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무력함과 이기심을 신화로 엮는다면, <킬링 디어>

넷플릭스 : <킬링 디어>

이석용 승인 2022.01.11 07:00 의견 0
<킬링디어> 포스터. 사진 다음 영화


[OTT뉴스= 이석용 OTT 2기 리뷰어] 명망 있는 외과 의사 스티븐(콜린 파렐 분) 앞에 찾아온 한 소년 마틴(배리 케오간 분).

알 수 없는 표정을 가지고 있는 소년과 가까워지자, 이상적인 삶을 살아왔던 스티븐의 가정에 폭풍우가 몰아친다.

강렬한 심장 박동 소리와 쿵쾅대는 심장이 보이고, 동시에 연주되는 슈베르트의 버전의 'Jesus Christus schwebt am Kreuze!'

수술이 잘되지 않았는지 스티븐은 허탈하게 수술용 장갑을 벗고 동료인 마취과 의사 매튜(빌 캠프 분)와 시계 이야기를 하며 가죽끈보다 메탈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메탈이 오래 쓸 수 있고 간편하기 때문이라는 그의 답변은 의사라는 직업과 함께 그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 신의 등장과 굴레의 시작

심장 검사를 받기 위해 스티븐을 찾아온 마틴. 사진 네이버 포토


스티븐 곁에는 마틴이라는 16살의 한 아이가 있다.

스티븐은 마틴에게 시계를 선물로 주기도 하며 집에 초대해 저녁 식사를 대접하기도 한다.

어떤 관계기에 스티븐은 마틴에게 이렇게 호의를 베풀까.

알고 보니 마틴은 2년 전 스티븐이 술을 먹고 집도한 수술에서 의료사고로 사망한 환자의 아들이었다.

스티븐의 호의는 양심과 죄책감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 와중에 기묘하게 스티븐을 향한 마틴의 집착은 점점 심해져 스티븐은 마틴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결국 자신을 멀리하는 스티븐으로 인해 불안해진 마틴은 갑작스레 스티븐 주변을 맴도는 자신의 의도를 밝히고 일방적인 통보를 내린다.

스티븐이 본인의 가족 중 한 명을 죽이지 않는다면, 나머지 가족들이 하반신 마비, 거식증, 안구 출혈을 거쳐 죽게 될 것이라고 저주한 것이다.

스티븐은 어떤 설명도 덧붙이지 않고 협박하는 마틴을 무시하지만, 갑자기 걷지 못하게 된 아들 밥(서니 설직 분)이 음식까지 거부하기 시작하자 동요한다.

딸인 킴(래피 캐시디 분)까지 쓰러지자 스티븐은 저항할 수 없는 비극에 빠진다.

스티븐에게 자신의 목적을 고백하는 마틴. 사진 네이버 포토


여가에서 관객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밑도 끝도 없는 영화의 불합리한 설정에 무력감을 느끼고, 뜬금없는 형벌의 시작과 그에 대응하는 인물들의 무력한 반응에 괴리감이 든다.

보통 영화라면 엄청난 감정적 동요를 느껴 비명을 지르고 분노를 표출할 테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감정을 절제하며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이는 마틴이라는 절대적인 존재에 대해 저항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밥과 킴의 하반신 마비와 거식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스티븐은 마틴을 지하실에 묶어 폭행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주어진 시간만 날아갈 뿐, 스티븐은 결국 가족 중 한 명을 죽여서 가정의 평화를 이룩해야 했다.

이때부터 가족들은 살기 위해 스티븐을 추종적으로 받들기 시작한다.

가족 속에 '희생'이라는 숭고한 단어는 없었다.

오히려 스티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각자 노력하는 모습은 인간의 본능적인 면을 처절하게 표현해 우습기까지 하다.

평소 머리를 자르기 싫어했지만 머리카락을 스스로 자르며 정원에 물을 주겠다고 바닥을 느릿느릿 기어가는 밥, 마틴에게 동조했던 것을 사죄하며(일종의 간증 행위로도 보인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킴.

차분하고 현명했던 아내 애나(니콜 키드먼 분)는 언제든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하며 옷을 벗고 침대에 눕기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신사적으로 보였던 스티븐의 동료 매튜는 스티븐에 관한 진실을 알려주며, 대가로 애나를 성적으로 착취하려고 한다.

스크린을 통해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목격하는 관객들은 저절로 허망함과 수치심에 사로잡힌다.

◆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킬링 디어>의 원제목인 <The Killing of a Sacred Deer>에서 드러나듯이, 이 영화는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중 한 명인 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줄거리는 이렇다.

그리스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트로이 정벌을 위해 원정을 떠나려던 중, 실수로 사냥의 신 아르테미스의 신성한 수사슴을 죽여 출정하지 못하게 된다.

그는 아르테미스의 노여움을 잠재우기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다.

하지만 이피게네이아를 가엾이 여긴 아르테미스는 이피게네이아를 암사슴과 바꿔치기하고 자신의 사제로 삼는다.

결국 아가멤논은 딸을 죽이지 않은 꼴이 됐지만, 자식을 제물로 바친 죄는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아가멤논은 트로이 원정을 마치고 미케네로 돌아온 후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살해된다.

이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아들 오레스테스에게 죽는 것으로 이어져 아버지가 딸을 죽이고, 복수로 아내가 남편을 죽이고, 아비의 복수로 아들이 어머니를 죽이는 잔혹한 비극사가 시작된다.

잠든 애나를 보며 수많은 생각에 잠긴 스티븐. 사진 네이버 포토


<킬링 디어>를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 비춰 볼 때 마틴은 아르테미스 즉 절대적 존재인 '신'을 상징한다.

아가멤논은 스티븐으로 비유할 수 있으며, 가정의 파멸과 복수의 도화선 역할을 한다.

그리스 출신의 감독 요르고스는 자신의 출신 배경을 극적으로 활용해 신화의 인물들과 상징을 현대 가족극으로 담아냈다.

개연성 없고 별 의미 없어 보이는 부조리극 속에서 멀리서 인간을 방관하는 듯한 독특한 촬영 구도와 스산한 음향효과를 잘 활용해 관객마다 각자 다른 해석을 하게 만든다.

◆ 등가교환의 악마, 마틴

특히 영화의 가장 큰 주제는 '등가교환'이라는 개념이다.

마틴은 겨드랑이털을 보여줬으면 겨드랑이털을 봐야만 했고, 죽은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인 스티븐으로 대체하면 되었으며, 자신의 가족이 죽었으니 스티븐의 가족도 죽어야만 했다.

그 속에서 행위의 특성이나 가치는 배제되며 단지 행위의 원형, 즉 본질만을 등가 교환한다.

마틴은 스파게티를 먹으며 고백한다.

스파게티를 먹으며 애나에게 자신이 겪었던 일을 설명하는 마틴. 사진 네이버


자신이 스파게티를 먹는 방식이 아버지와 비슷해서 좋았는데 알고 보니 누구나 이렇게 먹는다고 하더라, 이걸 깨달았을 때가 아버지가 죽었을 때보다 더 슬펐다.

이때부터 마틴은 의미 없는 동질성에 깊은 배신감을 느꼈고 본질적인 교환만을 원하기 시작했다.

마틴은 악마가 아니라 균형의 수호자일지도 모른다.

이는 당신이 영화를 보고 판단할 것.

<킬링 디어>는 지금 바로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킬링 디어> ▶ 바로가기(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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