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멀티버스와 나르키소스로 보는 디즈니 플러스 <로키>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로키>

김나영 승인 2021.12.06 08:00 | 최종 수정 2022.05.28 19:19 의견 0
<로키> 공식 포스터. 사진 키노라이츠

[OTT뉴스= 김나영 OTT 평론가]

*약간의 스포가 포함돼 있습니다.

◆ <로키>에 대한 짧은 소개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로키>는 앞으로 마블이 열어갈 새로운 페이즈, 멀티버스의 서막을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로키>는 <어벤져스:엔드게임>에서 토니 스타크가 헐크 때문에 놓친 테서렉트를 가지고 순간이동한 2012년 뉴욕사태의 '로키'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벤져스>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본래 로키는 얌전히 로키의 손에 이끌려 테서렉트와 함께 아스가르드로 송환되어야만 했다.

때문에 <어벤져스:엔드게임>에서의 로키는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타임라인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낸 것인데, 이 시점에서 기존의 시간선과 다른 새로운 시간선이 생겨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시간선을 없애 다른 시간선들과 부딪히거나 얽힐 일이 없도록 관리하는 단체가 바로 'TVA' (시간변동관리국)라는 단체다.

로키 역시 TVA로 끌려가 심판을 받게 된다.

한편, 누군가가 상습적으로 예정되어 있는 사건을 계속해서 방해하고, 새로운 타임라인을 만든다.

TVA 전문요원인 모비우스는 상습법을 잡기 위해 로키를 이용하기로 한다.

새로운 시간선을 만들어내는 상습범을 잡기 위해 모비우스는 로키에게 손을 내민다. 사진 디즈니 플러스 코리아 공식 유튜브 캡처

로키는 모비우스와 함께 상습범을 잡으려 노력하고, 드디어 그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상습범은 바로 또 다른 세계의 자신인 여자 로키, '실비'였다.

로키는 실비와 함께하며 TVA가 숨기고 있는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되는데…

필자는 <로키> 속 두 캐릭터를 보며 두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 로키에게서 연상된 '나르키소스'

TVA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로키는 또 다른 자신인 실비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멸망이 다가온 순간 겸허히 마지막을 받아들이려하는 로키와 실비. 사진 디즈니 플러스 코리아 공식 유튜브 캡처

저주에 걸려 한평생 연못 속 자신만을 사랑하게 된 나르키소스처럼 말이다.

모비우스 역시 실비를 사랑하게 된 로키를 보고 나르키소스냐 묻는다.

로키 역시 사실은 다른 시공간을 살고 있는, 닿을 수 없는 존재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로키와 나르키소스가 다른 점이 있다.

로키는 나르키소스처럼 저주에 빠진 것도, 자신과 꼭 닮은 완벽한 외모만을 보고 사랑에 빠진 것도 아니었다.

로키는 자신이 며칠 전까지 누렸던 어머니 프리가의 사랑을 누리지 못한 채 어린시절 TVA로 끌려온 실비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배우지 않고도 탁월하게 초능력을 발휘하는 실비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과 닮은 듯 다른 실비의 삶을 안타까워하고, 공감하며 천천히 그녀 존재 자체를 사랑하게 됐다.

외면만을 사랑했고 그로 인해 저주를 받아 한평생 자신의 외모만을 사랑한 나르키소스와 달리, 로키는 실비의 내면을 바라보고, 그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사랑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로키는 나르키소스와는 다른 '로키'만의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실비에게서 연상된 '라플라스의 마녀'

TVA가 결정한 삶이 아닌, 자유의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싶은 실비는 TVA를 관리하는 타임키퍼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타임키퍼들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시간선이 어긋난 행동을 한 자가 있으면 그 자를 데려와 '변종'으로 규정하고, 그 시간대를 다시 리셋해 원래 자신들이 결정한 시간선으로 되돌려 놓는다.

타임키퍼의 모습은 마치 '라플라스의 악마'를 떠올리게 한다.

라플라스의 악마는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라플라스가 제시한 이론에 등장하는 개념으로, '우주의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뉴턴의 운동법칙을 이용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해명하고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다'에서 언급되는 존재다.

정해진 타임라인 속 결정된 행동을 하지 않는 존재를 없애버리는 타임키퍼들은 어쩌면 라플라스의 악마보다도 더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로키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실비. 사진 디즈니 플러스 코리아 공식 유튜브 캡처

실비는 타임키퍼를 원망하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다.

라플라스의 악마를 소재로 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라플라스 마녀>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세상은 몇몇 천재들이나 당신 같은 미친 인간들로만 움직여지는 게 아니야.
얼핏 보기에 아무 재능도 없고 가치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중요한 구성 요소야."

<라플라스의 마녀> 속 대사를 보며 타임키퍼가 만든 결정론적 삶을 부정하고, 자유의지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고 싶었던 실비가 떠오른 건 왜일까.

마블이 꾸준히 다뤄온 멀티버스를 가능케 한 양자역학은 뉴턴의 결정론에 대한 반론으로 제시된 개념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실비가 타임키퍼 그 이상의 존재를 발견했을 때 어떠한 행동을 할 지, <로키>의 마무리가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있다.

<로키>의 주축이 되는 두 캐릭터 로키와 실비는 나르키소스, 라플라스의 악마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독보적인 이들만의 캐릭터로 대담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마블의 새로운 페이지를 여는 드라마 <로키>는 6부작으로, 오직 디즈니 플러스에서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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