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전자가 디저트를 마무리하는 모습, 넷플릭스 공식 예고편 출처


[OTT뉴스=장혜연 OTT 1기 리뷰어] 불현듯 '고오-급' 디저트가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슈퍼에서 산 천 원짜리 쌍쌍바, 탕비실의 맥심 커피 믹스나 가방 속에서 굴러다니던 새콤달콤이 아니라, 그 비싸다는 망고가 켜켜이 올라간 망고 빙수와 간에 기별도 안 갈 것 같은 손톱만 한 크기지만 금박이 둘러진 마카롱, 도산공원 핫플레이스나 가야 먹을 수 있는 힙한 케이크가 먹고 싶다.

그 디저트를 먹는 순간만큼은, 매일 반복되는 '엑스트라 1'의 삶에서 벗어나 '주연 배우'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현실은 결국 냉장고 속의 요구르트와 초코파이다.

으리으리한 호텔 베이커리에 가서 전국 5대 빵집에 가서 디저트를 살 시간도, 돈도 없지만, 삶의 달콤함만은 잊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리얼리티가 있다.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선택! 줌보의 디저트>다.

10명의 일반인 도전자들이 10번의 경쟁을 하는 동안 10만 달러를 얻을 우승자의 자리를 노린다.

도전자들은 쇼 호스트인 줌보와 레이첼이 제시하는 창의적인 주제에 맞는, 아주 완벽한 디저트를 주어진 시간 내에 만들어내야 한다.

매 경쟁마다 하위 2명의 도전자는 아드리아노 줌보의 전설적인 디저트를 재현하는 미션을 거치게 되고, 이 미션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도전자는 탈락하게 되는 시스템이다.

뻔하고 잔인한 '오디션' 리얼리티지만, 자꾸만 시선을 빼앗는 매력이 있다.

<선택! 줌보의 디저트> 디저트 공장 내부. 사진 넷플릭스 공식 예고편


1. 마녀의 과자 집이 있다면 여길까

헨젤과 그레텔이 마녀의 과자 집에 홀린 이유를 알겠다.

도전자들이 디저트를 만드는 디저트 공장은 화려한 막대 사탕, 톡톡 튀는 색감의 컵케이크, 형형색색의 열대과일로 넘쳐난다.

디저트 공장은 물론, 도전자들이 만드는 디저트들도 상상을 초월한다. 고수를 넣어 맛의 균형을 잡았다는 아이스크림,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가 얹어진 케이크, 서랍이 열리는 책상 모양의 초콜릿, 반짝이를 쏟아부은 빵…. 한순간도 지루하지가 않다.

'흰 바탕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니라' 하며 매일 똑같은 노트북 화면만 바라보는 '소시민'에게 이건 엄청난 시각적ㆍ미각적 자극이다.

거무죽죽한 빵만 먹던 헨젤과 그레텔이 사탕으로 만든 창문이 있는 마녀네 집을 지나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이런 것도 만들 수가 있다고?', '이런 걸 디저트에 넣는다고?' 하면서 보는 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생동감 있고 활력 넘치는 순간들이 일상에 스며든다.

2. 리얼리티에서 '나' 찾기

'이것만 보내고 다시는 문자투표 안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꼭 매번 오디션 프로그램을 챙겨 보는 사람들의 심리를 알겠다.

내가 응원하는 '원픽'이 이번 미션에서 떨어지면 왠지 나도 실패하는 것 같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가족을 끔찍하게 사랑하며, 드디어 꿈을 찾은 도전자에게 괜히 감정이입이 된다.

현실적인 제약에 갇혀서 잊고 말았던 내 꿈도 슬금슬금 떠오른다. 제빵의 'ㅈ'도 모르면서 이 프로그램에 이입하는 스스로가 우습기도 하지만, 무명 가수가 트로트 퀸이 되는 걸 보며 만족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겠다 싶다.

지금은 조그만 화면으로 디저트 쇼를 보고 있어도, 나도 아주 조금은 특별한 사람이었음을 새삼 다시 느낀다.

<선택! 줌보의 디저트> 중 한 도전자가 케이크를 제작하는 모습. 사진 넷플릭스 공식 예고편


오늘도 '지나가는 사람 3'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당신에게 가장 먼저 추천한다.

호텔에서 산 고오-급 디저트를 손에 들고 퇴근하고 싶었지만, 편의점에서 고심해서 고른 신상품 젤리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현실에서 조금 벗어나 보자.

전국의 빵순이와 빵돌이, 돈이 없어 아메리카노만 주문하는 사람, 다 됐고 지금 당장 마카롱을 한입 가득 베어 물고 싶은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3. 마지막 말

요리 소재 프로그램 치고는 밤에 봐도 괜찮다.

당장 '배달의 민족'을 켜서 주문할 수 없는 성격의 요리이거니와, 디저트에 들어가는 설탕과 색소의 양을 보면 그렇게 먹고 싶어지지도 않는다.

야식 유발 리얼리티는 아니니 안심하고 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