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해양의 날] 바닷속 깊은 곳과 사람 마음속 깊은 곳은 통한다네, <심연(Abyss)>

넷플릭스, <심연 (Abyss)>

희진 승인 2021.06.07 15:26 의견 0
영화 <심연(Abyss)> 공식 포스터. 사진 네이버 영화


[OTT뉴스=희진 OTT 1기 리뷰어] 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미지의 세계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심연>에는 미지의 세상 바다에 대한 인간의 따뜻한 시선이 어려있다.

미 핵잠수함 USS 몬타나가 모종의 이유로 바다 깊숙이 침몰한다.

영화 제작연도인 1989년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종료된 해다.

영화는 냉전 종료 직전 개봉했으니, 미국 핵잠수함 몬타나를 침몰시킨 괴물체가 소련의 짓이라는 의심은 합리적이다.

명목상으론 생존자를 구하기 위함이지만 사실상 핵잠수함의 안보적 중요성 때문에 미해군은 민간석유시추선 딥코어와의 연합 수색전을 제안한다.

돈을 세 배로 준다는 해군의 제안을 거절할 리가 있나. 석유시추선 딥코어의 선장인 버드 그리드먼(에드 해리스)과 커피(마이클 빈) 중위가 수색에 참여하기로 한다.

한편, 린지(매리 스튜어트 매스트란토니아)는 해양전문가로 수색에 참여하는데, 린지와 버드는 사실 결혼한 사이다.

만나기만 하면 툴툴대며 싸우는 걸 보니 이 수색 프로젝트에 둘 관계의 미래가 달려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민간과 군대의 위험한 수색전이 시작되고, 한 잠수함 안에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 여러 번 발생한다.

"당신이 깊은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본다"라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영화는 시작되고, 신비롭고 미스터리한 존재인 심연의 세계는 인간의 심연과도 맞닿아 있다는 단순한 휴먼 드라마의 메시지로 영화는 끝이 난다.

바다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영화 중 <심연>은 깊은 바다의 신비로움과 두려움을 가장 인간적으로 드러낸 영화가 아닐까.

21세기에 봐도 손색없는 CG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인간적 메시지는 6월 8일 세계 해양의 날에 한번 다시 볼만하다.

<심연>은 넷플릭스에서 감상가능하다.

진부한 상상력의 매력

깊은 바다에는 바다 외계인이 살고 있을 거라는 상상력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다소 진부한 설정에도 영화를 보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딥코어의 수색 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바닷속 정체불명의 외계인도 본격적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민간과 군대의 불협화음은 육지에서나 바다에서나 마찬가지인가보다.

시작부터 악의 기운을 뿜어내던 커피 중위가 예상대로 말썽을 일으키고, 매뉴얼을 숙지하지 않은 채로 행동하다 딥코어 선원 전체를 위험에 빠트린다.

이에 린지가 나서고, 그녀는 빛을 내는 외계 생명체와 만난다.

외계 생명체는 이후 다시 한번 존재를 드러내지만 인간들의 불협화음과 악의 기운을 모두 감지했다는 듯, 어쩌면 상처받았다는 듯 자취를 감춘다.

무해하고 신비로운 정체불명의 발광체가 불현듯 나타나 또 불현듯 사라지니 앞으로 어떤 형태와 아우라로 등장할지 기대가 된다.

같은 잠수함에 타고 작전을 수행하는 버드 그리드먼(에드 해리스)과 린지(매리 스튜어트 매스트란토니아). 사진 네이버 영화


커피 중위가 벌여놓은 일을 처리하는 동안 커피 중위는 수압을 견디지 못한 잠수정 안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버드와 린지는 그렇게 투덕대던 사이였지만 최후의 순간, 같은 잠수정 안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함께 극복해야 한다.

숨을 거둔 줄 알았던 린지, 몇 번의 심장제새동기와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음에도 살아나지 않아 그녀를 포기한 동료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국 그녀를 살려낸 버드.

린지가 깨어나던 순간은 동료들의 전우애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한테서만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최고조로 발산되는,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린지와 버드의 부부 사이가 어떻게 회복되고 어떤 결말을 마주할지 예측해보는 것 역시 진부하지만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다.

미스터리한 심연에서 모종의 사건을 통해 커플이 서로의 마음을 재확인한다는 설정은 3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짜릿해서 흥미롭다.

바다 속 심연과 인간의 심연

린지가 가까스로 살아난 뒤, 버드는 바다 깊숙한 곳에 있는 폭탄을 제거하기 위해 내려가기로 결심한다.

200m, 500m, 1,200m, 급기야 3,000m에 이르는 깊이로 계속 추락하는 버드.

너무 깊이 내려가는 건 아닐까 걱정하지만 폭발물을 안전하게 해체한 버드의 소식을 듣고 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버드는 이미 너무 깊이 내려와 다시 팀원에게 올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체념한다.

사실 버드는 이미 상황을 예견했다.

자기 한 몸을 불사하고도 팀원과 해군, 나라와 바다까지 살리려는 선택에 감동한 것은 관객뿐 아니라 바다와 바닷속 외계 생명체도 마찬가지다.

린지를 포함한 모든 동료들이 탄식을 내뱉고 슬픔에 잠겨있을 때 영화의 엔딩 시퀀스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정체불명의 발광체 혹은 외계 생명체와 조우한 린지. 사진 왓챠 갤러리


진부한 이야기 전개에 맞게 결말 또한 거칠고 평범하다.

인간의 선한 의도를 알아본 외계 생명체가 인간을 보우하는 선택을 내린다는 놀랍지 않은 이야기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우리가 심연을 바라보고 있을 때 심연 또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라는 메시지처럼, 두렵고 미스터리했던 바다도 인간만큼이나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를 바라봤다는 사실이 어쩐지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의,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냉전 시대에 인간의 시선을 벗어나 경종을 울린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신비롭지만 두려운 바다 깊은 곳이 사실 인간의 깊은 마음속처럼 순정한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여러모로 타락한 인간의 마음과 오염된 바다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로 읽힌다.

마음을 해사하게 하는 일과 바다를 맑게 하는 일은 맞닿아있다.

환경의 날을 맞아 <심연>을 보며 바다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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