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를 통해 배우는 생(生)의 공유와 공존 - <나의 문어 선생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이희영 승인 2021.04.23 07:00 의견 0
<나의 문어 선생님> 포스터. 사진 넷플릭스


[OTT뉴스=이희영 OTT 1기 리뷰어] 삶에 지친 한 영화감독이 있다. 잠시 멈춰 숨을 돌리고자 그는 매일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또 다른 세상을 누빈다.

어느 날, 그 안에서 그는 낯선 모습의 생명체와 조우한다. 온갖 소라와 조개껍데기에 둘러싸여 있는 덩어리. 몸을 숨기고 있던 그 정체는 바로 문어 한 마리였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2020)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절로 시선이 향하는 제목에 끌려 시청한 작품은 생각한 것보다 더욱 깊고 또 인상적이었다.

작품을 감상할 때 참고할 만한 지점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첫 번째는 문어에 대한 놀라움이다.

사실 문어라 하면 식용, 또는 영화 등에서 흔히 묘사되는 징그러운 이미지가 떠오르는 게 먼저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러한 문어를 한 사람의 친구이자 선생으로 그려냈다.

1년 동안 크레이그가 지켜본 한 문어의 생애는 그러한 단편적인 이미지로 설명할 수 없었다.

실제 문어의 지능은 굉장히 높은 편이다. 강아지나 고양이의 지능과 비슷하며, 하급 영장류 정도의 수준까지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작품 속 문어는 깜짝 놀랄 만큼 똑똑한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처음 크레이그와 만났을 때와 같은 조개나 해조류를 활용한 위장 전략뿐만이 아니다.

문어는 크레이그를 이용해 바다가재를 사냥하고, 빨판으로 자신의 먹이를 노리는 불가사리를 쫓아낸다.

파자마 상어를 피해 물 밖의 바위 위로 올라가고, 심지어는 상어의 등 위로 올라가 우위를 점하기까지 한다.

또한 문어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 주기도 한다.

작품 중반부 문어는 상어의 습격으로 한쪽 팔이 잘리는데, 놀랍게도 그 부위에서 새로운 팔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후 알을 낳은 문어는 굴에서 꼼짝 않고 알을 지키며 점점 쇠약해지다, 알의 부화와 동시에 짧은 생을 마감한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낸 문어의 이러한 모습은 생(生)의 목표를 끈질기게 추구하려는 노력으로 보였다.

그 모습은 새삼스럽게 감동스럽기도, 또 슬프기도 했다.

소라와 조개껍데기로 위장한 문어. 사진 넷플릭스 유튜브 캡처


두 번째는 크레이그가 문어와 교감하는 장면이 주는 울림이다.

크레이그가 매일같이 문어를 찾아간 지 26일째 되는 날, 앞으로 내민 그의 손가락과 손등을 문어는 팔을 길게 뻗어 감싼다.

그가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확신과 안심으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행동이다.

'이 자는 안전하다'는 확신은 쉽게 얻을 수 없다. 특히 매일매일이 생존을 위한 분투의 연속인 야생에서는 더욱 그렇다.

인간의 눈으로 동물의 본능적인 행동에 자의적인 해석을 가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조금의 위험이라도 감지되는 순간 곧바로 도망치는 문어가 그에게 먼저 다가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후 크레이그와 문어가 함께 헤엄치고, 문어가 그의 손 위에 올라타며, 후반부에는 두 주인공이 마치 안고 있는 듯 서로 밀착해 있는 모습을 보면 찡한 감동마저 차오른다.

크레이그와 문어의 교감을 표현하는 장치로 화면에는 '눈'이 자주 등장한다.

사람과 문어, 그리고 다양한 물고기의 눈은 화면 한가득 클로즈업된다.

이러한 '눈'은 서로를 향한 그들의 관심과 각자가 품고 있는 강한 생명력을 담고 있다.

크레이그와 문어. 사진 넷플릭스 유튜브 캡처


마지막으로는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경외다.

크레이그는 문어와의 1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회고한다.

그는 죽음을 생각하고 가족과 자식을 걱정하게 되었으며, 덕분에 야생 동물을 포함한 다른 존재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바다 속의 크고 작은 다양한 생명체는 각자의 삶과 이야기를 담고 있고, 인간을 포함한 이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자연의 일원으로서 가치가 있다.

크레이그는 문어로부터 이런 깨달음을 얻고, 문어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는 야생 생물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지킬 필요성을 느끼고, 문어가 죽은 후로도 여전히 바다를 누비며 생물들과 교감하고 깊은 관계를 맺었다.

문어가 죽은 지 몇 개월이 지난 후, 크레이그의 아들 톰은 겨우 생존에 성공한 새끼 문어를 발견한다.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환 아래 새로운 생명과 그들의 교감은 계속될 것이다.

현재 크레이그는 '시 체인지 프로젝트(Sea Change Project)'를 공동 설립하여 잠수부들과 함께 다시마 숲의 평생 보호를 위해 힘쓴다고 한다.

생명을 향한 애정과 자연의 보전을 그린 이 작품은 2021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다큐멘터리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문어 '선생'과 친분을 쌓아 보고 싶다면, 아름다운 바다에서의 멋지고도 감동적인 경험을 함께하고 싶다면 넷플릭스에서 이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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