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희진 OTT 1기 리뷰어] "우리는 빛! 우리는 생명!"
송전탑에 올라가기 전, 3명의 직원이 매번 손을 모으곤 작게 외친다. 생명력 가득한 내용에 그렇지 못한 말투.
직원들은 제대로 된 특수복조차 제공되지 않는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송전탑에 올라가 전기를 공급해 주는 일, 각 가정에 빛과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일을 하는 이들은 정작 빛과 생명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영화는 송전탑 노동자들의 이야기지만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아등바등 부품처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당신도 이 사회에서 부품처럼 살아가고 있다면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를 시청하면 어떨까.
하루 아침에 본사에서 하청업체로 파견 명령을 받은 정은(유다인)은 어떻게든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억울하게 파견 명령을 받은 정은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대학 나오고 똑똑해서 본사에 시험 봐서 들어간 사람이 이런 지방에서 무슨 일을 하냐'는 소장의 핀잔과 무시다.
본사와 하청업체 모두 정은을 해고의 길로 내쫓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은은 어떻게든 버텨보려 한다.
매일 밤 팩 소주를 까면서라도 버텨야 한다.
송전탑에 오르기 위해 매뉴얼을 찾아보고, 몰래 작업복을 입고 연습도 해본다.
감전될 수 있기 때문에 금속이 있는 속옷도 벗어야 한다.
장비와 장치들의 이름을 익혀가며 시뮬레이션도 해보지만, 본사에서 받은 교육 수준으론 어림도 없다.
고소공포증 혹은 특정 물체를 보면 공포증을 느끼는 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약을 먹으면서까지 정은은 송전탑 오르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제대로 밧줄조차 매지 못하는 정은 옆에 막내(오정세)의 존재가 눈에 띈다.
막내는 송전탑 수리 일을 본업으로, 밤에는 편의점 알바와 심야에는 대리운전 기사로 돈을 버는 딸 셋의 아빠다.
정은이 해고당할까 걱정할 때, 막내는 죽을까봐 걱정한다.
정은과 막내는 누군가의 해고를 막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가 해고되거나 죽거나, 혹은 둘 다여야 하는 세상에 산다.
여성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핍박만큼이나 막내 같은 하청업체 노동자의 근로 환경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시대가 어느 시댄데, 송전탑 유지 보수에 겨우 하청업체 직원 3명이, 그것도 직접 올라가는 것도 모자라 감전의 위협을 전혀 막아주지 않는 허름한 작업복만 입고 오르는 게 전부라니.
정은과 막내 모두 헬멧과 밧줄, 조금 튼튼해 보이는 버클에 몸을 의지해 탑을 오른다.
밧줄과 버클 하나에 걸어 마땅한 목숨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더 이상 죽지 않는 세상에서 살게 해달라'는 외침은, 그래서 아직 유효하다.
현실의 정은과 막내는 죽거나 해고되고 있다.
일하는 부품으로만 살다가기엔 AS라도 되는 노트북 부품보다 못한 삶이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의 감독 이태겸은 직장 생활 1년 반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정은과 막내가 계급과 지위를 무시하고 인간적 연대를 보였던 것처럼, 이태겸 감독은 인간성의 회복을 그리고 싶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우리 모두 살기 위해 일한다.
일하다 죽지 않기를, 일만 하며 살지 않기를, 부품으로 끝나지 않기를.
오늘도 쉬지 않고 일할 누군가에겐 감히 그들의 빛, 생명을 외쳐본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웨이브에서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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