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이희영 OTT 평론가] <프렌치 디스패치>는 진귀한 경험을 선사해 주는 작품이다.
스크린 하단의 자막이 화면 전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107분의 영화 러닝타임은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 폐간호의 기사문 다섯 편으로 꽉꽉 채워져, 한 번에 숙지하기 버거울 만큼 방대한 정보량을 자랑한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특정 도시의 소식만을 전하는 지역지다.
영화의 주요 내용, 즉 기사들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도시 '앙뉘 쉬르 블라제(이하 앙뉘)'의 지역색이 강하고, 작고 소소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조명한다.
화가 모세 로젠탈러(베니시오 델 토로 분)가 어떤 가치를 좇다가 무슨 일로 감옥에 갇혔는지, 잡지사가 자리한 프랑스 가상의 마을 '앙뉘'의 과거 모습이 어땠으며 그곳의 사람들은 어떤 파벌로 나뉘어 논쟁을 벌였는지, 셰프 네스카피에(스티브 박 분)가 경찰서장의 아들을 납치한 일당에게 무슨 요리를 대접했는지까지 기사를 통해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 어마어마한 양의 텍스트는 그대로 텍스트의 소재를 향한 애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증거가 된다.
시간과 정성을 할애한 관찰과 집필은 모두 애정으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애정은 앙뉘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향하고 있기에 더욱 애틋하다.
제국주의를 배격하고 자유를 따르고자 한 학생들의 열망은 크레멘츠(프란시스 맥도맨드 분)의 관찰 없이는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식민지 출신 이방인 경찰서장과 동양계 셰프 네스카피에의 삶 역시 같은 이방인인 로벅 라이트(제프리 라이트 분)의 펜 없이는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앙뉘는 시장이 철거되고 쇼핑센터와 주차장이 새로 들어설 예정이며 온갖 동물이 들끓고 강에서는 여전히 익사체가 인양되는 탁한 색채의 마을이지만, <프렌치 디스패치>를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모여 지금을 살아가는 곳'으로 남게 될 것이다.
'지역색' 기사의 문장 그대로, '세상 모든 아름다움은 저마다 깊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프렌치 디스패치>는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프렌치 디스패치>와 앙뉘의 이야기는 우리가 지나온 과거 자체로 확장된다.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는 창간자이자 편집장인 아서 하위처 주니어(빌 머레이 분)의 유언으로 발행이 영구 중지됨으로써 50년의 역사로 남게 된다.
작중 시점인 1975년과 현재 시점의 격차를 고려할 때 이는 아날로그 매체의 쇠퇴를 가리킨다.
디지털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는 것이 훨씬 익숙하고 편리한 지금, 종이 잡지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배턴을 넘겨준 주자에 가깝다.
과거 시점과 그 시점의 소재를 굳이 현재로 끌어와 영화를 제작한 선택에서 우리는 '과거' 자체를 향한 시선을 읽는다.
감독 웨스 앤더슨의 스크린에 담긴 방대한 텍스트는 과거의 활자 기사글 형식을 온전히 영상에 담아내고자 한 의도로도 보인다.
에피소드 속 일부 장면을 연극과 2D 애니메이션, 흑백 영상 등의 '아날로그' 포맷을 빌려 구성한 것도 이와 결을 같이한다.
내용을 빠짐없이 전달하고자 수 초도 되지 않는 화면들을 빼곡히 엮어낸 웨스 앤더슨은, 솔직하다 못해 적나라한 보도와 예상보다 훨씬 더 길어진 분량을 끝까지 관철해 낸 <프렌치 디스패치> 기자들의 모습과 닮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지나가 버린 인쇄 매체의 시대를 향한 애정과 향수, 그리고 기억하고 지켜내고자 하는 마음이 읽혔다.
즉 기자들의 앙뉘를 향한 애정은 웨스 앤더슨의 잡지 시대를 향한 애정과 비유할 수 있겠다.
현재의 모든 순간은 결국 과거로 남아 잊히기 마련이다.
그 순간의 감각들을 최대한 잃지 않고 간직하기 위해 우리는 기록한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이 기록에 관한 이야기이자, 언젠가 잊힐 모든 과거의 순간을 향한 인사다.
순간의 앙뉘를 잊지 않고자 남긴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
폐간될 잡지, 그리고 인쇄 매체의 존재를 잊지 않고자 만든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이 두 <프렌치 디스패치>는 과거의 유물이 된 사건과 물건을 넘어서, 기록하지 않으면 모두 사라지고 말 '과거' 자체로 환원된다.
'맛과 냄새' 기사에 등장하는 셰프 네스카피에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 도시는 우리들(외국인)로 가득하죠. 빠뜨린 뭔가를 찾아 헤매고 두고 온 뭔가를 그리워하죠. 운이 따른다면 우리가 잊은 것들을 찾아낼 겁니다.'
빠뜨리고 두고 온 그 무언가는 바로 우리 머릿속 어딘가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과거의 기억인지도 모른다.
한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시점에서, (곧 실직할 운명인) <프렌치 디스패치>의 직원들은 회사에 도란도란 모여 편집장의 생전 말버릇이던 '눈물 금지(no cry)'를 되뇐다.
그리고 함께 기억을 모아 그의 마지막 부고 기사를 씀으로써 <프렌치 디스패치>를 마무리한다.
따뜻한 노란색 벽지로 둘러싸인 공간 속 그들이 기억을 모으는 이 마지막 장면에 정작 우리가 눈물이 나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그 순간이 그들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를 향한 최대한의 예우이자, 그 시간 동안 열렬히 아껴 온 모든 순간을 지켜내기 위한 움직임임을 알기 때문에.
<프렌치 디스패치>는 디즈니플러스에서 시청할 수 있다.
<프렌치 디스패치> ▶ 바로가기(디즈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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