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이수미 OTT 2기 리뷰어] 올해 2월 극장에서 개봉됐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 '나이트메어 앨리'가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됐다.
포스터에는 "지난 10년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엔딩"이라고 쓰여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이 영화의 엔딩이 그리 충격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욕망을 쫓던 한 남자의 몰락이라는 어찌 보면 뻔한 엔딩을 감탄스럽게 풀어냈다고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연출은 파고들수록 섬세하고, 계속되는 주인공의 몰락에 대한 암시는 세련됐으며, 영상미와 음악, 눈을 사로잡는 공연과 더불어 배우 브래들리 쿠퍼와 케이트 블란챗의 연기까지 모두 매혹적이다.
어느 하나 버릴 장면 없는, 기예르모 델 토로의 세심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를 소개한다.
※ 이 리뷰에는 영화 시작 후 1시간가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제대로 알고, 연출에 집중해서 볼수록 진가가 드러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이미 한번 봤거나, 스토리보다 연출에 집중하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은 기사를 끝까지 읽어주세요.
방 한가운데 뚫려있는 구멍에 사람으로 추정되는 포대를 밀어 넣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 남자의 이름은 스탠턴 칼라일(브래들리 쿠퍼 분).
미리 말해두자면 그 포대에 들어있는 사람은 스탠의 아버지다.
모자를 쓰고 담배를 입에 문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인 성냥을 그대로 방바닥에 던져버리고 그곳을 유유히 벗어난다.
불타는 집을 뒤로하고 들판을 걸어 나오는 오프닝 시퀀스는 서부 느와르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그렇게 기차에 기대 잠이 든 스탠은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는 듯 그대로 종점에 내린다.
그렇게 스탠이 도착한 곳은 오래된 놀이공원이다.
하지만 이곳의 공연들은 어딘가 기이하게 느껴진다.
살아있는 닭의 목을 부여잡고 물어뜯는 남자, 속임수라기엔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정확한 독심술.
출산 때 죽었거나 태중에 죽은 아이들을 술에 담가 전시해 둔 장소까지.
그중에서도 출산 때 제 어미를 죽이고 며칠을 송아지처럼 낑낑대며 울었다던 '에녹'은 금방이라도 감은 두 눈을 뜨고 영화의 장르를 호러 판타지로 바꿀 것만 같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판타지와 속임수의 오묘한 경계 속에서, 이 영화의 감독이 자신만의 판타지적 세계관을 탄탄하게 구축해온 기예르모 델 토로라는 점에 관객은 영화가 어느 순간 갑자기 판타지로 변하는 것은 아닐지 의심하게 된다.
◆ 끊임없이 등장하는 원형 프레임, 벗어날 수 없는 에녹의 시선
앞에서 언급했듯 '에녹'은 등장부터 상당히 강렬하며 기괴함을 불러일으킨다.
이 영화가 판타지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에도 역시 에녹의 영향이 크다.
에녹의 두 눈은 언제나 꼭 감겨있지만, 이마에 있는 동그란 제 3의 눈은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스탠을 따라다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에 유독 동그란 사물들과 사람의 눈, 그리고 스탠을 원형 프레임에 가두는 장면이 자주 나오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에녹을 마주하기 전 지나(토니 콜렛 분)와 피트(데이빗 스트라탄 분)의 집에서 스탠이 목욕하는 장면에서 그 앞의 동그란 거울이 스탠을 비추고 있다.
영화 초반부 도망친 기인을 잡으러 유령의 집에 들어간 스탠은 마치 누군가에게 목격된 듯이 동그란 프레임 안에 갇힌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대놓고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커다란 눈이 등장한다.
스탠이 몰리(루니 마라 분)에게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제안하는 장면과 스탠과 몰리가 마을을 떠나는 장면에서도 역시 그렇다.
이 두 장면으로부터 다음 장면으로의 전환은 화면이 한꺼번에 어두워지지 않고 동그란 프레임을 만들며 어두워진다.
또, 피트에게 술을 가져다주고 홀로 독심술을 연습하는 스탠의 뒤에는 마치 이를 다 지켜보고 있는 듯한 커다란 눈 그림이 보인다.
공연 대기실에서 스탠과 몰리는 또다시 동그란 창문 프레임에 갇힌다.
이토록 집요하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둥근 프레임과 눈은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영화 전체가 예정된 비극을 맞이하는 스탠을 지켜보는 에녹의 시선이 아닐까.
◆ 반복되는 스탠의 상황
이 영화의 유명한 수미상관 엔딩을 제외하고, 영화 속에는 또 하나의 수미상관이 등장한다.
바로 아버지의 죽음과 독심술 스승인 피트의 죽음이다.
스탠은 고의인지 실수인지 피트에게 잘못된 술을 가져다주고, 이 술을 마신 피트는 죽음에 이른다.
피트가 술을 마시다 죽은 무대 밑 공간은 아버지를 밀어 넣었던 오프닝씬 집 속의 구멍과 유사해 보인다.
죽은 피트를 끌어안으며 절규하는 지나와 그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은 오프닝씬 집안에 휩싸였던 불의 모습과 겹쳐지고, 이 자리를 피하는 스탠의 모습 역시 반복된다.
카니발을 배경으로 들판을 걷는 스탠의 모습 역시 불타는 집을 뒤로하고 들판을 걸어 나오던 오프닝 시퀀스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는 아버지와 유사한 존재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 뒤에 그 장소를 떠나는 행위를 반복한다.
죽기 전 피트가 스탠에게 했던 말도 의미심장하다.
"괴로운 일들을 미리 각오하다 보면 그런 일들로 크게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이런 상처로 틈이 벌어지면 큰 구멍이 나는데, 그 구멍은 고치지 못하고 채울 길이 없다."
여기서 문득 오프닝씬 방에 나 있던 구멍이 떠오른다.
집안에 난데없이 왜 그런 구멍이 나 있던 걸까?
어쩌면 그 집은 상처 입은 스탠의 마음 상태를 표현한 게 아닐까?
무엇으로도 그 구멍을 채울 수 없었던 스탠은 아버지를 그 구멍으로 밀어 넣어 그 구멍을 채우려 했던 것은 아닐까?
[관련 기사]
● [리뷰] 디즈니플러스 '나이트메어 앨리' 파헤치기
이외에도 카니발의 기인 쇼와 여러 공연들, 스탠이 진행하는 독심술 공연 역시 이 영화의 빠질 수 없는 매력 중 하나다.
과연 주인공 스탠이 어떤 방식으로 비극을 맞이할지, 그 비극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어느 하나 버릴 장면 없는 세심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는 디즈니 플러스에서 볼 수 있다.
◆ OTT 지수 (10점 만점)
1. 연기 (조연·주연 등 등장인물 연기력): 9
2. 스토리(서사의 재미·감동·몰입도 등): 7
3. 음악 (OST·음향효과 등 전반적 사운드): 8
4. 미술 (미장센·영상미·의상·배경·인테리어·색감 등): 9
5. 촬영 (카메라 구도·움직임 등): 10
→ 평점: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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