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누아르 영화는 가장 필요한 순간 총이 없을까?" - 넷플릭스 <낙원의 밤>

넷플릭스, <낙원의 밤>

김주영 승인 2021.04.13 08:00 | 최종 수정 2021.04.14 22:33 의견 0
<낙원의 밤> 포스터. 사진 넷플릭스


[OTT뉴스=김주영 OTT 1기 리뷰어] 고급재료를 써 예쁘게 플레이팅까지 마쳤는데 막상 완성된 요리가 어딘가 밋밋하고 허전한 맛이다.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어딘가 부족하다. 찝찝한 기분으로 식사를 마치고는 컵라면 작은 사이즈라도 끓일까 고민하게 된다.

박훈정 감독의 신작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이 바로 그렇다.

누아르에 특화된 감독,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 존재감 가득한 배우들에 넷플릭스 단독 공개라는 타이틀까지. 관객이 기대할만한 요소를 모두 갖춘 <낙원의 밤>은 밋밋하고 허전하다.

또한 참 뻔하다. '태구'의 사랑스러운 가족들은 곧 죽을 것이며, 충성스러운 '태구'는 배신을 당할 것이다.

<낙원의 밤> 스틸컷 속 재연(전여빈). 사진 넷플릭스


'재연'의 삼촌도 곧 죽을 것이며, '재연'은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시원하게 총을 갈길 것이라는 걸 시청자들은 너무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아쉽긴 하지만, 누아르라는 장르상 배신과 복수의 반복은 어쩔 수 없는 전개라고 납득할 수도 있다.

문제는 영화의 전체적인 줄기 뿐만 아니라 사소한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뻔하다는 것이다.

조카에게 아이패드를 건네자, 사고 현장에선 아이패드 상자가 굴러다닌다.

'도 회장'이 안심하자마자 '태구'는 숨겨둔 칼을 가지고 목욕탕에서 학살을 벌인다. 처음부터 수상한 제주도 조폭들은 역시나 삼촌을 죽인다.

혹시나 하면 역시나인 순간들이 두 시간 내내 반복된다.

더 큰 문제는 모든 설정에 적절한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태구'는 '양 회장'에게 충성을 다한다.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충성해야 배신을 당하기 때문에 태구'는 양 회장에게 충성한다.

대번에 태구의 수하 '진성'의 눈을 그어버릴 정도로 잔혹한 '마 이사'는, 진성을 그대로 죽이지 않고 곱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병원에 입원시켜준다.

이유는 하나다.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늦지 않게 태구에게 전화해 경고를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태구가 적당히 쫓기다가 차에서 멋진 액션씬을 찍을 수 있을 테니까.

심지어 설정을 멋대로 붕괴시키기까지 한다.

항상 총을 지니고 다니지 않으면 불안하다던 재연은, 가장 총이 필요한 결정적인 순간에 총이 없다.

왜냐면 태구가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태구가 죽어야 그 다음 장면에서 재연이 화려한 횟집 액션씬을 선보일 수 있다.

그렇기에 그 순간, 재연에게 총이 없는 이유는 설명되지 않은 채 바로 다음 씬으로 넘어간다.

사격을 잘하는 시한부 환자 재연은 갑자기 살인 병기가 되어 그 어렵다는 한 손 사격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두를 쏴 죽인다.

밖에 대기 중이던 부하들은 어느 순간 증발해 있다.

이처럼 원하는 장면만을 위해 감독은 스스로 개연성을 버린다.

그 결과, 고통받는 건 클라이막스가 나오기 전까지 뻔하고 개연성 없는 영화를 봐야 하는 관객이다.

<낙원의 밤> 스틸컷 속 태구(엄태구). 사진 넷플릭스


그렇다고 <낙원의 밤>이 아주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다. 캐릭터의 의외성이 소소한 재미를 준다.

특히 배우 '엄태구'의 모습이 돋보이는데, 굵직한 외모와 거친 목소리를 가진 그가 사실은 몹시도 내성적이라는 건 한 예능을 통해 잘 드러났다.

그런 엄태구의 이중적인 매력을 영화 속 '태구'가 잘 보여주고 있다.

무게를 잔뜩 잡고 있던 태구가 조카에게 애정을 갈구하고, 재연의 짜증에 머쓱하게 창문을 올린다.

자신과 자자고 유혹하는 재연에게 자신도 취향이 있다는 농담을 친다. 잔혹한 모습과 어딘가 어설픈 장난기가 태구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잔혹하지만 묘하게 인간미 넘치는 마 이사 역시 재미있는 캐릭터다.

아쉽게도 재연의 매력은 이들에 비해 떨어진다.

서늘한 얼굴로 총을 갈기는 모습은 인상적이지만 <마녀>의 '구자윤'만큼 충격적이진 않다.

서사는 <신세계>보다 못하고, 액션 씬은 <마녀>만 못하다.

배우들은 제 몫을 다했고, 결국 남은 건 감독이다.

박훈정 감독의 차기작인 <마녀2>가 촬영 중이다.

<낙원의 밤>을 보니, <마녀2>를 기대해도 될지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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