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 <스왈로우>
[OTT뉴스=김주영 OTT 1기 리뷰어] 어느 회사의 최종 면접에서 지루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던 면접관은 온몸으로 '나는 너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조금의 호감이라도 끌어내기 위해 나는 평소보다 많이 웃고, 과장스레 나를 꾸며냈지만 면접이 끝날 때까지 그의 팔짱은 풀리지 않았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 반지하 가게 유리문에 붙어있는 '귀 뚫어드립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충동적으로 피어싱을 했다. 귓바퀴에 하나, 귓불에 하나. 연골을 뚫은 귓바퀴가 화끈화끈했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 면접에서의 수치심보다 방금 뚫은 귀의 통증이 더 크게 느껴졌다.
영화 <스왈로우>의 주인공 '헌터'는 제목 그대로 계속 무언가를 삼킨다. 시작은 얼음이었다.
헌터의 임신을 축하하는 식사 자리에서 시부모와 남편은 헌터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며 그를 소외시킨다.
그때 헌터의 눈에 들어온 게 컵 안의 얼음이었다.
반짝거리는 차가운 것들이 왜 그리 맛있어 보이는지. 헌터는 참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얼음을 꺼내 씹고 삼킨다.
가족들의 대화 사이로 와작와작 얼음 씹는 소리가 섞인다. 그제야 가족들이 헌터의 존재를 눈치챈 듯 그녀를 바라본다. 얼음이 이상하게 맛있다.
그 다음은 조그만 유리구슬이었고 그다음은 압정이었다. 압정은 처음에는 실패했지만 재도전 끝에 삼키는 데 성공했다. 그다음은 건전지, 그다음은 흙, 그다음은 종이, 못, 장식품…… 헌터는 계속해서 이상한 것들을 입에 넣고 삼킨다.
의사는 이런 헌터에게 '이식증'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음식이 아닌 것을 규칙적으로 먹는 섭식장애. 2세 미만의 소아에게는 정상적인 발달 과정.
소화되지 못하고 배출된 물건들을 전리품이라도 되는 양 뿌듯하게 수집하는 헌터의 모습은 확실히 성인이라기보다는 어린아이처럼 느껴진다.
사진 왓챠 캡처
헌터는 강간으로 태어났다. 강간범인 친부는 구속됐고, 독실한 종교인이었던 친모는 낙태하지 않고 헌터를 낳았으나 그녀에게 사랑을 주진 못했다.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했던 성장 과정 탓일까, 성인이 되어 결혼한 뒤에도 헌터는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모른다.
부유한 시부모는 헌터에게 제 아들을 만나 팔자 폈다는 무례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해대고, 아들이 긴 머리를 좋아하니 머리를 기르라고 압박한다.
남편은 헌터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헌터가 넥타이를 잘못 다렸다는 이유로 욕설을 내뱉는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헌터는 적당한 대꾸를 하는 대신, 그저 많은 것을 삼켜낸다.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낙인, 동생들과 저를 차별하는 친모, 저를 무시하는 시부모와 남편 등을 삼키기만 한다.
그렇게 삼키고 삼킨 것들은 그녀를 고통스럽게만 할 뿐 배출되지 못한다. 거대한 저택 속 널브러진 헌터의 모습은 무력하기만 하다.
그러나 물건은 다르다. 작고 날카로운 물건들을 삼키면 고통스럽지만 배출이 된다.
고통의 결과물을 보고 있자면 무력감은 사라지고 자신감이 차오른다. 정신의 고통을 신체의 고통으로 치환하는 셈이다.
헌터는 제 몸에 상처를 내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외롭다며 자신을 안아달라는 남편 동료의 요청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외로움을 깨닫고, 자신의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떠들고 다니는 남편을 보며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분노해야 하는 상황임을 알게 된다.
저를 정신병원에 넣으려는 가족들로부터 도망친 헌터는 태어나 처음으로 친부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친부에게 "너는 아무 짓도 안 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너는 내가 아니다"라는 말을 듣는다.
그제야 헌터는 자신은 괴물이 아니며, 낙태하지 않고 자신을 낳은 친모에게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먹어선 안 되는 것들을 삼키는 행위를 멈춘다.
사진 왓챠 캡처
이후 헌터가 먹는 것은 감자튀김과 낙태약이다.
집에서조차 짙은 화장과 드레스 차림으로 저를 꾸미고 있던 헌터는 대충 묶은 머리에 편한 옷차림을 한 채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공중화장실에서 하혈한다.
그는 더 이상 고무장갑을 낀 채 변기에 손을 넣어 제 전리품을 찾기 위해 뒤적이지 않는다. 그저 물을 내리고 잠시 거울을 본 뒤 화장실을 나선다.
모든 걸 배출한 헌터는 앞으로는 적당히 자신을 보호하며 평범하게 살아갈 것이다.
가끔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해치는 선택을 한다.
먹어선 안 될 것을 입에 집어넣고 삼키던 헌터를 보며 난데없이 귀를 뚫던 그 날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 뚫었던 연골은 일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아물지 않고 염증이 났다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다.
구멍을 막아버릴까 싶다가도 그동안 버틴 게 아까워 미련하게 연고를 바를 뿐이다. 그렇지만 또다시 연골을 뚫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실 자신을 보호하는 데에는 좀 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
오래된 속담의 원래 뜻따위 버리고 좋을 대로 받아들이자.
애정과 존중 같은 단것만 삼키고 쓴 것들, 억압과 모욕, 무례 같은 것들은 뱉어 버리는 것.
나를 해치는 것들을 억지로 삼켜내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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