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가 길어지고 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비장애인에게는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에겐 쟁취해 내야만 하는 권리라는 점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최근 우리 생활 곳곳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OTT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다.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한 텍스트 음성 변환(Text-to-Speech·TTS)과 폐쇄 자막(Closed Caption·CC)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으나 보유 콘텐츠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들의 시청권 또한 쟁취해 내야만 하는 권리일까? 장애인의 날을 맞아 각 OTT 서비스 별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지수를 알아봤다.
■ 넷플릭스, 배리어프리 콘텐츠 가장 많아
우선 세계적인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가 가장 높은 배리어프리 지수를 기록했다.
폐쇄 자막부터 살펴보면, 넷플릭스는 한국을 비롯한 모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에 화면 해설 및 폐쇄 자막이 기본으로 적용된다.
텍스트 음성 변환 기능 또한 지원하고 있다. 2020년 iOS 넷플릭스 앱 도입에 이어 2020년 6월부터 안드로이드에서도 TTS 기능을 지원하고 있다. 모바일의 경우 iOS의 VoiceOver, Android의 TalkBack 앱을 통해 지원하며, iOS는 한국어를 포함한 37개 언어, 안드로이드는 한국어를 포함한 43개의 언어가 지원된다.
또한 넷플릭스는 이에 그치지 않고 오디오 화면 해설도 추가로 제공한다.
이는 동작, 표정, 의상, 배경, 장면 전환을 비롯해 화면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음성으로 자세히 설명해 주는 기능이다.
특히 SF 같이 특수영상효과가 많이 삽입돼 시각장애인들이 음성만으로 이해하기 힘든 장르인 경우 콘텐츠 본연의 뉘앙스와 분위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넷플릭스는 "완성도 높은 오디오 화면 해설 제작을 위해 별도의 대본을 만들고, 숙련된 성우가 더빙하며, 별도 연출자를 배정하는 등의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이와 같은 노력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넷플릭스의 폐쇄 자막과 화면 해설은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인 경우에는 한국어로만, 프랑스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경우에는 프랑스어로만 지원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한국 오리지널 영화 '야차'와 '모럴센스' 등에 한국어와 함께 영어 폐쇄 자막도 제공하고 있긴 하지만, 한국어 폐쇄 자막을 제공하는 외국 콘텐츠의 수는 현저히 적다.
즉, 시·청각 장애인이 미국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를 보려면 영어로 폐쇄 자막을 읽거나 화면 해설을 들어야 해 보다 다양한 콘텐츠를 생생하게 즐기기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플러스 관계자는 "거의 모든 작품에 CC 자막을 제공하고 있다"는 답변을 남겼다.
애플TV플러스의 경우 서비스 중인 작품에 CC와 AD(오디오 설명)가 제공되는 경우 하단에 이를 표시해두고 있다.
OTT뉴스 자체 조사 결과 현재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기능이 제공되는 작품은 ▲파친코 ▲우린폭망했다 ▲세브란스: 단절 ▲DR. 브레인 ▲테드래소 ▲슬로호시스 등 30개 작품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 토종 OTT, 장애인 시청권 보장하고 있을까?
토종 OTT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웨이브는 현재 폐쇄 자막 기능을 중점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트레이서',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악의 마음을 읽는자들' 등 오리지널 콘텐츠 9편에 폐쇄 자막을 제공 중이다.
또한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폐쇄 자막과 함께 음성 해설을 제공하는 '배리어프리' 카테고리를 따로 운영 중이다.
'어네스트와 셀레스틴', '시간을 달리는 소녀' 등 인기 애니메이션이 포함돼 있지만 총 12편의 콘텐츠에 그쳐 아직은 수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웨이브 관계자는 "TTS와 수어 및 화면 해설 도입을 검토 중"이라며 "오리지널부터 순차적으로 작업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즌 또한 일부 콘텐츠에 폐쇄 자막과 음성 해설을 제공한다.
시즌 영화 카테고리에서 '가치봄'을 선택하면 '미나리', '장르만 로맨스', '사바하' 등 인기 영화 240여 개를 폐쇄 자막과 음성 해설로 즐길 수 있다.
다른 토종 플랫폼의 경우 배리어프리 수치가 현저히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왓챠는 현재(4월 19일) 기준 전체 콘텐츠 중 약 240여 편에 '폐쇄형 일반 자막'을 제공하고 있다.
콘텐츠 개수 상으로는 지난해 8월에 제공하고 있던 150여 편에서 90여 편이 확대된 수치이지만, 단순 '폐쇄형 일반 자막'으로는 청각 장애인이 콘텐츠를 온전히 즐기는 데 한계가 있다.
비장애인들이 해외 콘텐츠를 즐길 때 나오는 단순 자막과 별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왓챠 오리지널 '언프레임드', '시멘틱 에러'와 같은 콘텐츠의 경우 한국어 대사 자막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화면 해설 자막은 따로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자막을 기본으로 제공하고 있는 콘텐츠인 '한화이글스: 클럽하우스'의 경우 두 사람 이상이 동시에 말할 때 '-' 표시로 대사를 구분하고 있으나, 말을 한 사람의 이름을 따로 표기해 주지 않아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비장애인조차 구분하기 어렵다.
왓챠 관계자는 "국내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한글 자막 제공 콘텐츠 수를 확대해가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다양한 측면에서 시청 접근성 강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자막 지원 확대 가속화 계획을 밝혔다.
티빙 또한 아직까지 콘텐츠에 폐쇄형 자막이나 텍스트 음성 변환 자막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이런 현황에 티빙 관계자는 "정확도가 떨어지는 자막을 빠르게 도입하기보다 서비스 고도화를 위해 시간을 두고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라며 티빙이 출범한 이후부터 자막을 도입하기 위해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해왔으며, 올해 안에 개발을 완료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쿠팡플레이의 경우 CC는 지원하나 TTS는 지원하지 않고있다.
현재 CC를 지원하는 작품은 '어느 날', 'SNL 코리아' 등 오리지널 콘텐츠와 '해를 품은 달', '어게인 마이 라이프' 등 인기드라마 위주로 제공하는데, 앞으로 점차 확대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 TV 이어 OTT에서마저 배제되는 장애인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김훈 사업단장은 "시각장애인들은 넷플릭스나 웨이브 같은 OTT 서비스 접근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라며 운을 뗐다.
OTT 서비스 이용을 위해 홈페이지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야 하는데 회원가입과 서비스 선택, 구독료 결제까지 일련의 과정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있어 허들이 너무 높다.
그나마 미디어접근센터를 통해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나 애플TV플러스의 '파친코' 등 해외 OTT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유명 작품 몇 가지를 시청하는 게 고작이다. 국내 OTT 플랫폼 이용은 꿈도 못 꾸는 실정이라고.
미디어접근센터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화면 해설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지상파 및 공중파, 종편, OTT 등의 미디어 콘텐츠를 시각장애인들이 시청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화면 해설이 제작돼 시각장애인들에게 제공되기까지의 과정도 그리 순탄치 만은 않다.
김훈 사업단장은 "비장애인들은 이미 완결까지 다 본 상태인데 시각장애인들은 그제서야 2편, 3편을 보고 있다. 이것도 유명한 작품 일부에 한해서다. 대부분은 그게 유행이라더라, 재밌다더라는 선에서 그친다"라고 토로했다.
그들은 이미 너무 많은 소외를 일상처럼 겪어온 것이다.
화면 해설의 퀄리티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털어놨다. 해설을 제작하는 회사 별로 퀄리티가 천지차이인 경우도 있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아울러 우리말 더빙을 통해 화면 해설보다 더 실감 나는 작품 감상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단순히 화면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닌 우리말로 된 해외 작품도 접하고 싶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훈 사업단장은 "장애인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 언론에서 꾸준히 관심 가지고 목소리 내주시는 것에 감사드린다. 우리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장애인과 함께 비장애인도 관심을 갖고 공감하고, 요구사항을 개진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의 날 외에도 관련 이슈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 청각장애인, "토종 OTT 몸 사리나?" 아쉬움 커
그렇다면 청각장애인 쪽은 어떨까, 한국농아인협회의 미디어지원부 방혜숙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방혜숙 씨는 현재 3개의 OTT 서비스를 이용 중이다. '넷플릭스','애플TV플러스', '디즈니플러스'다. 이 3개 OTT 서비스의 공통점은 '해외 플랫폼'이라는 점이다.
방혜숙 씨는 "넷플릭스는 국내 케이블 드라마 편성 및 오리지널 제작 드라마들이 전부 퀄리티가 높다. 청각장애인으로서 언제든지 한글 자막을 통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까지 유료 구독을 유지 중인 서비스"라고 답했다.
애플TV플러스의 경우 '파친코'로 유명해졌다. 한글 자막도 제공 중이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 서비스도 사전 제작을 통해 본방송과 함께 서비스 중인 것으로 알려져 최신작임에도 장애인들 사이에서 빠른 보급 및 시청이 이뤄지고 있다.
그는 본인이 애플 유저임을 밝히며 가입 의사가 있으며 파친코를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디즈니플러스의 경우 넷플릭스와 함께 결제해서 볼 수 있는 '피클플러스' 서비스를 이용 중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국내 OTT는 단 하나도 이용하지 않는다는 방혜숙 씨,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한글 자막'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국내 OTT는 공중파 및 종편 채널의 국내 드라마가 많음에도 한글 자막이 제공되지 않아 넷플릭스보다 저렴한 시청료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넷플릭스는 막대한 자본에 과감한 투자를 진행하는 반면 대한민국 OTT는 몸을 사리는 건가 싶다. 특히 드라마 보면 발음이 뭉개지는 현상도 있어서 건청인(비청각장애인)들이 일부러 한글자막을 설정하고 본다고 할 정도면 모두를 위한 한글 자막 콘텐츠는 당연히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는 의견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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