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이희영 OTT 평론가] 지난 12월 6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 <애비규환>은 제목만으로 이목을 끈다.
사람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참상을 의미하는 사자성어 아비규환(阿鼻叫喚)과 '아버지'의 속어를 합성한 이 제목은 다양한 추측을 낳고, 자연히 영화를 향한 호기심을 일으킨다.
<애비규환>의 주인공 토일(정수정 분)의 주변에는 다양한 '애비'가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전부인 친아버지(이해영 분), 여전히 존댓말을 쓸 만큼 어려운 새아버지(최덕문 분), 그리고 자기 뱃속 아이의 아버지인 남자친구 호훈(신재휘 분)이 있다.
어느 날 일어난 한 사건으로 토일은 그야말로 머릿속이 '아비규환'이 되는 것을 느낀다. 대학생인 그가 임신하게 되면서다.
새아버지는 어머니(장혜진 분)와 함께 자신을 타박한다.
충동적으로 대구로 떠나 겨우 만난 친아버지 역시 자신을 반갑게 맞아 주지 않는다.
그렇게 다시 서울로 올라오니 남자친구가 모든 연락을 끊고 사라져 버린다.
토일이 온갖 곤란에 처하며 '아비규환'에 빠졌다 느끼는 것은 그의 계획이 모두 어질러졌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바라는 상황이 있었고 이를 위해 세워 둔 계획이 있었다.
부모님이 임신을 축복해 줄 것이고, 친아버지 역시 자신을 환영해 줄 것이며, 남자친구는 자신과 언제까지고 함께하리라는 큰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임신 사실을 밝힘과 동시에 결혼 후 5년 동안의 계획표를 만들어 부모님께 보여드린다.
심지어는 임신 중단이 불가능한 시기까지 사실을 숨겼다.
토일의 자신만만한 태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철두철미한 계획에서 우리는 그가 품은 안정감에 대한 갈망을 읽는다.
이 욕구는 엄마의 이혼과 재혼으로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며 '최토일'에서 '김토일'이 된 그의 배경에서 기인한다.
자신의 친아빠처럼 '나중에 또 사라져 버릴' 일 없을, 견고한 가정을 일찌감치 꾸려 안정감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무의식에 자리 잡은 것이다.
토일에게 자신의 혼전임신은 그 안정감을 갖출 방법이었고 그래서 당연히 모두가 자신을 지지해 주리라 여겼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욕망은 이 '애비'들이라는 변수 때문에 순순히 실현되지 않는다.
미혼모가 될 각오까지 품고 찾아 헤맨 끝에 마침내 발견한 호훈은 독서실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진지한 사과 없이 상황을 무마하려 애교를 부렸다.
토일이 그 순간 파혼을 떠올린 것은 호훈이 자신의 안정적인 가정을 만들 사람이 아니라는 판단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그는 어마어마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자신이 계획한 것들이 '다 망했'기 때문에.
토일의 어머니는 혼란에 빠진 딸에게 말한다.
"나라도 망할 줄 알고 결혼했겠냐? 잘 살 줄 알았지. 살아보니까 아니었던 거 아냐. 나는 후회는 이미 실컷 했어. 근데 생각해 보면 망해도 완전히 망한 건 아닌 것 같아. 이 인간 때문에 너랑도 만났잖아."
<애비규환>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두를 향한 응원가 같은 작품이다.
완벽할 거라 믿고 만반의 준비를 한 선택이 틀린 것이었더라도 괜찮다.
그때 생각하면 되고, 다시 다른 선택을 내리면 되니까. '완전 망하는' 삶은 없으니까.
그러니 우리는 늘 실수할 수 있고, 그래도 된다고 영화는 토일의 입을 빌려 말한다.
토일은 마침내 호훈과의 결혼을 선택한다.
옳은 선택이라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좋을 수도 있으니까, 아니면 이혼하면 되니까' 망해도 된다는 생각을 품고서다.
동시에 작품은 이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묻는다.
이혼과 재혼, 또는 이른 임신으로 맺어진 가족을 보여주며, 이들이 다른 '정상' 가족처럼 온전하지 않고 불안하리라는 편견을 꼬집는다.
토일의 곁에는 딸을 위해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전단까지 붙여가며 호훈을 찾으러 온 동네를 돌고, 딸의 결혼이든 파혼이든 원하는 것이라면 무조건 지지해주는 단단한 부모가 있었다. 심지어 아버지는 두 명이나 있었다.
삶이라는 문제에 단일한 정답과 오답은 없으며 그저 수없이 다양한 해답이 존재할 뿐이라고 최하나 감독은 말한다.
그렇게 <애비규환>이 담아 보내는 응원은 세상의 모든 삶을 향함으로써 더욱 빛을 발한다.
토일 가족을 만나 삶을 살아갈 용기와 자신감을 얻고 싶다면, 지금 바로 넷플릭스를 찾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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