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 희진 OTT 평론가] 가을의 진입에 서 있으니 시(詩)와 관련한 영화 두 편을 살펴보고자 한다.
시를 다룬다고 해서 마냥 지루하거나 잔잔하지만은 않은 <나의 작은 시인에게>와 일상을 이루는 특별함을 돌아보게 만드는 <패터슨>이 그 두 편이다.
두 영화 속 주인공 모두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시를 통해 예술성을 한껏 드러낸다.
비슷한 듯하지만 다른 이야기를 펼쳐낸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넷플릭스에서, <패터슨>은 웨이브와 티빙에서 각각 시청할 수 있다.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시(詩)'네마로 그 정취를 한층 더해보면 어떨까.
◆ 채우려 할수록 비워지는 <나의 작은 시인에게>
아직 다섯 살이지만 시 짓기에 있어서만큼은 천재 같은 면모를 보여주는 지미(파커 세바크 분)는 <나의 작은 시인에게>의 주인공 리사(매기 질렌할 분)가 애정을 보이지만 동시에 질투 혹은 집착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다.
리사는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보람되지만 예상 가능한 일이기에 그녀는 일상에 따분함을 느낀 지 오래다.
그 따분함을 날려주는 것은 다름 아닌 시 수업이다.
시 짓기를 통해 리사는 본인의 예술적인 욕망을 실현해보려 노력하지만 좀처럼 잘되지 않는다.
같은 수업 수강생은 매서운 비평으로 리사의 재능 부족을 확인 사살하기도 한다.
그러던 그녀에게 지미가 나타난다.
지미의 시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지미는 고작 다섯 살짜리 유치원생이지만 시적 영감으로 가득 찬 영재다.
그는 시가 떠오를 때면 혼잣말로 시를 읊조린다.
그 시를 리사는 받아 적기 시작하고, 시 수업에서 발표한다.
그동안 한 번도 칭찬을 받지 못했던 리사는 처음으로 강사와 수강생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리사는 이후로도 계속해서 지미의 시를 받아 적으며 지미의 재능을 더욱 끌어내는 데 집중한다.
낮잠 자는 시간에 지미를 몰래 데려가 더 좋은 시를 떠오르게 하기 위해선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도 하고, 지미의 보모에게 그가 집에서 시를 내뱉을 때 그 시를 받아 적어달라고 애원한다거나, 지미 삼촌의 일터와 아버지의 가게를 직접 찾아가 아이의 재능이 얼마나 귀하고 또 얼마나 금방 없어질 것인지에 대하여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현실과 타협돼 금방 자취를 감출 다섯 살 아이의 재능이 아까운 것은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리사의 아들은 현실을 생각해 군대에 갈 것이라며 부모에게 으름장을 놓고, 딸은 '예술적인 척'하지 말라며 그녀의 진심을 조롱하는가 하면, 남편은 그녀의 속도 헤아리지 못하는 도움 안 되는 존재일 뿐이다.
리사를 둘러싸고 있는 건 일터에서나 집에서나 탁한 현실밖에 없다.
그러니 그 귀한 재능에 대한 애끓음은 그녀 자신이 닮고 싶기 때문도 있겠지만, 정말 소중한 재능이기에 그녀의 행동은 어느 정도 마땅하다 여겨진다.
그러나 지미에 대한 리사의 우려와 애정, 동경과 질투는 어느 순간 선을 넘는데, 지미를 납치하기 시작한 순간부터다.
극의 후반부인 이 시퀀스 이후 장르는 점진적 스릴러로 변모한다.
잔잔하게 흘러가던 극에 변곡점을 부여하는가 싶더니 영화는 가장 정점에서 결론을 맺는다.
지미가 읊던 시, 그 속에 계속해서 등장하던 '애나'는 리사가 아니었지만, 시의 내용은 지미가 리사에게 보내는 편지에 다름 아니다.
동경 섞인 애정을 지미는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어긋난 애정이라는 것 또한.
지미의 시는 죽음과 삶, 미와 추,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을 아우른다.
돌이켜보면 지미의 시를 가장 열심히 받아 적었던 리사가 그 시를 가장 몰랐던 것이 아닐까.
그의 시가 가장 필요했던 사람은 리사였는데 말이다.
꼬마의 천부적 재능이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에 동참하고 싶다면 <나의 작은 시인에게>를 보길 권한다.
◆ 예술을 일상으로, 일상을 예술로 채우는 <패터슨>
<나의 작은 시인에게>의 리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예술적 욕구를 실현하는 인물이 있다.
<패터슨>의 주인공 패터슨(아담 드라이버 분)이다.
<패터슨>의 예술 혹은 시는 일상을 유영한다.
불안이나 긴장감 같은 것 역시 <패터슨>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패터슨의 직업은 버스 기사다.
매일 같은 코스를 운전하는 패터슨의 일상은 어쩌면 리사의 일상보다 더 지루해 보인다.
아침 6:30에 시작해 일이 끝나면 같은 시간에 퇴근해 아내와 저녁을 먹은 후 반려견 마빈과 산책을 한다.
별다를 것 없이 매번 반복되는 패터슨의 일상을 다르게 만들어주는 것은 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같은 구역, 같은 코스를 운전하지만, 패터슨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매번 다르다.
길을 건너는 노인, 운전석 뒷자리에 자리하는 매번 다른 손님, 그들이 나누는 매번 다른 대화, 매번 다르게 비추는 빛 등.
그리고 그것들을 보는 패턴슨은 매번 다른 시를 짓는다.
반복되는 세계를 유영하던 모든 것은 패터슨의 눈과 귀를 통해 시가 되고, 예술이 된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의 지미의 시가 허를 찌르거나 뼈가 있는 시였다면, <패터슨>의 패터슨이 읊는 시는 평범함이 주는 울림이 있다.
패터슨의 일상과 시를 따라가다 보면 나의 일상과 그 평범함에 집중하게 된다.
어쩌면 특별함은 그 안에 있을지 모른다.
일상을 예술로, 예술을 일상으로 채워주는 영화 <패터슨> 가을이 가기 전 감상해보시길.
<나의 작은 시인에게> ▶ 바로가기(넷플릭스)
<패터슨> ▶ 바로가기(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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