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박정현 OTT 평론가] 필자는 전쟁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총성이 난무하는 격전지에서 죽이지 않으면 죽어야만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건 영화로 보기에 너무도 끔찍하다.
그럼에도 전쟁이 소재인 이 영화 <더 포가튼 배틀>을 보게된 이유는 하나, 제목 때문이었다. 잊혀진 전투. 어떤 전투였고 왜 잊혀졌을까 하는 호기심에 재생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이 영화 <더 포가튼 배틀>의 주요 무대는 네덜란드 제일란트로, 시기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였던 1944년이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시작으로 승기를 잡은 연합군이 물자 배급을 위한 항구를 확보하고자 독일군과 전투를 벌이던 시기를 배경으로 3명의 젊은이 시점에서 스토리가 진행된다.
저마다 가진 배경이 다른 세 사람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연합군 글라이더 조종사 윌리엄(제이미 플래터스 분)', '네덜란드 출신의 독일군 마리우스(하이스 블롬 분)', '독일군에 비밀리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튄(수잔 래더 분)'이다.
영화 초반부만 해도 세 사람은 각자 살아온 환경에 따라 저마다의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보지만, 총성이 난무하고 무수한 이들이 죽어가는 시간들을 겪으며 점차 공통된 마음을 갖게 된다.
끔찍한 전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바람!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세 사람은 저마다 전쟁통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한다.
외적인 감정 변화가 가장 큰 인물은 윈스턴 처칠을 친구로 둔 사령관의 아들이자, 직접 글라이더를 조종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윌리엄이다.
전투를 경험해본 적 없던 그는 비행에 나서자마자 독일군의 공격을 당하고 상급자, 동료와 함께 추락했다가 홀로 목숨을 부지하고 육지 전투에 투입된다.
본디 가진 것이 많은 집안에서 타고나 호쾌한 성격을 갖고 있던 그는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포탄에 팔다리가 날아가고 불구가 되는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고 막연한 상상으로 유희거리처럼 느꼈던 전쟁의 실상에 대해 뼈저리게 깨닫는다.
초반에서 후반으로 갈수록 고뇌가 깃드는 표정 연기가 인상적인데 어느 순간 승패보다 살아남는 것에 집중하며,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인물이다.
세 사람 중 행동 변화가 가장 큰 인물은 시청에서 근무하는 네덜란드인 튄이다.
연합군 윌리엄이나 본인의 집을 떠나 독일군에 자원입대한 마리우스와 달리 그녀는 제일란드에 계속 살아왔기에 따듯하고 안전하던 보금자리가 전쟁터로 바뀌어버렸다는 충격 속에 살아가고 있다.
독일군에 협력하는 의사 아버지와 독일군에 비밀리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동생 사이에서 불안해하지만, 동생이 고문 끝에 처형당했을 때 그가 못다 한 임무를 수행하는 마지막 인물 역시 그녀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그 임무에 대해 이야기하진 않겠지만 영화상에서는 전투의 승패를 가를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임무였다.
마지막으로 마리우스는 내적인 변화를 크게 겪는 인물이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일군에 자원입대한 네덜란드인이라는 처지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전투에서 이기고 지는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다만 생존할 뿐이고, 본인의 안위를 제외하고는 타인에게도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지만 튄의 동생이 죽는 사건을 겪으면서, 그 죽음에 일조한 군인이 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괴로워하며 조금씩 변화한다.
고뇌의 시간을 보내며 본인이 선택한 독일이라는 나라도 군인들을 그저 장기말 정도로 대하고 있다고 깨달았들 때 어쩌면 본인을 지켜줄 울타리는 없음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가정에서 벗어나 군대를 안전한 피난처로 삼았지만 이곳 역시 지옥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제 목숨을 바쳐 한 사람을 구한다.
다른 누구보다 제 목숨이 소중하던 한 사람이 자신만큼이나 의지할 곳 없는 한 사람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게 된다는 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실상 필자에게는 주축으로 보여지는 세 명보다도 한 장교가 인상적이었는데 무자비한 전투를 겪으면서도 낭만과 인간성을 잃지 않은 게 보여서였다.
무수한 죽음을 목도했고, 무수한 목숨을 끊어왔으며 종국에는 두 다리를 잃고 스스로 총구를 겨누는 순간에도 그는 밤하늘 아래서 담배 한 대를 피고 떠난다.
또한 죽기 직전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힘을 다해 마리우스의 안위를 지켜준다.
아비규환 속에서 총구를 겨눠야만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 깃들여 있고 그 속에는 평범한 일상을 그리는 낭만 역시 머물러 있다는 한 인물로 보여줬던 게 아닐까 한다.
전투 장면도 잘 연출했지만 그 속에 살아 숨쉬는 인물들을 보여주며 전쟁 이면을 바라보게 했다는 점에서 필자는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한다.
다만 화려한 액션을 기대하거나 승패가 중요하다면 이 영화를 다소 지루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한때 치열한 전쟁터였고, 시간이 꽤 흐른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은 전투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이 영화를 한 번쯤 봐도 좋지 않을까.
'제2차 대전'이라는 커다란 사건에 묶여 무수한 전투 중 하나로만 기억되었을 전투를 영화로 만들어 <더 포가튼 배틀>이라고 이름한 건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이 질문에 대해 필자는 이번 리뷰에서 확답을 내리지 않겠다.
여유가 날 때, 날이 좋을 때 슬쩍 넷플릭스를 켜고 이 영화를 직접 보며 마음으로 느껴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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