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 서보원 OTT 2기 리뷰어] '차'라는 공간은 생각보다 사적이고 조심스럽다.
좋든 싫든 차에 함께 탄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들숨과 날숨을 주고받으며 차 주인의 취향을 향유하게 된다.
그렇기에 '내 차'는 '내 집'만큼 누군가의 접근을 허용하기 쉽지 않은 공간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주인공, 연극배우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 분)도 그랬다.
그러나 어떤 일으로 인해 가후쿠는 미사키(미우라 토우코 분)를 운전사로 들이게 된다.
둘의 먹먹한 대화는 가후쿠가 아내 오토(키리시마 레이카 분)로부터 얻은 상처를 위로해준다.
◆ 179분의 긴 호흡, 잔잔하지만 때로는 강렬하게
영화는 시작한 지 40분이 지나서야 프롤로그가 끝나고 오프닝 크레딧이 등장한다.
프롤로그에는 가후쿠와 오토의 상처, 그리고 가후쿠가 오토와 사별하게 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오토를 사랑하는 만큼 그녀의 외도도 이해하려 했던 가후쿠지만 막상 그 현장을 목격했을 땐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오토는 어느 날 갑자기 가후쿠에게 할 말이 있다고 결의를 표했다.
하지만 그날 밤, 오토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후 '바냐 아저씨' 연극제를 준비하기 위해 오디션을 진행하던 가후쿠는 내연남으로 추정되던 다카츠키(오카다 마사키 분)가 지원했음을 알게 된다.
다카츠키와 오토 얘기를 자주 나눈 가후쿠는 다카츠키가 아내의 내연남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느낀 괴로움을 엄마의 사별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있던 미사키와의 대화를 통해 잔잔한 위로를 받는다.
가후쿠 역시 사랑했던 아내의 죽음에 본인의 잘못이 있다며 서로를 위로한다.
3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 동안 영화의 대부분은 '바냐 아저씨' 연습 장면이나 가후쿠의 차가 주행하는 장면들로 이뤄진다.
가후쿠의 일상을 엿보듯 영화는 단조로운 장면의 연속이다.
그 사이에서 다카츠키와 미사키의 이야기는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큰 파동을 일으킨다.
가후쿠는 감정의 동요를 직접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캐릭터다.
하지만 흔들리는 동공과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심연의 슬픔을 알아챌 수 있다.
◆ 이야기 속 또 다른 이야기, 연극적 기법의 시너지
등장인물의 직업이 연극 배우(가후쿠)와 드라마 작가(오토)다 보니 영화는 '이야기 속 이야기'의 연속이다.
오토는 '야마가의 집'이라는 시나리오를, 가후쿠는 연극 '바냐 아저씨'의 시나리오를 언급하면서 이야기 속 이야기를 풀어낸다.
'야마가의 집'이 오토와 자신의 은밀한 이야기인 줄 알았던 가후쿠는 다카츠키가 이야기의 끝을 알려주자 크게 동요한다.
'바냐 아저씨'는 가후쿠가 감독하는 연극의 시나리오로, 여기에는 오토의 음성이 담겨 있기도 하다.
오토가 가후쿠의 배역인 '바냐'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를 읽어 가후쿠가 대사를 암기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테이프를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가후쿠는 운전을 하며 그 음성을 반복해서 듣는다.
테이프 속 '바냐'를 원망하는 대사, 그리고 이를 해명하려 드는 '바냐'의 대사는 가후쿠의 전후 사정을 대변한다.
극 중에서 이를 위로하는 '소냐'의 대사마저도 가후쿠를 위로한다.
이렇듯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또 다른 등장인물들에 감정을 이입하며 각자의 감정을 드러낸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가후쿠는 현실의 미사키, 극 중의 '바냐'를 통해 오묘한 감정의 교차를 드러냈다.
◆ '하루키' 식 원작을 '하마구치' 식으로 재편하다
소위 '영화광'으로 소문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각색을 싫어해 자신의 작품이 영화화되는 것에 종종 반감을 드러냈다.
그런 그가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고 난 이후에는 "영화의 어떤 부분이 내가 쓴 소설인지 분간이 어려웠다"라고 말할 정도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하루키의 감성을 잘 녹여냈다.
하루키의 단편 소설인 '여자 없는 남자들'의 수록작인 '드라이브 마이 카'는 제목을 비틀스의 'Drive My Car'에서 따온, 60쪽이 넘지 않는 짤막한 분량의 소설이다.
그러나 영화는 3시간이 넘도록 진행된다.
그 시간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 '드라이브 마이 카'에 안톤 체호프의 장막극 '바냐 아저씨'의 이야기까지 슬그머니 녹여내면서 '하마구치'식 스토리텔링을 완벽하게 보여줬다.
'파도의 소리', '해피 아워' 등으로 이름을 알린 하마구치 감독은 잔잔하고 긴 호흡의 작품들을 자주 만들어내는 편이다.
이를 두고 '영화적 기법'에 대한 비난도 뒤따르나 사실 하마구치의 진면모는 '대사'로부터 나온다.
하루키와 체호프, 두 작가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던 건 하마구치의 페르소나처럼 보이는 가후쿠의 캐릭터성 덕분이다.
연극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후쿠는 말의 중요성을 크게 느낀다.
본인의 극에 한국어, 중국어, 심지어 수어를 쓰는 배우들을 등장시키고 번역된 대사들이 무대의 스크린에 나열될 정도로 대사와 말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
그러나 아내 오토에게는 그 말을 전하지 못해 진심으로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가후쿠는 하루키와 체호프의 느낌을 모두 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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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아카데미 수상작 '드라이브 마이 카' 독점 공개
이렇듯 '대사의 힘'은 감독 하마구치를 세계적인 예술가로 만들었다.
'드라이브 마이 카' 또한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에서는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했다.
화려한 눈요기와 엄청난 컴퓨터그래픽 없이도, '말' 자체로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이런 감독의 스타일은 소설가 하루키와 비슷하다.
하루키의 소설을 즐겨 읽은 독자들에게 감히 하마구치의 영화를 추천하며 글을 마친다.
◆ OTT 지수 (10점 만점)
1. 연기 (조연·주연 등 등장인물 연기력): 9
2. 스토리(서사의 재미·감동·몰입도 등): 10
3. 음악 (OST·음향효과 등 전반적 사운드): 7
4. 미술 (미장센·영상미·의상·배경·인테리어·색감 등): 9
5. 촬영 (카메라 구도·움직임 등): 8
→ 평점: 8.6
* 평점 코멘트: 편집이 아쉬워 풀 버전을 찾아보게 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등장인물들의 말과 캐릭터성에 사랑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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