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박시원 OTT 평론가] 살면서 우린 다양한 이별을 맞이한다.
그중 유일하게 누구도 손 쓸 수 없는 종류가 하나 있다.
죽음.
글자 자체만으로 위압감을 가지는 가장 큰 단어.
쉽게 접근할 수도 다룰 수도 없는 단어를 두 영화는 어떻게 풀어냈는지 다뤄보고자 한다.
◆ 그럼에도 살아가는 데 힘을 주는 건, <할아버지의 캔버스>
소중한 사람을 잃음과 동시에 열정도 함께 사라진 할아버지.
힘없이 휠체어에 앉은 모습은 몸이 불편하다는 명분 외에도 걸을 의지 자체를 잃은 듯한 상징성을 띤다.
그런 그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건 다름 아닌 손녀딸.
천진한 모습으로 뛰어와 할아버지를 안아주는 모습은 무성영화임에도 소리가 들리는 듯 생기가 넘친다.
손녀딸의 그림을 보며 잠시 고민하는 듯했지만 결국 이젤을 내동댕이치며 어딘가 모를 분노와 슬픔을 사그라뜨린다.
그러나 손녀딸은 그에게 생기를 전해주는 천사가 맞았다.
결국 그의 숨겨두었던 그림을 찾아 꺼내 손으로 어루만지게 하는 덕에 할아버지는 사별한 할머니를 마음으로 다시 만나 붓을 다시 잡을 힘을 얻는다.
할아버지의 뮤즈는 할머니, 즉 우리의 인생에 있어 뮤즈는 결국 사랑, 이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은 가족의 사랑과 지지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붓의 끝이 캔버스에 닿는 순간이 한껏 클로즈업된 마지막은 큰 의미 부여가 되는 장면임에도 단 몇 초 만에 쓱 지나간다.
어쩌면 이는 우리가 사랑이라는 원동력과 가족의 지지만 있다면 큰일도 별거 아닌 일처럼 해낼 수 있다는 상징성을 띠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사고이기에,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슬픔과 각자의 감정에 경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을 잃는 슬픔은 세상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전엔 자식을 잃은 부모를 가리키는 말이 없다.
이 영화는 그러한 부모가 이끌어간다.
드넓은 식탁의 양 끝에 앉아 서로 말없이 음식을 깨작거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분명히 누군가의 부재가 보인다.
이는 다름 아닌 그들의 딸.
평범한 가정, 평범한 생활을 이어오던 그들에게 갑자기 들이닥친 사고.
무성영화임에도 오직 총기의 방아쇠를 당길 때만이 나는 '탕!' 소리에, 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으로 딸을 잃은 것이 아닐까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12분의 상영시간 중 그 장면 하나만으로 이 영화는 미국의 사회 문제 중 하나인 총기 난사 사고를 꼬집는다.
사고의 비극을 극대화하는 건 희생자의 마지막 연락이다.
딸이 남긴 마지막 연락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사랑해요.'가 화면에 뜨고 남겨진 자의 슬픔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죽음, 단편 영화 외에 이 두 영화가 갖는 또 다른 공통점은 가족의 사랑에 있다.
가족의 빈자리는 결국 어떤 것도 아닌 가족의 사랑만이 채워줄 수 있으며, 가족은 슬픔을 덜어내는 것보다 함께 짊어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두 작품 모두 무성영화이기 때문에 오히려 영화가 가진 메시지와 화면이 가지는 전달력에만 더 집중할 수 있다.
<할아버지의 캔버스>와 제93회 아카데미상 단편 애니메이션 상에 빛나는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으로 넷플릭스에서 바로 볼 수 있다.
넷플릭스 <할아버지의 캔버스> ▶ 바로가기
넷플릭스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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