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가족이 그리워지는 영화, <미나리>

왓챠 : <미나리>

진보화 승인 2022.03.09 10:00 의견 0
<미나리> 공식 포스터 (사진=A24 공식 홈페이지 캡처).


[OTT뉴스=진보화 OTT 2기 리뷰어] 영화 <미나리>는 이민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삶을 작품에 담담하게 녹여냈다. 굳이 이민자가 아니더라도 어딘가를 떠나 정착하기 위해 애쓰는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필자 역시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정착하기 위해 애쓰고 있고, 3년 전에는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경험도 있다.

그 때문인지 극중 등장인물이 병아리 항문을 보는 일을 견뎌내고, 사람이 그리워 교회를 찾아가고, 고춧가루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 유독 가까이 다가왔다.

제이콥(스티븐 연 분)과 모나코(한예리 분)는 "서로를 구해주자"고 말 하며 스스로 우리의 공간을 떠나 미국이라는 타지에서 새로운 시작을 다짐했다.

이 시작에는 낯선 나라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이 공존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내 발로 떠나온 그곳이 그리워진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이 돌아갈 수는 없다. 원래 떠나는 것보다 돌아가는 것이 더욱 어려운 법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제로가 아닌 마이너스에서 모든 것을 쌓아 올려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미나리>를 보면서 도대체 이 작품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민자 가정의 미국 적응기를 보여주고자 했다면 제이콥과 모나코가 주인공이 될 것이고,

플로리다 프로젝트처럼 아이들의 시선으로 누군가의 삶의 단편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데이빗(엘런 분)이 주인공일 것이며 또 자식을 어딘가로 보내고 또 자식을 위해 모르는 땅에 온 한 어머니를 보여주고자 한다면 순자(윤여정 분)가 주인공일 것이다.

전체적인 극을 이끌어가는 메인 주인공은 제이콥과 모나코지만 다양한 시선에서 같은 상황을 바라보고 감정을 이입할 수 있어 좋았다.

<미나리> 공식 포스터 (사진=A24 공식 홈페이지 캡처)


제이콥과 모나코는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이다.

현재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상황을 벗어난, 미래를 위한 투자를 결심하는 성향의 제이콥과 그보다는 현재의 안정을 추구하는 모나코.

정반대의 성향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어려움에 직면한 상황은 두 사람을 충돌을 끊임없이 낳을 뿐이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행동했을지 시청자의 입장에서 한 번쯤은 고민해 볼 만하다. 필자는 처음의 모나코처럼 제이콥의 노력을 인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극 중의 모나코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제이콥을 도왔을 것 같다. 하지만 계속 제이콥이 실패를 거듭한다면 모나코와 같은 결정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하는 것보다 자신의 꿈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본다면, 불가능 앞에서 도전이 집착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면 그를 포기했을 것 같다.

무엇이 먼저였는지 고민하며 고통을 멈추고 안정된 삶을 되찾고 싶을 것 같다.

미국까지 함께 이민 와서 살아가는 본질적인 목적은 성공하는 것도 있겠지만 가족이 모두 함께 더 행복해지는 것이었을 테니 말이다.

데이빗은 심장이 아픈 아이다. 푸른 벌판이 있는 집에 이사를 왔는데도 한번 뛰어보지를 못하는 불쌍한 신세다.

비가 오면 물이 새고 방음은 전혀 되지 않는 좁은 컨테이너 안에서 엄마 아빠의 다툼을 오롯이 지켜봐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데이빗이 원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데이빗에게 이상한 냄새가 나는 할머니 순자가 나타났다. 이상한 한약을 먹이고, 이상한 화투 놀이를 하는 데이빗은 할머니가 싫다.

자신의 의견은 완벽하게 배제된 채 원하지도 않았던 이민을 오고 낯선 공간에 고립됐나싶더니 생전 처음 본 불청객까지 수많은 변화에 적응해 나가야 했던 데이빗.

마땅히 사랑받고, 보호받기에도 벅찬 아이들이 어른들이 내린 결정들에 따라 희생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들을 차분하게 데이빗의 시선에서 그려내는데 언젠가 겪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가 떠올랐다. 어떤 상황에서도 언제나 내 편이 돼줬던 할머니.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은 다 비슷한가보다.

그 특유의 할머니 냄새, 할머니 집 냄새가 그리워졌다. 엔(노엘 조분) 이 부각되지 않은 점이 조금 아쉬웠다.

몇 마디 대사도 없었지만 엔을 볼 때마다 뭔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기적인 어른들 사이에서 아픈 동생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양보해야 했을 것이며, 한 번을 보채지 않고 오히려 엄마를 위로하던 너무 철이 들어버린 엔의 속은 얼마나 타들어 가고 있을까.

폴로라이드로 찍은 극 중 배우들의 가족사진 (사진=A24 공식 홈페이지 캡처) .


미나리는 우리나라의 자생식물로 봄과 가을 습지에 뿌리를 내리고 잎을 피운다. 손이 많이가지 않고 무던히 스스로 잘 자라나는 미나리는 환경에 억척스럽게 적응하고 살아가는 이 가족들을 닮아있다.

역경을 겪고 나서도 가족이라는 사랑으로 꿋꿋이 뿌리를 내리고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들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여운을 남긴다.

한줄기 따스한 햇살 아래 맑은 강 그리고 그 아래 무성하게 자라있는 미나리,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지는 풍경이다.

향긋한 미나리의 계절이 오기 전 겨울의 마지막 심술인 꽃샘추위를 쫓아내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가족영화가 보고 싶다면 <미나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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