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스 오브 막시>, 우리의 손등은 외롭지 않다

넷플릭스 <걸스 오브 막시>

권세희 승인 2021.04.08 17:02 의견 0
<걸스오브막시> 타이틀. 사진 넷플릭스 공식 예고편


[OTT뉴스=권세희 OTT 1기 리뷰어] 혁명의 시작은 극적이지 않고, 작은 인지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미세한 결심은 큰 돌풍이 되어 부조리함을 깨부술 수 있다.

극 중 어머니 배역을 맡은 에이미 폴러가 연출한 <걸스 오브 막시>는 이 과정을 소심한 소녀인 비비언(해들리 로빈슨)을 통해 보여준다.

성공적인 대학 진학을 꿈꾸던 비비언이 학교의 불합리함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소심한 소녀의 발칙한 혁명은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다.

누군가는 '너무 뻔한 이야기 아닌가?'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에게 공감할 사람이 있다면, 혹은 비슷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필요한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지루하고 뻔하다고 단순히 치부하기에 <걸스 오브 막시>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루시가 비비언에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장면. 사진 넷플릭스 공식 예고편


비비언의 각성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힘

비비언의 학교생활은 단조롭다. 타인 앞에 쉽게 나서지 않는 그는 절친한 친구인 클로리아(로렌 차이)와 대학 진학을 목표로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내성적인 비비언과 달리 그녀의 어머니인 리사(에이미 폴러)는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리사는 어린 시절 여성들에게 제약을 거는 사회에 적극적으로 불만을 토하는 스타일로 그려지는데, 이는 훗날 비비언의 행동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물론 비비언은 그때까지만 해도 여성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눈앞에 놓인 대학 입시에 몰두한다.

비비언의 태도가 변화하기 시작하는 부분은 루시(알리시아 파스콸-페냐)를 만나고부터다.

루시는 수업 시간에 자신이 의문을 가지는 부분에 대해 망설이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게 누군가에게 불편한 주제가 될지라도.

더불어 무례하게 구는 백인 남성인 미첼(패트릭 슈왈제네거)에게도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이 과정에서 미첼은 루시에게 위협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 모습을 목격한 비비언은 루시에게 '미첼은 원래 멍청하다'라며 더 엮이지 말라고 조언할 뿐이다.

그 조언에 루시는 강경하게 대답한다. '위험한 놈이야. 그냥 짜증 나게 구는 거에서 더 나갈 수 있다는 거 알지? 더 심한 짓을 할 수도 있어'라고 경고한다.

루시의 말은 씁쓸한 문장이자 복선이 된다. 후반으로 갈수록 루시의 말이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사실이라는 게 밝혀지기 때문이다. 미첼이 같은 학교 친구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비언과 루시의 대화는 단순하나 날카롭다.

지금 순간만을 지나면, 내가 대상이 아니라면 정말 괜찮은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화두를 던지기 때문이다.

마침내 비비언은 이 물음에 대해 '막시'라고 대답한다. 학교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잡지 '막시'를 배포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 잡지를 시작으로 소녀들은 연대한다.

손등에 별과 하트 등의 표시를 그려 함께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부당한 교칙에도 반기를 든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에서 불편을 감지하고 행동한다. 그들을 불편하게 하고, 괴롭게 하고, 제약하는 것들에 대해.

비로소 비비언과 소녀들은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함'을 인지한다.

영화는 '내가 겪지 않아야 하는 건 너도 겪지 않아야 한다'는 당연한 이치를 관철하며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루시가 손등에 하트와 별을 그리는 장면. 사진 넷플릭스 공식 예고편


특색 없는 서사구조, 그러나 중요한 건

<걸스 오브 막시>가 미장센이 대단하거나 구조가 세련된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긍정적인 답을 기대하긴 어렵다. 전형적인 구조를 따르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소극적 주인공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는 참신함이 없다. 영화가 전달하려는 주제만을 들고 반전 없이 나아간다.

연대하는 방식 역시 기발하기보다는 단순하다.

또한 비비언이 '막시'를 구성하는 기폭제가 되는 사건의 폭발력이 약하다는 점도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걸스 오브 막시>가 빛나는 점은 따로 있다.

여전히 우리가 느끼는 부조리한 부분을 짚어낸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 안에서는 여성 문제뿐만 아니라 타국에서 자리 잡아야 하는 이민자들의 고충과 유색인종에 대한 문제의식도 놓치지 않았다는 점도 괄목할만하다.

이 작품은 단순히 소녀들의 이야기라기보다 사회의 그늘에 가려진 이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하는 편이 더욱 알맞다.

이 작품은 하이틴의 탈을 쓴 변화의 몸부림과 같다. 부조리에 대해 아니라고 고발하는 사람들의 연대다.

비록 극적인 투박함이 느껴지더라도 이런 영화가 더 많이 탄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여전히 불편한 것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으며, 비비언과 같이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들이 잦게 생기기 때문이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누군가 함께 하고 있다는 안정감일 것이다.

그래서 <걸스 오브 막시>의 등장이 못내 반갑다.

손등에 그린 '막시'의 표시를 발견한 것처럼.

저작권자 ⓒ OTT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ott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