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최대건 OTT 1기 평론가]
독립영화가 지닌 주제의 다양성과 깊이는 상업영화의 그것과는 결이 분명히 다르다.
독립영화는 노동, 인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등 사건 자체보다는 '본질'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러나 매년 제작되는 적잖은 편수의 독립영화들 중 주목할 만한 작품은 많지 않다.
주제의식과 실험성에 함몰돼 자칫 과하거나 감독 혼자만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작품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한국 독립영화계의 상황은 공모전을 통한 제작 지원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인의 자본과 역량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1인 프로덕션 시스템을 통해 제작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와중에서도 한국 독립영화계는 매년 국내외에서 호평과 인정받는 작품들을 1편 이상씩은 배출해 내곤 했다.
그중에서도 배종대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인 <빛과 철>은 주목해봄직한 작품이다.
<빛과 철>은 비극적 사건에서 시작된 사람과 사람 간의 어긋난 관계에 대해 보여준다.
영화는 하나의 교통사고로 인해 남편을 잃고 2년 만에 고향을 찾은 미망인 희주(김시은 분)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첫 장면부터 희주의 눈빛은 어딘가 공허하고 텅 빈 모습일 뿐이다.
지인의 소개로 공장에서 일하게 된 희주는 그곳에서 자신의 남편이 가해자로서 사건이 종결된 교통사고로 인해 반신불수 남편을 둔 공장 급식소 영양사 영남(염혜란 분)과 마주친다.
피해자의 아내를 먼저 알아본 희주는 여러 가지 감정과 죄의식이 겹쳐 공장을 그만두려고 한다.
그렇지만 영남과 영남의 딸 은영(박지후 분)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는 사건의 진실이 뭔가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그 진실이란 바로 영남의 남편이 죽으려 차를 몰고 나가던 중 희주의 남편이 몰던 차량과 사고를 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죄의식과 이명에 시달리던 희주는 사건의 진실에 접근할수록 자신의 주변인들이 덮으려던 사실이 어떤 것이었는지 미궁에 빠지며 혼란스러울 뿐이다.
특히, 누구보다도 믿었던 자신의 오빠 형주(이주원 분)가 남편의 죽음에 책임이 있어 사건을 빠르게 종결시키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배신감에 큰 충격을 받는다.
여기에 더해 오빠와 올케가 들려주는 자신이 망각하고 있던 남편의 진실을 깨달으며 희주의 자아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내린다.
진실에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점점 외로워지는 희주는 영남의 남편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영남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렇듯 영화 <빛과 철>은 하나의 사고를 두고 주변인들이 겪는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심도 있게 보여준다.
보통 독립영화들은 긴 호흡에 심도 있는 인물 내면을 표현하는 연출법을 쓰기 마련이다.
그러나 <빛과 철>은 기존의 독립영화 연출과는 궤를 달리한다.
상당히 빠른 속도의 전개를 보여주며,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다양한 인물들의 개입을 통해 의외로 박진감 있는 연출을 보여준다.
물론 진실의 실타래를 상당히 묘연하게 풀어 내다보니 결말에 이르러서는 사건의 해결에 집중하기보다는 인물의 심정적, 상황적인 변화에서 오는 일종의 감정적 카타르시스에 의존한다.
잘 달려오던 열차가 방향을 잃고 탈선하는 모양이랄까?
좋게 말하면 관객 스스로 해석의 여지를 가지고 인물의 내면을 한 번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반대로 나쁘게 말하면 해답을 관객에게 떠넘겨버린 감독의 무책임함이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신선하다면 신선하고, 구태의연하다면 구태의연한 양단 모두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결말이다.
그럼에도 감독의 꼼꼼하고 섬세한 연출과 영화 <벌새>에 이어 <지금 우리 학교는>을 통해 떠오르고 있는 배우 박지후와, 탄탄한 연기력을 통해 다양한 작품에서 인상 깊은 조연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염혜란, 다양한 독립영화 및 상업영화에서 주조연의 필모를 쌓아온 김시은에 이르기까지 세 여배우들의 밀도감 있는 연기가 돋보이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인간 내면의 고통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에 대한 다소 철학적인 사유를 즐기실 수 있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영화 <빛과 철>은 웨이브를 통해서만 시청 가능하다.
웨이브 <빛과 철>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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