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김주영 OTT 1기 리뷰어] 어릴 때 내게 꿈은 '판타지' 장르였다.
꿈에서 하늘을 날기도 했고, 용에게 쫓기기도 했다.
그러나 열일곱 무렵부터는 꿈의 장르가 현실물로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현실 도피 수단으로 잠을 선택하곤 했는데, 꿈조차 현실과 이어져 현실의 문제들이 꿈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악이었던 건 꿈에서는 그 문제들이 해결됐다는 것이다.
행복한 기분으로 맞춰 놓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뜨곤 했다.
그대로 누워있다 보면 알람이 울렸고, 그제야 나는 현실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눈치채곤 했다.
지독한 악몽이었다.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여름 방학을 할아버지(김상동 역) 댁에서 보내게 된 한 가족의 이야기다.
영화에는 두 남매가 등장한다.
사춘기 소녀 옥주(최정운 역)와 그의 어린 남동생 동주(박승준 역)로 구성된 '어린 남매'와, 이들의 아빠(양흥주 역)와 고모(박현영 역)로 구성된 '어른 남매'가 있다.
<남매의 여름밤>에는 유독 잠을 자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이 중 꿈이 언급되는 건 세 번뿐이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건 아빠의 꿈이다.
아빠는 잠들어 있는 동주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보다, 자는 동주를 급히 깨워 학교에 늦었다는 장난을 친다.
지각인 줄 알고 벌떡 일어나 세수를 하던 동주는 뒤늦게서야 방학임을 깨닫고 다시 잠이 든다.
아빠는 자신이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런 장난을 쳤었다고 말하며, 그 기억을 내내 잊고 살다가 꿈을 꾸다 기억해냈다고 덧붙인다.
두 번째는 고모의 꿈이다.
극 속 두 남매에겐 엄마가 부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른 남매는 어려서 엄마가 돌아가셨고, 어린 남매는 이혼으로 엄마가 떠났다.
고모는 포대기에 싸인 어린 자신을 엄마가 안고 뛰는 걸 보는 꿈을 꾼다.
이는 아빠의 꿈과는 달리, 실제 기억이 아닌 고모의 상상이다.
고모는 상상을 진짜 기억인 것처럼 꾸며낸 꿈을 꾼다.
마지막은 옥주의 꿈이다.
본래 옥주는 꿈을 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 마지막,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옥주는 엄마의 꿈을 꾼다.
엄마가 장례식장을 찾아와 함께 밥을 먹고 동주의 재롱을 보며 웃는다.
할아버지가 떠난 슬픔을 남은 가족들이 모여 웃음으로 이겨낸다.
그러나 옥주는 이 모든 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되고,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허망한 울음을 쏟아낸다.
이들의 꿈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
아버지는 지나간 순간을 꿈으로 꾸고, 고모는 보고 싶은 이를 꿈에서 보고, 옥주는 속으로만 품었던 간절한 바람을 꿈으로 꾼다.
이처럼 꿈에서조차 현실을 만나는 순간, 유년 시절은 끝나간다.
옥주는 여름 방학 동안 가난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비참함을 느꼈고, 어른들의 비겁함을 목격했으며, 가깝게 지내던 이의 죽음을 경험했다.
옥주의 울음에는 직감적으로 유년 시절이 끝나감을 느끼는 허무함이 섞여 있다.
어린 동주는 아직 꿈을 꾸지 않았다.
동주가 옥주에게 라면을 끓여줄 수 있는 나이가 되고, 늘 안고 다니는 코끼리 인형이 필요하지 않게 될 때쯤, 동주 역시 현실 같은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영화 초반, 어린 남매와 어른 남매는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어른 남매는 다정하다.
고모부가 찾아와 행패를 부릴 땐 아빠가 나서서 막아주고, 고모는 형편이 좋지 않은 오빠를 배려해 자신이 병원비를 부담한다.
반면, 어린 남매는 늘 티격태격이다.
누나 말은 안 들으면서 누나만 찾는 동주와 그런 동생이 귀찮은 옥주는 내내 틱틱거린다.
그러나 후반으로 흘러갈수록 남매의 모습은 변화한다.
사이좋던 어른 남매는 돈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서먹해지지만, 내내 싸워대던 옥주와 동주는 중요한 순간 서로의 곁을 지키기 시작한다.
옥주가 성장하기 시작했기에 어린 남매는 점차 싸우는 날이 줄 것이다.
동주까지 어른이 되면 둘은 아빠와 고모처럼 다정한 사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비겁한 선택을 하기도 하고 경제적 문제 앞에서 서먹해지는 '어른 남매'가 될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것일 거다.
<남매의 여름밤>은 소소하고 싱거운 일들로 가득한, '가만가만한' 영화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뒤 한없이 먹먹해진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로 범벅돼 눈물을 쏟아내며 잠들던 어느 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 밤에 나는 유년 시절을 떠나보냈다.
할아버지의 가만가만한 움직임, 가만가만 웃는 옥주의 미소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아련히 남는다.
울다 지친 옥주는 잠이 든다.
옥주가 꿈을 꾸지 않기를, 현실의 이야기는 잠시나마 잊고 단잠에 빠지기를 바라본다.
아련한 여운이 남는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티빙에서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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