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에 찬 눈빛으로 보르고프와 최종 결전을 치르는 엘리자베스 하먼. 사진 넷플릭스 유튜브 캡처

[OTT뉴스=황수현 OTT 1기 리뷰어]

퀸의 어린 시절

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된 9세 아이 엘리자베스 하먼. 그녀는 어느 한 보육원으로 보내진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던 중 칠판 지우개를 털고 오라는 선생님의 지시에 지하실로 내려간 하먼은, 본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국면을 맞이한다.

지하실에서 홀로 체스를 두고 있던 보육원 관리인 윌리엄 샤이벌. 베스(엘리자베스 하먼)는 자신도 모르게 체스에 끌리게 되고 수업 중 몰래 지하실로 내려가 샤이벌에게 체스를 배운다.

샤이벌은 베스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고교 체스 감독을 데려와 베스의 능력을 시험한다.

고교생들과 다면기를 벌여 모두를 이기고 돌아온 베스. 그러나 보육원에서 일전에 배급했던 신경안정제에 중독돼 버린 베스는 안정제를 훔쳐 먹으려다 걸리게 되고 그 벌로 체스를 두지 못하게 된다.

퀸의 성장

6년이 흐르고 베스는 어느 한 부부에게 입양된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체스를 하고 싶어 했던 베스.

우연히 본 잡지에서 지역 토너먼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시합에 나가려 하지만 그녀에겐 돈이 없다.

결국 그녀는 샤이벌에게 돈을 빌리고 토너먼트에 나가 1등을 한다.

지역 챔피언이 된 베스는 타지역 토너먼트, US 오픈 대회에 참가하고 높은 기량을 선보이며 언론에도 비친다.

그러나 US 오픈 챔피언십 결승에서 디펜딩 챔피언 베니 와츠에게 패하며 공동 챔피언에 오른다.

무승부만 해도 단독 챔피언이 될 수 있었지만 이겨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패배한 것이다.

퀸의 역경

미국 챔피언 자리에 올랐지만, 세계 챔피언을 목표로 하는 베스에게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바로 세계 챔피언이자 영화 속 최종 빌런인 바실리 보르고프.

베스는 멕시코 시티에서 열린 대회와 파리에서 열린 대회 모두 결승에서 보르고프에게 패배한다.

심지어 멕시코 시티에서 열린 대회에서 양어머니 앨마 휘틀리가 죽음을 맞이하고 홀로 남겨진 베스는 외로움과 좌절 속에서 술과 약물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퀸의 극복

얼마 후 모스크바에서 대회가 열린다. 하지만 술과 약물로 세월을 보내던 베스는 대회에 나갈 의욕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그때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함께 지낸 친구 졸린이 샤이벌의 죽음을 알리러 찾아온다.

샤이벌의 장례를 치르며 약 10년 만에 찾아간 보육원 지하실. 그곳에는 베스의 이야기로 가득한 신문지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베스가 떠나고 뒤에서 묵묵히 응원했던 샤이벌을 생각하며 오열하는 베스. 그리고 옆에서 다독여주며 모스크바 경비까지 해결해주는 졸린.

베스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일어선다.

퀸의 탄생

모스크바에 도착한 베스. 소련 선수들을 차례차례 물리칠 때마다 밖에서 몰려드는 인파가 늘어갔다. 남자들이 판치는 곳에서 한 여성이 그 판을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최종 결승에 오른 보르고프와 베스. 베스는 미국에 있는 친구들의 도움과 약물을 끊은 본인의 의지로 승리한다. 바로 세계 챔피언 퀸의 탄생이다.

신경안정제인 초록색 알약을 먹으며 천장에 체스판을 그리는 엘리자베스 하먼. 유튜브 Netflix Korea 캡처


# 초록색 알약

이전 <여고추리반> 리뷰에서도 초록색 알약이 중요한 소재로 나온 만큼 이번 <퀸스 갬빗>에서도 초록색 알약은 중요한 소재거리다.

보육원에서 아이들에게 나눠주던 초록색 알약의 정체는 바로 신경안정제다.

이 영화는 1950,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 시대에 많은 여성이 안정제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이 알약에 마약 성분이 있어 중독된다는 것이다. 9세 어린 소녀가 중독될 정도였으니 그 중독성은 어마어마하다.

베스는 체스의 수를 천장에 체스판을 그려가며 복기한다.

처음엔 그 초록색 알약을 먹어야 천장에 체스판이 그려지는 줄 알았는데 보르고프와의 마지막 결전에서 알약 없이도 천장에 체스판을 그렸다.

이제는 그런 알약에 의존하지 않아도 수를 읽을 수 있다는, 베스의 성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차별이 극심하던 시대

현대 사회에도 아직 차별은 존재한다. <퀸스 갬빗>은 1950년대, 60년대는 지금보다 훨씬 심하다는 걸 보여준다.

베스가 보육원에서 함께 지낸 졸린은 흑인 여성이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졸린은 어느 가정에도 입양되지 않았다.

극 중에서도 본인이 차별당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오히려 백인을 '흰둥이'라고 부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겨내고 있다.

그 당시 체스는 남자들이 하는 스포츠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베스가 처음 지역 토너먼트에 나갔을 때 대부분 베스를 무시했다.

지역 챔피언이었던 해리 벨틱은 시합에 지각하면서도 커피 하나 사 오는 여유(?)를 부리고 고르지 못한 치아를 보이며 하품을 갈긴다.

베스의 양어머니 엘마도 처음에는 사교클럽이나 여자들이 갈 만한 동아리에 가입하라고 한다. 체스는 남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베스는 그런 차별에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여자면 뭐? 남자면 뭐? 그런 차별에 주눅 들지 않았던 신념 덕분에 한 분야에서 정상에 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 악역은 없지만, 긴장감은 있었다
이 드라마는 한 소녀의 성장스토리다. 이런 스토리의 클리셰는 주인공의 어려운 어린 시절과 함께 어느 한 악역의 등장으로 고난과 역경이 찾아온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성공한다는 행복한 결말이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 악역은 존재하지 않았다. 베스와 체스를 두는 상대가 악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그저 체스를 두는 상대일 뿐이다.

시합에 지면 인정하고 축하해준다. (물론 예외도 존재한다.) 최종 빌런인 보르고프도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챔피언 자리를 베스에게 내주었다.

하지만 악역이 존재하지 않아도 배우들의 연기에, 영화의 압도된 분위기 속에 긴장감이 흘러넘친다.

체스를 두는 배우들의 표정 연기와 시계 버튼을 누르는 '딸깍' 소리, 그리고 종이에 본인의 수를 적어 두는 '사각' 소리는 체스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엄청난 긴장감이 돌았다.

여기서 베스 역할을 맡은 안냐 테일러 조이의 큰 눈이 한몫했다.

본인의 수가 읽히면 머리를 쥐어 싸매며 고민에 빠지는 눈빛, 상대의 수를 읽고 이길 거라는 확신에 찬 눈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 이 드라마의 흥행은 연출에 있다?

1950년, 60년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전체적인 구도가 미국 vs 소련, 자유주의 vs 공산주의를 방불케 한다.

극 중에서 베니는 베스에게 미국이 체스로 소련을 못 이기는 이유를 언급한다. 소련은 팀, 미국은 개인주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르고프(소련)와의 최종 결전에서 베스의 경쟁자들이었던 인물들이 한 팀을 이루면서 베스에게 도움을 주고 결국 베스(미국)가 승리한다. 개개인이 팀을 이룬 순간이다.

결말은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올라 백악관에서 대통령과의 만남, 소련 체스 클럽 방문을 다 제쳐두고 길거리에 체스를 두는 인파 속에 환호를 받으며 한 어르신과 체스를 두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마지막 대사는 "두시죠"였다. 그 어르신이 샤이벌과 겹쳐 보이며 이 부분에서 울컥했다.

베스가 9세 소녀일 때, 보육원 지하실에서 샤이벌과 체스를 두었을 때가 생각났다.

멕시코 시티 대회에서 13살의 소년과 경기를 하는 도중 베스는 그 소년에게 챔피언이 되고 나면 무엇을 할 거냐고 묻는다.

소년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베스가 던진 질문의 답이 결말에 나온 게 아닐까 싶다.

세계 챔피언이라는 자리에 심취하며 그 자리에 연연하는 것보다 그저 체스계를 떠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베스가 생각하는 챔피언 이후의 삶이 아닐까.

극 중 마지막 대회인 모스크바에서 소련 선수를 이기고 나온 엘리자베스 하먼. 유튜브 Netflix Korea 캡처


# 엘리자베스 하먼, 그녀는 노력하는 천재였다

베스는 천재였다. 그러나 노력하는 천재였다. 물론 체스에 대한 재능은 훌륭했지만,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베스는 보육원에서 잠들기 전 초록색 알약을 먹으면서 천장에 매일 체스판을 그렸다. 그러면서 샤이벌과의 체스 시합을 매일 복기했다.

그뿐만 아니라 입양이 되고 나서도 하루에 8시간 이상 체스에만 몰두하며 체스 관련 서적들을 읽었다. 오죽하면 비행기 티켓 끊는 법도 모르는 베스였다.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었을까?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은 다르다.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진로를 선택할 때 고민하는 일일 것이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은 노력의 천재가 될 수밖에 없고 본인이 잘하는 일은 베스처럼 노력하는 천재가 될 수 있다.

노력의 천재가 될 것인가, 노력하는 천재가 될 것인가. 당신의 선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