 밝혀지며 분위기는 급격히 반전된다.
거인은 일종의 연막이었다.
식인 거인에 의해 캐릭터들이 갇혀 있던 파라디 섬은 사실 전 세계로부터 크게 지탄받아 만들어진 감옥이었다.
"거인과 싸울 때는 거인이 적이었다. 국가와 싸울 때는 국가가 적이었다. 저마다 다른 신념을 밀어붙이는 한, 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 '진격의 거인' 86화 중
머지않아 위의 대사처럼, '진격의 거인' 속 캐릭터들의 적은 거인에서 전 세계 모든 타국으로 변경된다.
◆ '진격의 거인'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
모든 게 밝혀진 '진격의 거인'의 현실은 너무도 암울하다.
진실은 파라디 섬 사람들에게 시원한 해소감이 아닌 더한 갈등만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를 100년에 걸쳐 배척한 전 세계를 공격하자'는 안건에 파라디 사람들 사이에서 의견의 차이가 생겼고, 결국 서로를 죽고 죽이는 비극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때 이들에게서 비춰지는 유일한 감정은 바로 '혐오'다.
지난 시즌에서 보여줘왔던 캐릭터 사이의 즐거운 우정과 짜릿한 반전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그저 현실의 이라크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느껴지던 타국에 대한 불신과 배척, 그리고 혐오의 감정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한 세기에 걸친 혐오의 역사를 자신의 세대에서 끊어내기 위해 주인공 에렌이 찾아낸 방법에 대해 다른 동료들은 또 다른 형태의 혐오에 불과하다며 반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파라디 섬의 사람들은 "우리가 고통받은 만큼 타국에 돌려주자"는 명령에 의문을 제기하고, 막아서기도 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전쟁을 불사한 러시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영화 같은 서사를 부여해주고 싶지 않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긴밀히 엮인 탓에 혐오의 굴레가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부디 그 굴레가 다음 세대에게 대물림되지 않기를 바란다.
세대를 거쳐도 엉겨 붙은 부정적인 감정이 끊기지 않는 여기 한국과 일본의 역사가 그들에겐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인류애에 대해 고찰하게 하며 2023년에 마지막 이야기를 앞둔 '진격의 거인'은 왓챠, 웨이브, 티빙, 넷플릭스 그리고 라프텔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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