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에 보면 좋은 영화 ⑤ - 남겨진 가족의 슬픔을 다룬 애니메이션,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미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애니메이터 노영란 씨가 제작 맡아
-총기 사고로 숨진 딸과 남겨진 가족의 슬픔 다뤄
- 넷플릭스,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손민지 승인 2021.05.13 10:16 의견 0
영화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은 총기 난사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상실감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사진 넷플릭스


[OTT뉴스=손민지 OTT 1기 리뷰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부모의 심장을 꺼내 간 아들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흙투성이가 된 부모의 심장은 이렇게 말한다.

"얘야...많이 다치지 않았니?"

고등학교 국어 시간, 맹목적인 부모의 사랑에 대해 말하는 <어느 날 심장이 말했다>를 배우며 눈물을 찔끔 흘린 적이 있다.

2020년 개봉한 넷플릭스의 단편 애니메이션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을 보는 동안에도 그랬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12분, 유튜브 영상 하나 길이이지만 영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슴 한구석이 저렸다.

평범해 보이는 부부는 <개그콘서트>의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너처럼 멀찍이 떨어져 말 한마디 없이 식사를 한다. 그 둘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어둡다.

아내가 남편에게 무언가 말할 요량으로 고개를 들자 남편은 자리에서 일어나버린다.

부부의 갈등을 이야기하는 작품일까. 궁금증이 일어 눈을 뗄 수 없다.

이후 아내는 세탁기에서 누군가의 옷을 보더니 눈물을 흘린다.

이유 모를 장면들이 계속 이어져 답답했지만 머지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됐고, 목구멍이 시큰해졌다.

잔잔하게 흐르던 음악은 딸이 학교에 도착해서 조용해진다.

"탕, 탕탕!". 허공을 찌르듯 퍼지는 총소리와 사이렌 소리, 학생들의 비명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겨도 사랑해요"

딸이 죽기 전 부모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문자는 부모의 심장을 파고든다.

극 중 딸은 사고 전 부모에게 마지막 문자를 남긴다. 사진 넷플릭스


부부는 사랑하는 딸을 총기 난사 사건으로 잃었다.

영화는 2018년 미국 플로리다 주의 파크랜드 더글러스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은 비교적 빈번히 일어나는 사회적 사건이지만 뉴스로 전해 듣기만 했지 한 번도 남겨진 가족의 슬픔에 대해 생각해본 일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고가 나던 날 딸의 등교를 막으려는 부모의 그림자가 처절하게 느껴졌다. 꼭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당신은 김치 하나에 밥을 먹으면서도 귀가한 자식에게는 고기반찬을 해 먹여야 하는 부모의 마음,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기면서도 아들이 아플까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 떠올라 앞서 꾸역꾸역 참아온 굵은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한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애니메이터 노영란 씨가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맡았다. 사진 넷플릭스


영화는 이야기가 슬픔과 공허함에서 그치도록 두지는 않는다.

딸의 영혼은 어떻게든 부모의 영혼을 닿게 하고, 서로가 곁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

부부가 끌어안고 눈물을 흘릴 때 배경은 노랑이다. 딸과 여행하며 마주한 석양의 금빛과 같다.

해외에서는 이 영화로 '눈물 참기 챌린지'가 유행할 정도였다는데, 짧은 시간 선사하는 흡입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장면이 흐린 수채화로 표현된 것이 딸을 잃은 부모의 공허함을 부각하기 위함이 아닐까 추측도 들었다.

결국 부부가 초반 식탁에서 보여준 거리는 물리적인 거리가 아닌, 상실감을 표현하는 비유적인 묘사였다.

현실에서 부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는 서로의 거리를 좁혀 슬픔을 함께 이겨내고 싶은 속마음과 달리 실제로는 체념한 상태의 부부 모습을 대비해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극 중 딸의 물품을 제외하고 모든 것은 무채색으로 표현된다. 이는 죽은 것과 다름 없는 부모의 처절한 마음을 표현한다. 사진 넷플릭스


옷과 가방 등 딸과 관련된 사물에는 채색이 돼 있고, 그 외의 것은 무채색으로 색칠된 것도 짚어볼 부분이다.

부부의 삶에 생기를 불어 넣어준 딸이 세상을 떠나면서 살 의미를 잃은 부모의 마음을 상징하는 것인데,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슬펐다.

멀리는 '5.18 민주화운동',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 등 여러 역사적인 사건으로 우리는 상실의 아픔을 겪어왔고 공감해왔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을 보면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이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그리운 이를 추억해보는 건 어떨까.

<혹시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은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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