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부터 <반쪽의 이야기>와 <네버 해브 아이 에버>의 한 장면, 두 작품 모두 유색인종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사진 IMDB


[OTT뉴스=조수빈 OTT 평론가] 다양성에 진심인 넷플릭스가 정치적 올바름과 완성도를 모두 갖춘 작품을 잇달아 공개하며 콘텐츠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넷플릭스의 이러한 움직임이 두드러지는 장르 중 하나가 바로 영어덜트(Young Adult) 장르이다.

자아 정체성, 우정, 가족 관계 등 청소년기의 고민 속에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넷플릭스의 웰메이드 영어덜트 작품 두 가지를 일기 형식으로 소개해 보려 한다.

일기의 주인공은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해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아싸' 여고생들이며, 내용은 작품의 줄거리와 주인공의 성격을 반영하여 임의로 재구성했다.

각기 다른 고민을 가진 이들의 일기를 들여다보자.

◆ <반쪽의 이야기>, 엘리 추(리아 루이스 분)

엘리 추(리아 루이스 분)와 폴(대니얼 디머 분)이 등굣길에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IMDB


오늘도 등굣길에 아이들이 '칙칙폭폭추추'라고 놀려댔다.

걔네 입장에서는 꽤 머리를 쓴 것 같다.

나를 놀리기 위해 '추'라는 중국계 성씨와 아빠를 대신해 기차역의 역장 노릇을 하는 사실을 엮기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나는 항상 대꾸도 하지 않지만, 건넛집 폴(대니얼 디머 분)이 대신 쫓아가 화를 내 줄 때도 있다.

사실 폴과 나는 조금 특별한 관계다.

비밀스러운 관계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은 전기요금이 밀려 단전될 뻔한 적도 있을 만큼 사정이 별로 좋지 않다.

내가 다른 애들의 숙제를 대신해 주는 것은 다 이런 이유에서다. 생활비에 조금이라도 보태야 하니까.

이야기가 옆으로 샜지만, 아무튼 폴이 나에게 연애편지 대필을 부탁했다.

당연히 사례는 넉넉히 하겠다고 했지만, 솔직히 내키지는 않았다.

폴이 짝사랑하는 상대가 애스터(알렉시스 러미어 분)니까.

애스터는 합주 시간에 내가 유일하게 귀 기울이는 사람이다.

기분에 따라 바뀌는 목소리도 너무 매력적이다.

내가 사랑을 정의한다면 아마 애스터를 먼저 떠올릴 것 같다.

폴의 부탁으로 대신 편지를 쓰기 시작했지만, 나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애스터와 나는 생각보다 잘 통했고 공통점도 많았다.

하지만 폴과 절친이 된 이상 내 마음을 밝힐 수는 없었다.

폴과의 관계가 망가질까 두렵기도 하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밝히기엔 나는 너무 소심했으니까.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폴이 조금 모자란 친구이긴 해도 애스터와 잘 돼가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폴이 나에게 키스를 하려고 한 거다.

나는 친구로서 잘해준 것뿐인데, 걔는 여자는 무조건 이성으로만 느껴지는 걸까?

문제는 애스터가 이 모든 장면을 봤다는 거다.

게다가 폴이 내 비밀을 눈치채고선, 애스터를 향한 내 마음이 죄악이라고 했다.

나는 사랑을 이성애도, 동성애도 아닌 반쪽짜리 영혼의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성별이 무엇이든, 상대가 누구든, 나에게 맞는 반쪽을 찾으면 되는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사랑은 그냥 엉망진창에 끔찍하고 이기적이고 대담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진짜 대담해지기로 했다.

기차를 타기 전에 애스터에게 내 마음을 솔직히 밝히고 키스까지 해버렸다.

조금 희망이 보이는 것 같은 건 내 착각일까?

아, 폴도 대담해지기로 한 것 같다.

죄악이랄 땐 언제고, 날 이해하고 인정해줬다.

기차가 출발하는데도 무식하게 쫓아와서 솔직히 감동이었다.

좀 이상하지만, 우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 <네버 해브 아이 에버>, 데비 비슈와쿠마르(마이트레이 라마크리슈난 분)

얼떨결에 팩스턴(대런 바넷 분)의 집까지 방문하게 된 데비(마이트레이 라마크리슈난 분)가 당황하고 있다. 사진 IMDB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꼬일까.

내가 원했던 건 딱 세 가지였다.

핫한 파티에 초대받기, 팔 털 안 나기, 남친 생기기.

결과적으로 나는 파티에서 친구들과 몽땅 절교할 뻔했고, 팔 털은 아직도 그대로다.

진짜 문제는 남친이다. 난 두 명의 남친을 원한 적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작년도 대환장 파티였다.

내 연주회에서 아빠가 갑작스레 돌아가셨고, 나는 충격으로 다리가 마비되기까지 했다.

덕분에 나는 놀지도 못하고, 날 미워하는 엄마와 항상 붙어있게 됐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심리 상담까지 받으러 다녀야 했다.

엄마는 심리 상담 같은 건 백인이나 받는 거라고 하면서 왜 나한테 강요하는지.

내 사랑 닉 조나스가 나 아닌 다른 인도 여자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가 내 인생 최대 위기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다.

다행히 지금 내 다리는 멀쩡하다.

패비올라(리 로드리게즈 분)와 엘리너(라모나 영 분)가 항상 곁에 있어 주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팩스턴(대런 바넷 분) 덕분이다.

잘생긴 팩스턴을 보고 내 다리가 정신을 차렸달까.

아무튼 이제 2학년이 됐으니, 휠체어 탄 아싸 데비는 잊어주길!

이런 포부로 팩스턴에게 당당히 데이트 신청도 했고 잘 되긴 했다.

좀 무리수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내가 행동력 하나는 참 좋은 것 같다.

벤 그로스(자렌 루이슨 분)와 데비가 모의 UN 계획을 짜고 있다. 사진 IMDB


멍청이 벤 그로스(자렌 루이슨 분)가 붙여준 'UN'이라는 인종차별적인 별명과도 작별을 고한다.

별명이 왜 UN이냐면, 나랑 패비올라, 엘리너가 전부 유색인종이고 공부만 하는 찌질이라서다.

하여튼 벤 그로스는 답이 없다. 진짜 답이 없다.

평생 원수였는데 갑자기 뭔 바람이 불었는지 나한테 들이댔다.

두 번이나 키스하려고 해서 밀어냈는데, 세 번째는 내가 먼저 했다.

나도 진짜 답이 없다. 팩스턴은 어쩌고?

엄마가 알면 뭐라고 하실까. 설마 엄마가 내 일기까지 훔쳐보진 않겠지?

이런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한 가지 좋은 일도 있었다.

드디어 내가 아빠를 보내드릴 수 있게 됐다는 거다.

말리부 해변에서 아빠와 작별 인사를 하고, 엄마와도 화해했다.

하프 연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친구들도 다 잘 풀렸다. 나 빼고!

패비올라는 멋지게 커밍아웃해서 이젠 여친까지 생겼고, 엘리너도 배우의 꿈을 되찾았다.

이제 한 가지만 풀리면 된다.

팩스턴이냐 벤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인 <반쪽의 이야기>와 <네버 해브 아이 에버>는 모두 로튼 토마토 97%의 높은 신선도를 받을 만큼 호평받고 있으며, <네버 해브 아이 에버> 시즌 2는 오는 7월 중 공개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