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뉴스=윤하성 OTT 2기 리뷰어] 흔히 3월은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달이다.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잠들었던 동물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학창시절을 지나던 우리에게 3월은 기대와 설렘의 달이기도 했다.
새로이 배정된 반에서 낯선 친구들과 다시 처음부터 관계를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윤가은 감독의 첫 장편 영화 <우리들>은 관계의 시작과 끝, 그리고 회복까지 우리가 한 번쯤은 겪어 봤을 법한 과정들을 아이들을 통해 말갛게 그리고 있다.
관계에서 스미는 감정들은 초등학생인 아이들의 얼굴에 순수하게 비친다.
새로운 관계를 앞두고 달뜬 마음부터 질투와 씁쓸함, 멋쩍음까지.
마치 어린 시절 나의 일기장을 훔쳐본 듯한 이야기에 공감하다보면 왜 이 영화가 평단에서 찬사를 받고 유수 영화제에서 노미네이트 됐는지 알 것도 같다.
영화는 '무해'하다.
영화적 기교나 오락적 요소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극적인 장치나 관객들을 사로잡을 요소 없이 잔잔하고 소박하게 이야기를 펼친다.
특히, 음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흔히 영화에서 음악은 관객의 몰입을 돕거나 분위기의 고조를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들>은 전개가 빨라지는 부분에서만 음악을 사용한다.
어느덧 친해진 선(최수인 분)과 지아(설혜인 분)가 관계를 돈독히 다지는 모습을 보여줄 때만 동화 같은 음악을 곁들여 페이지를 하나하나 넘기는 것처럼 연출했다.
음악의 공백은 아이들의 표정을 겉치레 없이 드러내도록 도와준다.
관계의 진전과 변화는 아이들의 표정뿐만 아니라 상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선은 보라(이서연 분)을 위해 오밀조밀한 팔찌를 만들었지만 결국 주지 못하고 낙심한다.
그때 보라 대신 선에게 다가온 지아에게 팔찌를 줌으로써 새로운 관계가 맺어진다.
기분이 좋지 않은 지아에게 봉숭아 물을 들여주며 짙어진 밤사이로 서로 비밀을 나누며 아이들의 관계는 깊어진다.
하지만 함께한 여름날도 잠시 학기가 시작되자 선과 지아의 관계는 틀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봉숭아 물은 짧아지고 선은 보라에게 받은 매니큐어로 손톱을 덧칠한다.
선은 팔찌를 끊어냈지만, 지아는 왜인지 관계가 틀어져도 계속하고 있다.
팔찌를 핑계로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 듯 싶었지만, 오히려 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이외에도 영화는 쏟아진 오이 김밥을, 베란다 한켠에 쌓여있는 소주병을 클로즈업하여 이후 전개될 사건들을 암시하고 상징한다.
더는 돌이킬 수 없다고 여길 때쯤, 영화가 주는 교훈은 다름 아닌 선의 동생인 윤(강민준 분)의 대사이다.
계속 맞고만 다니는 윤에게 지아는 누나로서 "너도 때려야지!"라고 다그친다.
윤은 "계속 때리고, 때리고, 때리면 언제 놀아?"라고 반문한다.
사실 모든 관계가 그렇다.
마음에 흠집이 났다고 해서 상대를 할퀴다 보면 남는 것은 상처뿐이다.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 추억 등은 묻히고 서로를 증오와 분노에 노려볼 뿐이다.
그런 감정에 시간을 허비하기엔 인생이 아깝다.
감정에 휩싸여 잊고 있던 관계의 미학을 우리는 어린아이의 맑은 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관계는 어렵긴 마찬가지다.
이를 투명하게 그리는 <우리들>은 그것이 어른의 전유물이 아님을 짚어주며, 늘상 그래왔다고 우리를 위로한다.
관계에 지치고 힘들 때, 치고받고 싸우면서도 결국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미는 영화 <우리들>을 건네고 싶다.
영화 <우리들>은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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