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리드>로 돌아온 이수연 작가의 <비밀의 숲>

넷플릭스·티빙: <비밀의 숲>

진보화 승인 2022.03.10 11:10 의견 0
<비밀의 숲> 포스터(사진=티빙 공식 홈페이지 캡처).

[OTT뉴스=진보화 OTT 2기 리뷰어]

이수연 작가가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그리드>로 돌아왔다.

그의 대표작은 바로 <비밀의 숲> 시리즈다.

10년의 준비 과정 동안 철저한 조사를 거쳐 집필했다는 <비밀의 숲>은 2018년 백상예술대상 극복상, 최우수 연기상, TV부문 대상을 싹쓸이하며 호평을 받았다.

필자는 <그리드>를 보기 전에 이수연 작가의 신작 마중을 위해 <비밀의 숲>을 N차 복습했다.

<비밀의 숲>은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는 드라마지만 범인을 알고 봐도 재밌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시간이 있다면 대본집을 읽는 것도 추천한다.

대본 안의 활자만으로도 화면의 긴장감과 속도감 그리고 캐릭터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한창 시리즈가 진행될 때는 그날 회차가 끝나면 바로 다시 돌려보기를 하며 범인이 누구일지 열띤 토론을 펼쳤었다.

드라마를 이해하기 위해 검경 수사권과 관련된 실제 기사들을 찾아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비밀의 숲>에 한껏 몰입해 있는 동안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이 짙은 안개가 낀 상황 속에서 어둠을 걷어내고, 사건을 해결에 나가는 주인공들과 함께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까지 <비밀의 숲>에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황시목(조승우 분) 캐릭터의 힘이 컸다.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사건을 떠올리는 황시목 (사진=티빙 공식 홈페이지 캡처).

사람들은 울고, 웃는 드라마 속 인물들의 모습에 공감하며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황시목이라는 캐릭터는 울지도 웃지도 않는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 속 그를 보며 위안을 얻고 희망을 꿈꿀 수 있었다.

황시목은 법과 도덕을 기준 삼아 뒤틀린 욕심과 잘못된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캐릭터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망설임도 흔들림도 없다.

이런 그의 성격은 바로잡아야 할 문제가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빛을 본다.

황시목은 어떤 상황에서든 냉철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해낸다.

그래서인지 거대한 불구덩이에서 싸우는 한낱 불나방일 그의 모습은 전혀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 속 상황에 몰입해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시청자들에게는 초능력이 있는 어떤 주인공보다 믿음직스러운 캐릭터다.

살인사건 조사를 하다가 갑자기 같이 일하던 여성 동료에게 반한다거나, 술을 먹고 아찔한 상황이 생긴다거나 하는 불필요한 상황을 만들지도 않는다.

가끔 동료로서 선의를 베풀다가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까칠하다.

오히려 그의 이런 태도는 러브라인이 없는 드라마에 묘한 긴장감을 가져다주며 상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여진과 포장마차에서 우동을 먹는 시목 (사진= 티빙 공식 홈페이지 캡처).

범인의 살인 과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재현하는 냉혈한 같다가도 덜 성숙한 아이 같은 모습의 시목은 동정심을 일으키기도 한다.

드라마는 그의 가정사나 어린 시절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부모님이나 친구들로부터 다양한 감정을 학습할 기회조차 없었던 시목이 이명을 듣고,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감정이 커진다.

로봇인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고장 난 인간이었던 것이다.

한편, 여진(배두나 분)과 인간관계를 맺으며 조금씩 감정을 배워나가고 그로 인해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흥미롭다.

세상의 변화를 위해 시작했던 일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가는 시목과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모습만으로도 희열이 느껴진다.

평범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시목은 때론 명령에 복종하고, 시말서도 쓴다.

상사가 주는 먹기 싫은 내장도 억지로 먹으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우리와 비슷한 직장인의 비애와 동질감도 느껴진다.

<비밀의 숲>은 시목의 개인적인 변화와 더불어 얽히고 얽힌 인간관계 속에서 무언의 동의로 정당화되는 것들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보며 마냥 괜찮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드라마와 너무도 닮아 있는 현실을 살아가며 우리 사회 어딘가에도 용기 있는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명한 검사가 한 명, 아니 여럿쯤은 있겠지라며 위안을 삼아본다.

범인을 취조하는 황시목(사진=티빙 공식 홈페이지 캡처).

필자의 인생 캐릭터 황시목을 만든 이수연 작가의 신작 <그리드>는 미스터리, 공상, 과학, 스릴러, 액션 드라마라고 한다.

작품 곳곳에 숨어있는 미스터리에 트레일러만 봤을 때도 벌써 기대가 된다.

수많은 장르가 혼재돼 있어 언뜻 보기에도 복잡한 작품을 어떻게 흥미롭게 풀어냈을지 궁금하다.

아직 <그리드>를 보기 전이라면 기대감 장전을 위해, 이미 <그리드>를 보고 난 후 작가의 다른 필모를 찾고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비밀의 숲>을 보러 가자.

속도감 있는 전개와 탄탄한 스토리에 시청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일방적 짝사랑일 뿐이더라도 황시목이라는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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