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넷플릭스 등 불공정 계약으로 국내 성우에 '갑질'

제작사와의 교섭 통한 '보호 조치' 필요해

편슬기 승인 2021.12.10 16:03 | 최종 수정 2022.05.28 18:18 의견 0
국내 성우에 대한 OTT 플랫폼의 갑질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사진=픽사베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에서는 마녀 우르슐라에게 공주 에리얼이 목소리를 빼앗긴다. 하지만 사랑의 입맞춤으로 에리얼은 다시 목소리를 되찾게 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목소리를 다시 찾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현실세계에서 목소리로 경제활동을 이어가는 성우들은 자신의 목소리와 이름에 대한 권리를 사 측에 빼앗기고 있다.

8일 최재호 성우가 자신의 SNS에 장문의 글을 남겼다. OTT 플랫폼이 성우를 대상으로 갑질과 불공정 계약을 일삼는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넷플릭스 측이 성우들의 캐리어에 있어 공개가 불가피한 참여 작품 및 배역에 대해 작품 공개 이후로도 언급하지 말라고 국내 에이전시를 통해 전달했다고 주장해 '갑질 파문'이 일었다.

다수의 언론사들이 앞 다퉈 넷플릭스에 문의한 결과 "작품 방영 전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한 것 같다"는 해명이 이어졌다.

참여 작품과 캐릭터를 밝히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제대로 된 계약서 하나 작성하지 않고 구두로 진행되는 허술한 시스템부터 성우들의 목소리를 2차적으로 사용하거나 녹음 결과물에 대한 모든 권리를 사측이 가져가는 '불공정 계약'과 '갑질'에 있다.

성우는 공채 합격 후 2년 내지는 3년의 기간 동안 방송사와 계약을 맺고 전속 성우로 근무한 뒤 계약이 종료되면 프리랜서로 전환된다. 그 순간부터 성우 개개인이 매니저이자 연기자로 모든 것을 도맡아야 한다.

사 측과 성우 개인이 일을 진행하는 형태라 계약서의 내용이 불공정하지 않은지, 법에 위배된 조건은 아닌지의 여부를 알기란 쉽지 않다.

설령 성우가 이 사실을 안다고 하더라도 '비밀 유지' 조항에 따라 다른 성우들에게 내용이 공유되거나 협회에 알려지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나마 한국성우협회가 국내 성우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근무 환경 개선에 힘을 쏟고 있지만 800명에 가까운 모든 성우들의 사례를 수집하고 대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성우협회 입장문(사진=한국성우협회).


본지와의 취재에서 최재호 사무총장은 "장기간 촬영을 진행하는 TV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리 성우들은 일을 맡고,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마치면 끝이기 때문에 계약서가 존재하지 않는 사례도 많다. 그래서 불공정 계약에 대한 사항이 한국성우협회에 공유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넷플릭스의 해명에 대해 "거짓 해명이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방송 전 작품에 대한 기밀유지가 당연한 것을 왜 모르겠냐"라며 "10여 명의 성우들로부터 비슷한 사례를 제보받았으며 지식재산위원회에 자문을 구하고 노무법인과도 컨택을 완료했다"고 답했다.

이제 막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디즈니플러스는 계약서가 존재하나 계약 조건이 성우들의 목소리를 앗아가는 것과 동일한 수준이다.

디즈니의 계약서를 살펴보면 더빙 작업물과 그 기본 요소에 대한 권리(제작사, 모회사, 자회사, 계열사=총칭 회사)를 회사가 소유하며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형태(편집, 수정, 삭제, 개정, 변경 권리 포함), 저작권과 인접권, 2차적 저작물 작성권과 편집권 및 기타 개발 이용권 또한 회사가 소유한다고 표시돼 있다.

아울러 계약자 본인은 '어떠한 작업물에 대해서도 전체 또는 일부의 법적, 형평법적 또는 기타의 어떠한 권리, 지위 또는 이익도 가질 수 없으며 이를 주장하거나 청구하여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동의한다.'라는 내용 또한 포함한다.

추가로 작업에 참여한 성우 본인의 이름이 게재될 수도, 게재되지 않을 수도 있음에 동의한다는 내용도 있다. 이는 명백히 저작인격권 중 성명표시권을 침해하는 사안이다.

불공정 계약 논란이 불거진 디즈니플러스(사진=게티이미지).


노무법인 길은 "디즈니의 계약 조항에 대해 스튜디오, 공급자, 제작자가 계약의 당사자인 바 계약의 당사자 지위와 의무 및 책임사항을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급자의 의무와 스튜디오의 권리는 명시된 반면 반대로 공급자의 권리와 스튜디오의 의무는 없다. 특히 열악한 지위에 있는 공급자의 경우 제작사와의 교섭을 통해 이 공백을 채워 보호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고 사료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법무법인(유) 원에서는 지난 2018년도, 웹툰서비스사업자와 웹툰 작가 사이에 체결하는 웹툰 연재 계약서상 콘텐츠 2차적 저작물 사용에 대한 불공정 약관에 시정조치를 내린 사례를 들었다.

웹툰 연재 계약서와 디즈니 계약 형태나 내용에 차이가 있으므로 동일한 판단이 내려지기는 어려울 수 있으나 2차적 저작물을 '무단으로 사용한 경우'나 계약 체결 당시 예상하기 어려운 장래의 매체에 대한 내용에 대한 불공정 약관으로 보아 시정조치가 내려졌던 점을 참고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는 입장이다.

한국성우협회는 이러한 불공정 계약과 더불어 해외 글로벌사 및 에이전트 갑질 행태를 수용할 수 없으며 피해 사례를 일일이 수집해 법적 대응에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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